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해서 지난 23일까지 의견서를 받는 기간을 가졌다. 이 법은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월27일 시행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3년간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자 처벌 강도도 약해 논란이 됐다. <프레시안>은 이 법의 직‧간접적인 당사자인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이들이 생각하는 이 법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바로가기 : [중대법, 무엇이 문제인가] "저는 하나뿐인 동생을 '과로자살'로 잃었습니다", "어느날, 자식 하나 못 지킨 못난 부모가 되었다" "청천벽력처럼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지난 26일 오전 코로나19로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배달 일을 하던 한 라이더가 화물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가족들은 통곡과 시민들의 애도의 조문이 이어졌으나 애통한 죽음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사이 천안에서는 한 배달 노동자가 사망사고를 당하였다. 얼마 전에는 동료 대리운전기사는 손님을 만나러 가다가 공사현장에 빠져 다리를 다쳤으나 일을 포기했다고 계약해지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구의역 김군(19살), 제주도 현장실습생 이민호(18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24살), 2019년 경기도 건설 현장 김태규(26살), 광주 폐기물업체 김재순(25살), 경기도 평택항 이선호(23살), 일하러 나갔다가 2000명이 죽어나가는 우리의 현실을 일깨워 준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이다. 요즘 한국사회가 공정담론과 청년일자리가 화두가 되어 있으나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산재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건설현장의 희생자의 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제조현장에서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사망사고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데 중대재해의 핵심은 바로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이다.
한국사회에는 대리운전, 화물, 건설기계, 택배, 배달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죽어도 알려지지도 않는 250만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에 시달리는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저는 작년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만은 막아보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중대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하여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국회 앞에서 33일간 농성투쟁을 하였다.
그 투쟁에는 산업재해로 가족은 잃은 유가족과 함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였고 비정규노동자들은 차가운 도로 위에 몸을 맡기는 오체투지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으나 기쁠 수만은 없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들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빠져버렸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이 유예되어 일하다 죽고 다치는 걸 막자는 데도 차별을 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죽음의 외주화의 희생양이 되었던 사내하청, 용역, 도급 등의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이 의미 있는 것이었다. 비록 재계의 반대와 이에 부화뇌동 하는 정치권에 의해 반쪽자리로 전락하였으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의 컨베이어로 내모는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고 단식농성을 마무리 하였다.
그런데 정작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발표된 정부의 시행령을 보면서 과연 정부는 산업재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나 한 건가 의구심이 들 뿐이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다. 정부의 시행령은 산업안전 관리를 민간 외주화, 산재사업 방지의 핵심과제인 2인 1조 작업의무 등의 형애화, 직업성 질병의 축소, 협소한 ‘공중이용시설’의 범위 규정 등 원 법안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 더욱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적인 가치 중의 하나인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에 내몰려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을 또다시 배제하는 것이다.
먼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직종이나 전속성 제한 없이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안전보건관계 법령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들고 있는데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은 전속성을 전제로 하여 특수고용 중 9개 업종만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어 대다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시행령에서는 사용자의 의무와 책임 중 일부 조문에만 용역, 도급 등의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적용을 명시하여 정작 죽음의 외주화 희생양이 되어 있는 특수고용과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하여 원청사용자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면죄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산재사망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예방 대책은 외면하고 중대재해 예방은 최소한의 형식적인 절차로 때워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쿠팡에서 김범석 의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한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사회적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대 이대로 시행령이 통과된다면 쿠팡에서 일하는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죽어 나가도 쿠팡의 경영진은 책임에서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청업체는 보호 장구 몇 개 지급하면 건설현장에서 계속되는 죽음을 예방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비정규노동자의 억울한 죽음만은 막아보자는 사회적인 지지와 연대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작 중요한 특수고용,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시행령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시행령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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