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리는 없다.(Not in Our Names)"
"우리의 회의가 아니다.(Not Our Summit)"
이번 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푸드시스템정상회의(UNFSS)'가 개최된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대변되는 시기에 농식품체계를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각국의 정상들뿐만 아니라 세계 전 지역의 농민단체와 시민사회진영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자리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애시당초부터 없었기에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나 피안(Fian)을 비롯한 농민운동단체와 인권운동단체들은 참가 거부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정상회의의 논의 구도 속에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의 모색은 없고, 기존의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체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도 농민의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2018년 11월, '녹색평론과 함께하는 시간'이 YWCA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승수 변호사가 품을 팔아 만든 이 자리에는 독자 자유발언도 순서에 있었다. 자유발언 시간에 자신을 여성 농민이라고 소개한 한 독자는 미리 준비해 온 편지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겨우 말을 꺼낸 그 독자는 <녹색평론>이 있었기에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었고,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큰 격려를 받는다고 했다. 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기운을 <녹색평론>을 통해서 얻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농민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녹색평론>을 통해서 농민의 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계속 발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김종철은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의 출발에 농(농민의 생산활동뿐만 아니라 농촌, 문화와 전통, 그리고 이를 꾸려낸 농민들을 모두 포함한)을 주목했다. 근대 서구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배가 가능했던 역사적 조건을 이용하여 "거대한 변경"에 대한 끊임없는 착취를 통해 강고하게 된 근대 과학기술문명이 초래한 다양한 모순들의 응결점이 농에 뭉쳐져 있다고 봤다. 특히, "농민을 죽이고는 희망이 없다"라면서 땅을 살려내고, 땅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농민들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대한 김종철의 문제의식은 근대자본주의가 생태를 파괴하는 그 끝이 땅, 농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졌을 때 김종철이 더 없이 분노했던 이유도 생명을 지키는 일에 본분을 다했던 농민이 국가의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야만성 때문이었다. 한미FTA에 대해서 반대했던 이유도 이로 인한 그 폐해가 가장 크게는 땅의 사람들에게 향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근거하고 있었다.
김종철은 외국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땅으로 표상되는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자신의 관점을 확고히 해나갔다. <녹색평론> 창간 전에 썼던 평론들을 정리해서 <대지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책을 출간했던 것도 자신의 사유 과정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의 생태 사상의 연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도 컸던 것으로 판단된다. 외국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김종철은 "이른바 압축적인 산업화로 인해 온갖 인간적인 비극과 재난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인류 전체가 공통으로 경험해 온 곤경의 일부로 보는 사고습관에 다소 익숙해질 수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김종철은 1970년대의 한국의 농촌을 매우 안타깝게 바라봤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농촌 파괴 – 녹색혁명형 농업에 따른 종자, 물, 땅, 지역공동체의 파괴와 이농 등 –를 <녹색평론>을 통해서 담아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김종철은 그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생태문명에 관한 김종철의 사상적 형성과정에서 맑스는 각별했다.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주목하고, 지배와 착취의 과정을 분석한 사회사상은 존경받아 마땅한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 제한하여 본다는 점에서는 부르주아 철학과 궤를 같이해 왔다. 생산과 소비의 양적 증가는 도리어 인간생활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비극적인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오늘의 현실이다"라고 보고 있다. <녹색평론>을 창간할 당시의 한국에서는 소농필멸론(스스로가 토지를 소유하면서 경작하는 농민은 자본 조달 및 적용 규모의 제한 등으로 인해서 과학기술의 적용 등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에서의 불리함으로 인해서 결국은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과 대농우월론(규모의 확장에 따른 생산비용의 감소가 시장경쟁의 우위를 가져오고, 과학기술의 적용이나 유통상의 유리함으로 대농이 농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이 맑스의 이론을 빌려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였고, 농민층분해론 – 자본주의하에서 농민은 자본가와 농업노동자로 계급분해 된다는 개념 – 의 현실에서의 적용이라는 부분이 논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정통마르크스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생산력적 관점에 머물러 버린 이유로 인해서, 땅을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보고 땅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천착했던 김종철의 생태학적 관점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업생산에서의 물질대사의 균열을 바탕으로 근대과학기술이 농업의 합리적인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한 맑스의 논의가 새롭게 조명되는 것을 계기로 김종철은 맑스 이론을 자신의 생태문명철학과 연결 짓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찍이 이와 같은 순환적인 패턴의 중요성에 대해서 뛰어난 인식을 보여주었던 맑스의 선구적인 통찰이다. 일반적으로 맑스주의자들은 생산력이나 과학기술에 의한 '진보'에 대해서 대체로 맹목적인 긍정의 태도를 취해왔고, 그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은 심히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맑스 자신은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가져올 치명적인 생태학적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만이 아니라 토양, 즉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까지 착취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 착취 과정은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화가 대규모로 확대될수록 급속히 진행"되는 것임을 지적한다. 김종철은 이반 일리치가 "부자들의 쟁기는 무기 못지않게 흉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상기시키면서, "도구와 기술도 중립적이지 않다"는 각성을 촉구한다.
