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는 "중국이 변하기 전에는 세상이 안전할 수 없다"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건설적 관여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미·중 수교 당시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주의 중국을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실상 자유주의 국제질서 밖에서 행동하면서 Club-based international system에 의지하고 있으며, 효용 극대화를 위해 추진했던 글로벌 가치사슬을 버리고 경제와 안보를 강조한 공급망전략(Supply Chain)으로 전환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는 과거 냉전기 소련을 강력하게 보던 "10 feet tall" 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즉 중국의 취약성을 과소평가하고 중국부상에 대한 위협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면서 불안 → 공포감 → 과잉반응 → 나쁜 결정을 만들고 있다. 특히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을 막론하고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강해진다는 적색공포(red scare)를 조성해 자신의 반대파를 약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규범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는 등 '동의와 강제'에 기초한 패권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공세에 대해 중국의 순응, 적응, 대응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전방위적으로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강경론, 바이든 정부가 동맹 연합을 통한 대중국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보다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신중론, 미국의 도전에 맞서 산업과 핵심기술의 자주화 등 내부혁신이 필요하다는 준비론, 주변 지역에 대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강화해야 한다는 자성론 등이 혼재해 있다. 현재로서는 국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신중론과 준비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핵심이익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신냉전이라는 접근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으며 책임있는 경쟁(responsible competition)과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극복과정에서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면서 중국 국민들의 체제 자신감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검열의 시대, 지식인의 이반 속에서도 중국 국민의 시진핑 체제에 대한 지지도와 만족도는 80%에 달한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한 순응을 거부하고 "중국특색 대국외교" 기조 속에서 글로벌 파트너십, 일대일로, 인류운명공동체와 같은 담론을 만들면서 지구전(持久戰)에 대비하고 있다. 여기에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자 '백년대변국'이라는 위기의식을 주입하면서 전 사회영역에서 공산당 지배와 마르크스주의를 호명하는 등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2060년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책전환 비용이 증가하고 있으나, 주요모순을 바꾸고 공동부유를 제시하는 등 사회주의로의 복귀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새로운 게임체인저: 데이터플랫폼 경쟁
미·중 전략경쟁은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데이터플랫폼 경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과 우호국을 동원해 규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 5G 산업에 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규제하고 있고 특히 전 공정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을 활용해 중국시장을 압박하는 것도 미래 게임체인저를 위한 숨고르기의 일환이다. 6G, 양자컴퓨팅 기술 (여기에 전략과 광물의 결합)에 대응하기 위한 심모원려이다. 미국의 통제 밖에서 디지털 권위주의를 활용해 거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국의 '기술독재'를 문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도 "10년 동안 하나의 칼을 간다(十年磨一劍)"는 결의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독려하고 있고, <제14차 5개년 규획>에서는 '제조중국 2025'를 발전시킨 '과학기술혁신 2030 중점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한편 군민융합을 통해 정책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시진핑이 민군 복합성에 주목한 당 중앙 군민융합발전위원회 주석으로 이를 지휘하는 것도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향후 5년간 50만 명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중국봉쇄가 중국의 기술자주화를 촉진하는 부정적 효과도 만들고 있다.
근본적으로 보면 미국은 현재 단일패권체제의 쇠퇴를 부분적으로 늦출 수는 있지만, 과거의 영화를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한다는 것도 역설적으로 '미국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세계에 대한 위협이 권위주의와 독재체제에 있다는 미국식 접근법에 많은 국가가 공감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으나, 중국에 대한 위협과 국가이익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고, 미국도 대중국 견제에 참여한 국가들에 구체적 클럽 이익(club goods)을 제공하기 어렵다. 사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접근이 사회주의 중국의 부상이라는 단일 정체성에 기초하고 있으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복합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접근방식에 있어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결국, 미국이 기후변화, 핵 비확산, 글로벌 보건안보, 군비축소 등의 영역에서 실용적이고 성과지향적(result-oriented)정책을 추진하고 치열한 경쟁의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도 한계(미국경제의 부메랑)가 있다. 일대일로를 저지하기 위해 만든 B3W(Build back better world)도 한계가 있고, 미국기업의 중국투자(테슬라 공장증설, FDI 건실한 투자 유지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제재의 한계(10nm에 국한, 월마트와 애플 효과로 범용반도체 제재 불가)와 반도체 기술의 성숙도에 따른 시장의 변화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이 기술 우위,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속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자 미국 반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을 잃으면 미국 IT 기업들도 약 1,00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이라는 부메랑 효과에 직면하는 점도 고려대상이다.
