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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아, 끝까지 나를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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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아, 끝까지 나를 춤추게 하라

[탈춤과 나] 20. 김봉준의 탈춤 ⑤ 끝

작은 지역에서 문예활동을 한다는 것은 문화환경이 더 열악하고 전문적 예술분야가 착근하기 어렵다. 원주도 그렇다. 여기서 원주민예총도 재건해보고 원주민미협도 창립했다. 문막 산골살이를 벗어나 2006~9년 원주시내 나가 보다 나은 문예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원주는 장일순 지학순 김지하 박재일 님이 유신독재와 맞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곳이고, '한살림'을 태동시킨 곳이다. 이런 문화적 토양에 맞춰서라도, 민중의 삶의 현장이 바로 곁에 있는 곳에서보다 진보적인 예술이 나와야 마땅했다. 그래서 강원도 전체에 민족예술조직 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 춘천 강릉을 원주 예술인들이 주동하며 이를 강원민예총을 추동해냈었다. 

강원도 특유의 말도 적고 표현 잘 안하는 지역적 기질이 있다. 서울은 중심이라고 별로 관심도 없었지만 자생적인 지역문예조직이 필요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면서 중앙집중적인 권력이 세지면서 생산력과 국부는 오히려 급격히 쇠락하고 결국 찬란했던 제국은 부패한 왕정으로 멸망했다. 권력은 나눌수록 좋고 뜻은 모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조직이나 효율성을 갖추지 않으면 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지 못한다. 나는 문화의 중앙집중화, 정파적 상업주의, 문화조직의 사유화를 계속 비판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탈춤이 가르쳤던 마당의 문화를 지금도 귀하게 여긴다. 탈춤 풍물로 마당문예를 만들고 모이고 민주화운동 속에서 광장문화를 만들어왔던 50여년 문화운동이다. 이 세 가지 개인, 마당, 광장의 문화가 이제야 비로소 모양을 갖추게 되어 한국 민주주의 문화의 강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공동체문화인 마당문예를 외면했다면 거대한 광장의 촛불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촛불혁명을 만든 광장문화의 뿌리는 7,80년대 키워낸 마당문화였다. 촛불혁명의 광장에서 알알이 소단위로 모이고 모여 큰 물결을 이루는 것을 나는 보았다. 개체의 자기 진화가 마당을 만들고 광장을 만들어온 것이 우리 문화다. 이 풍경을 2016,7년 광장에서 무수한 작은 모임문화에서 보았다. 마당문화 탈춤과 풍물이 내어논 신명의 미학, 공동체 문화는 코로나19 시대에도 K방역의 모범을 보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개인의 인권, 공동체의 생명권, 광장의 신성한 신화적 영성이 다같이 드러나는 순간을 촛불혁명에서 보았다. 이 셋은 다 소중하다. 그로칼리즘으로 운동화 끈 고쳐매는 요즘이다. 재작년 서울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에서 40년 미술활동 기념전을 했다. 그날 함께 해주신 탈춤운동(여기서 탈춤운동이라 함은 탈춤뿐만 아니라 마당극 풍물 등 굿문화운동) 문우들이 새삼 고맙다.

마당예술, 영성을 회복하는 문화운동

나는 지금까지 이 글에서 탈춤 풍물 굿 춤 마당극 민요와 판소리, 담시 겨레그림을 마당예술이라 통칭해서 불렀다. 민족예술이란 개념보다 확실한 특징을 지닌 한국문예가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70년대 탈춤부흥운동을 시작으로 마당예술을 삶의 현장에 뿌리내려왔다. 마당예술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만 들고 싶다. 1.엘리트주의 서양예술과 달리 민간 참여가 쉽고 폭넓은 민주적 예술. 2. 인권과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홍익인간과 인내천, 물아동포 미학사상을 품고 있는 예술, 3. 억압과 소외감, 상처를 치유하는 이완과 신명의 예술.

나는 이 마당예술을 탈춤 풍물에서 배워 미술로 확장시켜왔다. 젊은 시절에는 탈춤에 주력했고, 인생 후반부에는 미술에 주력하고 있다. 마당예술은 작은 공동체 예술 같으면서도 개인의 인권과 치유, 무의식으로 열린 자아의 감성과 영성이 흐른다. 도시 시민의식이 결집하는 광장문화로까지 확대되는 비언어적 영성적 문화이다. 촛불혁명과 K방역에서 보여 주었듯이 개인문화과 광장문화를 연결하는 마당문화는 관계론적 철학인 물아동포物我同胞로 소통하는 예술이다.