더욱이 맑스가 자본주의 농업의 파괴성을 이야기한 자본론의 구절은 김종철의 글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인 농업에 반하거나, 혹은 합리적인 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와는 (설령 이 체제가 농업의 기술발전을 촉진한다고 하더라도) 양립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농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소농이나 혹은 연합된 생산자들에 의한 관리이다"를 꼽을 수 있다. 이를 두고 김종철은 "소규모 농민 혹은 그들의 연합체가 합리적인 농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 데에 맑스의 생태학적 형안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인 농업에 필요한 소규모 생산자 연합체, 즉 농민공동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민주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농민이 주도하는 농에 대한 희망에 자신감을 얻는다. 그 구체적인 고민이 이후 챠야노프, 플루흐 등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다. <녹색평론>에서 식량주권과 농민권리선언 등이 밀도 있게 지속해서 다루어졌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종철의 농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남달랐다. 농민 기본소득을 더욱 강조해서 주장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김종철은 단지 감성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근대문명의 역사적 맥락에서 농민 기본소득을 강하게 주장했다. 서구사회가 주도하는 근대문명의 확산과정에서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거대한 변방"인 식민지를 한국 사회로 축약해서 본다면 중층적인 압박은 '농'에 더욱 심했다. '공유지'로 표상되는 '농민의 것'에 대한 지속적인 침탈과 착취의 과정이 농을 지금처럼 나약하게 만들었기에 그 복원의 첫 단추로 농민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인간 생활의 토대 중의 토대인 농업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이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몇 세기에 걸친 자본에 의한 '공유지'의 사유화, 민중공동체의 해체로 민중은 스스로 자립하고 자치할 수 있는 공간과 능력을 잃어버렸고", "도시의 노동자들이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립의 근거지로서의 농촌이 살아야 노동운동이 강건해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철의 농민 기본소득은 농민들만의 소득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김종철은 시장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의미도 놓치지는 않았다. "내가 남들보다 더 좋은 빵을 만들어서 내 고객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인센티브는 결국 시장에서 나온다. 장터는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라면서, "모든 게 계획적으로 돌아가고 평등 분배만 한다고 하면 빵은 고르게 먹겠지만, 맛없는 빵이 되고 만다"라는 말을 인용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맑스가 견지했던 "부정 속의 긍정, 긍정 속의 부정"이 김종철의 사고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자본주의 근대의 폭력적인 독주에 맞서서 '비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보존, 확보하려는 세계 전역에 걸친 풀뿌리 저항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끈질기게 조직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그러한 저항운동에 합류하는 데서 희망의 길을 발견해 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항과 연대를 통한 희망의 확산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우리 곁에 없다. 김종철이 <대지의 상상력>의 작가들을 "'근대'의 어둠에 맞서서 '삶-생명'을 근원적으로 옹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했듯이, 우리 또한 김종철을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몫은 김종철이 말한 희망의 길을 발견해 내고, 실천해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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