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를 연재 중인 독립학자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신간 <외국어 학습담>(혜화1117)이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과 함께 출간됐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이지만, 미국의 학자로 볼 수는 없다. 파우저 교수는 교토대학교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학교에서 일본어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고, 한국에서는 고려대와 카이스트, 서울대 등에서 한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프레시안>을 비롯한 한국 언론에도 그간 유려한 한국어로 글을 보내 왔다.
파우저 교수가 수월하게 구사하는 언어가 모어인 영어에 한국어와 일본어 수준을 더한 데 그치는 건 아니다. 파우저 교수는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몽골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비롯해 라틴어, 북미 선주민 언어, 중세 한국어를 섭렵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어를 공부 중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은 파우저 교수는 책에서 설명한 대로 "44년을 외국어를 배우며" 살아왔다.
따라서 그에게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 학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일상의 물음이다. <외국어 학습담>의 출발점은 글에서 후술할 그의 이전 이력에 있지만, 이 질문은 그 출발점이 집필로 이어지는 방아쇠가 됐다. 나아가 책의 질문은 독자를 향해 '왜 외국어를 학습하려 하느냐'는 질문으로 전이된다.
저자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외국어 경험담을 상세히 전달한다. 한국어를 배우며 경험한 '교차 언어 학습법'에 관한 이야기, 16살 소년의 도쿄 홈스테이 경험에서 온 충격, 독일어와 중국어를 배우며 좌절한 경험담 등이 책에 실감나게 녹아 있다. 저자는 책에서 그간 숱한 외국어 학습법이 등장했으나, 결국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만 하는 외국어 학습에 지름길은 없다고 전하는데, 책의 내용이 이를 실증한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외국어 학습 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그 과거로부터 보다 근본적인 '왜'를 끄집어 낸다. 예컨대 우리가 정말 외국어를 학습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곧 우리 모어에 관한 열패감으로 이어질 수도, 혹은 단순히 더 높은 입시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양한 질문은 곧 외국어를 매개로 나와 세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책은 외국어를 매개로 '나와 외국어를 통해 바라보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고찰할 것을 독자에게 권한다.
파우저 교수의 이 같은 시각은 외국어 학습을 즐기는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는 서문에서도 깊이 드러난다.
신간 <외국어 학습담>과 더불어 <외국어 전파담>의 개정판도 나왔다. 파우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본래 뜻한 외국으로의 이동 대신 미국에 장기간 거주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대면의 가치와 의미'에 다시 주목했다고 개정판을 낸 이유를 밝혔다. 인공지능 발달이 외국어 학습의 필요가 없는 시대로 우리를 이끌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시대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떤 기술의 진보도 외국어 전파의 궁극적 필요를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야기했다.
<외국어 전파담>은 첫 출간 당시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독립출판사가 낸 이 책은 5쇄를 찍으며 로버트 파우저라는 필자를 국내에 제대로 알렸다. 파우저 교수는 이 책을 낸 후 가진 강연회 자리에서 숱하게 받은 한국 독자들의 질문인 '영어 잘하는 방법' '영어가 고통스럽다'는 호소를 접하고 <외국어 학습담>의 집필을 처음 구상하게 됐다. 말하자면 <외국어 전파담>은 파우저 교수의 집필이 <외국어 학습담>으로 이어지는 마중물이 된 셈이다.
<외국어 학습담>은 출간 즉시 여러 온라인 서점에서 화제의 책에 올랐다.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도 이 책의 국내 출간 이전 이미 번역 출간을 확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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