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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이야기인 동시에 노회찬들의 이야기, <노회찬 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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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이야기인 동시에 노회찬들의 이야기, <노회찬 6411>"

[<노회찬 6411> 제작진을 만나다] ②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감독 민환기, 제작 명필름, 시네마 6411, 노회찬재단)이 오는 14일 전국 각지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개봉한다. 노 전 의원의 3주기를 맞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봤을까. 

<노회찬 6411>의 제작진 5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인터뷰했다. 첫째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처음 장편 다큐 영화 제작에 참여한 김지수 조감독과 조유경 조감독이다. 이들에게 영화 제작 과정은 이름 정도만 알던 노 전 의원의 삶을 알아가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둘째는 영화의 제작자인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다. 이들은 노 전 의원과 동시대를 살았고 진보정당 운동을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노 전 의원의 삶을 반추하며 든 소회를 말했다.

셋째는 영화를 공동 제작한 노회찬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이다. 김 총장은 <노회찬 6411>을 보며 노 전 의원이 끊임없이 진보정당 집권을 위해 고민했다는 점과 그가 바라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더 깊이 새겼다.

<노회찬 6411>의 개봉을 앞두고 세 편에 걸쳐 영화는 물론 노 전 의원의 삶에 대한 3색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를 싣는다.

"우리 세대의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유신독재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80년 5월 광주를 보며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사회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세상이 뒤집혀야 한다고 생각하다 소련 붕괴 뒤에 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노회찬은 남았어요. <노회찬 6411>에 나오는 주변 친구들도 자신이 지금 어떤 일을 하든 노회찬을 끝까지 지지해요. 그 얼굴들이 반갑고 좋았어요.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

"<노회찬 6411>은 노회찬의 이야기인 동시에 노회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 속에 많은 무명용사가 있었잖아요. 유명을 달리하신 분도, 힘들게 사시는 분도 있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정리되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

<노회찬 6411>의 공동 제작자인 이은 명필름 대표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영화인이다.

이 대표가 속한 명필름은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 등 흥행작을 만든 제작사인 동시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을 다룬 <카트>, 전태일 열사의 생애를 다룬 <태일이>를 만든 제작사다. 명필름 설립 전, 한국 최초의 노동영화 <파업전야>를 제작한 이력도 있다.

최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일하며 아트하우스 모모를 통해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해왔다. 올해도 모모에서는 하청 노동을 다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상영됐다. 해고 노동자가 주인공인 <휴가>도 곧 상영 예정이다. 최 대표는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런 두 제작자에게 <노회찬 6411>은 20대 이후 사회운동의 최전선을 떠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인 동시에 끝까지 최전선에 남아 싸운 노회찬과 수많은 노회찬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지난 1일 경기 파주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두 제작자를 만나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삶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이은 명필름 대표(왼쪽)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이은 "노회찬 곁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어요"

<노회찬 6411> 제작을 처음 추진한 사람은 이 대표였다. KBS PD 한 명으로부터 '방송국에 남은 영상으로 노 의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이 대표도 노 의원을 향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이 남아있기에 제작자 관점에서도 영화의 대중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동한 이 대표는 노회찬재단 측에 노 의원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재단은 흔쾌히 승인했다. 곧 최 대표와 민환기 감독이 합류했다. 첫 제안으로부터 두달여 뒤 <노회찬 6411> 제작 시민 서포터즈 모집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영화 제작이 시작됐다.

제작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영화를 공동 제작한 노회찬재단과 재단이 해온 평전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에도 나왔고, 실제로도 그렇고 노 의원이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잖아요. 진실 되게 살아온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아프고 놀랐겠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노회찬재단이었죠. 노 의원에 대한 애정과 결집력이 큰 조직이에요. 재단 사람들은 빨리 마음을 추스려 노회찬 정신을 이어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사업 중 하나가 3주기 출간을 목표로 이광호 작가가 쓰고 있던 '노회찬 평전'이었어요. 평전과 영화 작업 사이에 시너지가 있었죠. 평전 작업이 없었다면 영화를 1년여 만에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동시대에 노 의원과 비슷한 꿈을 꾸며 노동운동을 하다 이후 영화 일을 택한 자신의 모습이 비쳤던 탓일까. 이 대표는 기억에 남는 인터뷰로 서로를 생각하는 노 의원과 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장면들을 꼽았다.

"정광필 선생이 고등학교 때부터 노 의원과 같이 유신반대 유인물을 돌린 사이거든요. 그런데 노 의원에게 '자기는 (진보정당 운동을) 못하겠다'고 했대요. 결국 길게 보고 교육 일을 해서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를 만들었죠.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정 선생이 노 의원을 떠나던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날 안 잡더라'고 했어요. 그 친구가 필요할 텐데도 잡지 않는 노회찬의 마음이 사무치는 거예요. 또, 노 의원과 인민노련을 함께 했던 최봉근 선생은 ‘자신은 떠났지만 노회찬을 보는 낙으로 살았다’고도 했거든요.