당분간 2022년 미국의 중간선거, 중국의 20차 당 대회까지는 미·중 관계가 경향적으로 '갈등 속 협력'의 기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만, 과거 진영에 기초한 냉전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고,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sed interdependence)이 작동하고 있으며, 핵보유국 사이의 '공포의 균형'도 있고, 현재는 중국이 자본주의 국제질서 바깥에서 국가이익을 추구할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점을 모색할 것이다.
한반도 정세와 중국
중국의 한반도 정책도 미·중 전략경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중국 요인으로 보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 역할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미·중 전략경쟁이 방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지전략적 가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5차례의 중국방문과 시진핑 주석의 북한 답방을 계기로 "국제정세와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도 북한의 합리적 안보요구에 대해 힘이 닿는 한(力所能及) 지원할 것"이라는 점은 일시적이고 전술적 수사라기보다는 보다 전략적 의미를 띠고 있다. 더 나아가 "비핵화와 정세완화에 대한 북한이 취한 조치를 감안할 때 미국은 성의를 다하고 호응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대북제재 결의의 가역조항을 조속히 발동해 북한의 경제 민생 상황 개선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당분간 북중관계는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로 기능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영향력을 잃어버리는 '영향력의 딜레마'를 겪었기 때문에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카드를 쉽게 던지기는 쉽지 않다. 북한도 국제제재, 코로나, 자연재해 등 삼중고 속에서 내구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가피하게 대중국 의존이 높아졌고, 정치적으로도 '형재애', '전략적 높이', '혈연적 유대' 등을 과시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쌍잠정 중단, 쌍궤병행, 단계적-동시적 해법과 같은 방안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고, 원칙적으로 제재를 유지하면서도 부분적 제재해제를 위한 정치적 접근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것이고, 다른 한편 미·중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관리를 지지할 것이다. 한중관계도 2017년 '한중관계 개선 관련 협의 결과(일명 사드협의)'를 발표한 이후 양자 쟁점이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경사가 강화되지 않도록 상쇄(offsetting)를 추구하고 있다. 내년 한중수교 30년을 준비하면서 협력의 모멘텀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문제는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고 있고, 특히 궐위의 시대, 미국 공화당이 선거에 불복하고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트럼프를 다시 호명하고 있는 고장 난 민주주의 등 패권의 한계가 한국외교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고, 선택의 난도를 가중시키고 있다.
첫째, 가치외교의 문제이다. 미국은 홍콩보안법, 신장-위구르 인권문제 등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수위를 높이고 있고 중국은 이를 내정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은 최대한 주권과 가치문제를 구분하고, 사안별로 선택적으로 지지와 반대를 표명하고 공개와 비공개 방식을 결합하는 것이다. 한국의 중장기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모범을 지향하는 것이 미국, 중국, 북한에 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지역질서 개편에 대한 참여의 수준과 범위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를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인도 태평양 구상이 군사전략인지 보편적 가치와 지역 협력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선택의 범위와 강도를 달리할 것이다.
셋째, 탈중국화와 대중국의존도의 축소문제이다. 한국의 대중국 교역의존도는 25%로 미국과 일본의 교역량의 합보다 많다. 근본적으로 미·중 간 완전한 디커플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가가 대중국시장을 규율하기 어렵다. 이미 중간재 중심의 수출은 한계가 왔고 우회시장을 찾아야 하지만, 대체시장이 많지 않고, 대기업은 세계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보는 시각은 또 다르다.
넷째,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이다. 한중 양국은 구속력의 한계가 있으나 이른바 2017년 사드관련 협의를 발표한 바 있다. 이것도 일종의 '신뢰'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전략자산의 투사, 군사협력의 강화에 대해서는 한국외교의 정체성 속에서 신중하게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새로운 과학기술 경쟁이다. 미국은 미래 산업과 핵심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외교·안보 역량을 투사할 것이다. 심지어 미 상무부가 삼성전자의 영업목록을 요구하는 압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도 비시장적인 논리로 자국 제품 사용을 제한한다면 특정 기업의 대중국진출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표준경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국의 기술공간을 활용한 헤징을 추구하고 최대한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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