박태준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추모도서 ‘박태준 생각’이 출간됐다. 추모도서에는 식민지 삶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의 뼈아픈 역사와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이뤄낸 그의 힘겨운 삶과 정신 그리고 신념을 담았다.
먼저 책에 담긴 그의 어록을 통해 그가 남긴 말과 업적, 생각을 살펴봤다.
“철강산업을 일으켜 국가건설의 초석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 “교육이 일본에 앞서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
박태준 포스코 창업회장의 정신과 신념이 함축돼 있는 어록에 담긴 말이다.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서거한 박태준은 41세(1968년)부터 65세(1992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 철강기업으로 우뚝 세우는 가운데 국내 최고 수준의 14개 유‧초‧중‧고교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육성했다.
그리고 생전에 자신의 말을 실체적 위업(偉業)으로 이룩했으며, 그의 삶에서 필생의 사상적 두 축이 되었던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을 실현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은 우리에게 맡겨진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포스코가 원산에 제철소를 세워 북한의 국가기간산업을 안정화시키고 평양에 가서 경제개발 자문도 해주고 싶다. 같은 민족이니 북한 사람들도 능력은 우리와 같다”
이 역시 박태준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화합’...인생의 황혼기였던 70세(1997년)부터 서거 때(2011년)까지 그가 염원하고 추구한 소망이었다.
그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 한국의 민주주의 평가 지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김대중 정부’ 출범(1998년 2월)과 6‧25전쟁 후 최대 국난으로 기록된 외환위기사태(IMF사태)의 조기 극복에 크게 기여하며,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길로 걸어갔지만 현재의 정치적 지역감정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볼 때 그의 뜻은 후세가 극복해야 하는 시대적 비원(悲願)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위 내용을 담은 추모도서 '박태준 생각'을 펴낸 포항지역사회연구소(포사연)는 박태준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지금 여기의 우리는 왜 ‘박태준 생각’을 생각해야 하고 왜 ‘박태준 생각’과 대화해야 할까?'”란 질문을 던지며, “박태준 선생이 남긴 공적의 탑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삼일치가 만든 위업이다. 그러나 공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그것을 성취하게 만들었던 선생의 정신, 고뇌, 투쟁이다. 이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야 하는데, 그것을 어떤 실체로 세우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포사연은 “지리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가까운 거리에서 박태준 선생에 대한 정당한 칭송과 합당한 비판에 게으르지 않았던 우리가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생의 10주기를 기리는 일들에 나서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고 예의인데, 물론 ‘박태준 생각’이 전국적으로 널리 읽히게 되는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지난 9월 14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열리는 포항시립미술관의 ‘신화를 담다―꺼지지 않는 불꽃’ 전시를 찾아오는 분들이 이 책을 기념으로 오래 간직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편 추모도서 ‘박태준 생각’은 3부로 짜여졌다. 1부 ‘사진과 행적으로 만나는 박태준의 생애와 정신’은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대기 전체를 66개 소제목으로 나누고 관련 사진 103장과 함께 행적과 어록을 간략히 간추려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이대환 작가의 ‘박태준 평전’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비평적 관찰을 발췌해 곁들였다.
2부 ‘황혼기의 연설에서 박태준정신을 되새기다’에는 김호길 포스텍 총장 10주기 추모사,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국립하노이대학 특별강연, 그리고 마지막 연설로 남은 ‘퇴직 직원들과 19년 만의 재회’ 인사말 등을 실었다.
3부 ‘학자의 눈, 작가의 눈으로 박태준정신을 탐구하다’에서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의 논문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 연구’와 이대환 작가의 에세이 ‘천하위공의 길, 박태준의 길’을 통해 ‘박태준 정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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