노 의원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평생을 동료로 함께한 게 신기하고 부럽더라고요.”

영화를 만들며 새롭게 알게 된 노 의원의 면모로는 '진보정당 집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라고 말했다.

"저는 노 의원이 그렇게 권력 지향적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은 원래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권력을 잡아서 민중의 삶을 변화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영화를 만들며 노 의원이 방송에 나와 재미있게 이야기했던 게 진보정당의 인기를 올리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잡아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현실적인 문제의식 때문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죠."

▲ 이은 명필름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최낙용 "한국사회에서 노회찬과 노회찬들의 이야기는 소중해요"

최 대표는 1992년 대선 당시 백기완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하며 부산 영남지역 유세를 담당했다. 노 의원이 같은 시기 백 선본에서 조직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영화를 만들며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둘은 한때 진보정치의 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지였던 셈이다. 그런 최 대표에게 <노회찬 6411> 제작은 각별한 경험이었다.

"노 의원이 돌아가시고 연세대에서 열린 추모제에 영화인들과 같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다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 스스로는 전에도 돌아가신 정치인(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다큐 영화로 만들어 참여하기 조심스러웠어요. 저보다 잘 할 수 있는 분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기회가 닿아 만들게 됐어요. 노회찬과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를 담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어요. 영화 제작이 마무리되고 조금이라도, 잠시나마 (진보정치 운동에) 몸을 담근 사람으로서 민 감독에게 고마웠어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최 대표는 인터뷰 촬영을 따라다니며 인터뷰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 자체가 좋았다.

인터뷰를 같이 하지 못할 때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 중에는 '도저히 카메라에 얼굴을 내밀 수 없다'고 해 필수인원만 참석한 상황에서 인터뷰를 했고 영화에는 목소리로만 등장한 이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와 노 의원의 동반자였던 김지선 여사다.

"조 이사는 출연을 고사해 처음에는 참고용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목소리 출연에 동의를 해줬어요. 많은 인터뷰이가 노 의원의 죽음에 대해 묻거나 하면 울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다 감정을 드러내는데, 조 이사는 첫 질문을 듣는 순간 통곡 수준으로 울었대요. 아마도 노 의원뿐 아니라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하나둘 떠나는 모습을 보며 들었던 여러 복합적인 감정 때문이었겠죠.

사모님(김지선 여사)도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노회찬재단 관계자들, 노회찬 평전을 쓰고 있는 이광호 작가가 수차례 요청해 목소리만 나가기로 하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는 적극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해요. 사진도 많이 받았고요."

영화에 담긴 인터뷰 장면 중에는 인민노련에서 노 의원과 함께 활동한 최봉근 씨가 그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과 하는 것이 일치하던 사람이었는데 작은 불일치를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다 눈물을 비치며 말을 멈추던 순간, 노 의원의 초중등 학교 동창들이 '노회찬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던 사람, 그 모든 일을 잘했던 사람'이라고 한 말을 마음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노회찬 6411>을 만들며 최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던 영화사의 이름을 '풀'에서 '시네마 6411'로 바꿨다. 지금 한국사회에 노회찬, 그리고 노회찬들의 이야기가 소중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는 변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답보 혹은 퇴행하고 있잖아요.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고요. 저는 '아비규환 직전 상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속에서 노 의원은 집권 의지를 갖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경, 헌신을 바탕으로 누구나 동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했어요. 삼성, 검찰 같은 거대권력에 맞서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싸우기도 했고요. 그런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소중해요. 스스로에게 이를 강제로라도 상기하기 위해 6411이라는 이름을 택했어요."

▲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정치 생각하는 이들과 동시대인에게 권한다"..."노회찬 3년 탈상을 함께하자"

두 제작자에게 <노회찬 6411>의 개봉이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영화를 보러 올 관객과 볼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이 대표는 <노회찬 6411>이 특히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요긴할 것이라고 했다.

"민환기 감독에게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여줬어요. 민 감독은 운동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진지하게 예술을 대하는 사람이거든요. 특정한 정치 노선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요. 노선과 상관없이 한국 진보정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또, 노 의원과 비슷한 세대로 그와 유사한 꿈을 꿨던 사람들의 감회가 어떨지,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도 궁금해요."

최 대표는 노 의원을 그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를 진정으로 보내주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옛날에는 3년이면 탈상을 했잖아요. 지난 7월이 노 의원의 3주기였어요. 노 의원을 기억하거나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했던 사람들이 3년 탈상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웃고 울고 공감하면서 이제는 그를 진정으로 보내주자. 이를 위해 두 시간만 시간을 내주시라.'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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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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