탈춤, 그것은 나에게 예도의 길을 알려준 스승이자 신화의 세계로 인도한 안내자 였으며 나의 상처를 치유해 준 치유의 문화이며, 신명의 미학을 바로 여기 삶의 마당에 다시 창작하게 만든 원천적 예술의 동력이었다. 동경대전에서 "내게 西道로써 가르치겠습니까? 말하니 아니다. 내게 영부가 있다. 그걸 선약이라 말할 수 있느니라" 曰 不然, 吾有靈符 其名仙藥 수운이 하늘에서 상제의 소리가 들렸단다. 이를 패러디 해서 "내게 탈이라는 영부靈符가 있고 탈춤 풍물이라는 선약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평탄치 않다. 인생에는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 길을 묻는다. 출세간의 길을 택하기보다 야인의 길을 택한 것 같다. 한 번도 정규직에서 직업을 갖고 일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이 길을 관료와 문예제도권에 속하지 않고 온 민간문예의 길이었다 고 말하련다. 

'탈춤과 나' 이 글은 이것으로 일단 마감하련다. 더 못한 말은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칠순 넘어서 자전적 애세이로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글쓰기도 끝낼 것 같다. 한국 최초의 신화미술관을 건립하게 된 것과 신화예술에 관한 것은 여기서 더 쓰기 힘들다. 신화적 예술이 되고자 하는 나의 미술도 역시 탈춤으로 시작해서 영성예술로 끝내는 운명적 마무리가 될 것 같다. 나의 40년 미술작업은 많이 남았다. 이 걸 다 정리하고 나면 내 예술인생도 끝난다. 이 글을 끝으로 최근 5년의 그림들 몇 점과 신화미술관에 전시된 것들 즈엄조각 몇 점 만 더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련다. 안녕! 탈춤 풍물대들아, 마당예술인들이여.

▲<성주 아리랑> 장지에 붓그림 220x160cm 2016년 김봉준 작 ⓒ김봉준
▲<촛불혁명-이게 나라냐> 장지에 붓그림 220x160cm 2016년 김봉준 작 ⓒ김봉준
▲<촛불혁명-국민주권행동> 장지에 붓그림 220x160cm 2016년 김봉준 작  ⓒ김봉준
▲<촛불혁명-즉각퇴진> 장지에 붓그림 220x 160cm 2017년 김봉준 작 ⓒ김봉준
▲<촛불혁명-승리의 날> 장지에 붓그림 220x160cm 2017년 봄 김봉준 작 ⓒ김봉준
▲(왼쪽) <그리운 고장> 종이에 붓그림 1991 김봉준 작, (오른쪽) <장독 비나리> 회벽판에 붓그림 2008 김봉준 작 ⓒ김봉준
▲<대지의 신화>토템들과 대지의 어버이, 페라코타들 1999~ 2008 오랜미래신화미술관 전시중 김봉준 작 ⓒ김봉준

탈춤아, 끝까지 나를 춤추게 하라

나는 마포나루에서 풀잎 물고

강변을 혼자 떠돌던 아이였다.

집을 나가 살고 싶어도 무서워 못 살고 죽지 못해 살았다.

백골 몰래 또 다른 고향은 서울 거리를 아무리 걸어도 안 보였다.

'시여 침을 뱉아라' 를 중얼거리며

마포종점 뒷골목을 걷던 창백한 소년이었다.

내 사랑받아 줄 리 없던 회색도시에서

목마른 리비도에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입술,

갈 곳은 외통수가 미술공부하는 학교였지만

내 마음의 병은 몸까지 이미 망가졌다.

덩쿵~하는 이상한 소리에 뒤돌아보니

탈마당이 얼쑤~ 나를 잡아 흥을 돋우어 주네.

힘을 내서 같이 재미지게 살아보라 하네.

굳은 몸을 풀고 한 사위 힘차게 허공에 뻗어보라 하였네.

탈춤에서 탈로, 풍물에서 굿으로 20년

마당예술이 어느덧 나를 점점 바뀌게 했으니

이제 겨우 알만한 어머니 대지의 길.

광대 재주 없음을 한탄하고 쇠를 놓았을 뿐 난 뒤치배 신화순례자다.

이젠 아픈 발 쉬며 산내 물가에 발 담그며

해 뜨는 동녘산을 바라본다.

이완의 무욕, 신명의 시각화, 영성의 붓굿.

이것이 내 과업임을 알고 맴몸으로 기어든 숙영지 숲에서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두고 온 처자식 생각에 눈물짓던 나날들이 있었기에

신명난 겨레의 춤그림, 이완의 산수화,

농필의 풍속화, 신성한 힘 즈엄조각을 여기 세운다.

숲에서 독공하다가 깜작!

촛불시민이 부르는 광장으로 달려가 한판 붓굿으로 그린

역사풍속화는 마당예술인이 민주시민에게 드리는 헌정 그림이었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가도 이건 또 뭔가, 포스트 코로나시대가!

나의 마지막 10년인데 또 다른 예술모험을 부르네.

상처꽃 피우게 한 탈춤이 꽃 피웠으면 새 씨앗을 다시 내놓으라 하네.

탈춤에서 시작해서 붓굿으로 끝장을 보겠네.

그리움을 그리라 하네. 세상빛 그리다 가라 하네. (끝)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원고 마감 : 2021년 9월 30일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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