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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나뿐인 동생을 '과로자살'로 잃었습니다"

[중대법, 무엇이 문제인가] 직업성 질환 목록 확대, 관계 법령에 근로기준법 포함 필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해서 지난 23일까지 의견서를 받는 기간을 가졌다. 이 법은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월27일 시행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3년간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자 처벌 강도도 약해 논란이 됐다. <프레시안>은 이 법의 직‧간접적인 당사자인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이들이 생각하는 이 법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여러 번의 위법 적발, 하지만 개선된 모습 보이지 않은 동생의 회사

지난 2018년 1월 저는 하나뿐인 동생을 과로자살로 잃었습니다. 동생은 유명 인터넷 강의 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중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입사 전에 앓았던 우울증이 재발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했던 동생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죽기 한 달 전 대성통곡을 하며 처음으로 저에게 그간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바로 관할 노동지청에 근로감독청원을 신청했지만, 일주일 뒤 '올해 근로감독이 이미 끝났으니 내년 2월 이후에 나가겠다'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 이후, 저는 시민단체와 함께 회사의 위법 행위를 언론에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그제서야 뒤늦게 회사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하였고, 조사 결과 체불임금, 연장근로 제한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등 다수의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회사는 2016년에 이미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적발된 적이 있었고 2018년이 두번째 적발이었습니다. 첫 번째 적발 당시 체불임금 지급 처분 외에 회사에 별다른 사법 조치는 없었습니다. 2018년 특별근로감독조사 결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지만, 검찰은 회사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발표 등을 정상참작 사유로 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두번째 위반임에도 역시 회사에 대해 아무런 사법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3월 정의당에서 또다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그 회사를 고발하였습니다. 2018년 적발되었던 위반사항이 똑같이 적발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뒤늦게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에 들어갔지만, 과거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이번에도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회사의 위법행위로 제 동생은 목숨을 잃었고, 당시 회사는 공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대책도 내놓았지만 2년만에 같은 위법행위를 저질러 또 고발을 당했습니다. 회사는 상습적으로 법 위반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사법 처리 없이 유야무야 넘겼던 것이 결국 문제를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근로기준법 위반 시 징역형을 포함한 형사 처벌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처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간혹 처벌이 내려진다고 해도 대부분 몇백만 원 수준의 벌금형에 그치고 맙니다. 이렇다 보니 사업주는 노동법 위반에 대해 거리낌이 없습니다. 적발될 가능성도 높지 않고,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법을 어겨서 부당하게 얻는 이윤이 적발 시 입는 손실보다 훨씬 더 큽니다.

에스티유니타스의 경우처럼 근로기준법을 여러차례 위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법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제 동생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까?.

▲ 2019년 9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을 위한 워크숍'에서 장향미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행령 제정안, 건강권에 사각지대 발생 더 이상은 안된다

작년 겨울 국회 앞에서 고 김용균 님의 어머니 김미숙 님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님을 비롯해 여러 산업재해 피해 유가족과 노동자 ‧시민들의 한달이 넘는 단식 투쟁 호소 끝에 올해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가까스로 임시국회를 통과했을 때, 비록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반쪽짜리 누더기 법안이 되었지만, 저는 기대했습니다. 

이윤만을 앞세워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목숨을 희생시키는 비인간적인 기업 경영은 잘못되었고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경영책임자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 더딘 걸음이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나아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시행령 안은 저의 이런 믿음을 저버리고 법의 제정 취지마저 흔들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안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직업성 질병 범위의 과도하게 축소'한 것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범위에 과로사와 일터 괴롭힘을 배제한 것'에 대해 저는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시행령안은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으로 직업성 질병 기준을 급성중독 위주로 매우 좁게 해석하여 법의 적용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였습니다.

그 결과 과로사의 주원인으로 일컬어지는 뇌심혈관계 질환,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발병했던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 반복적인 육체노동이 많은 생산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무직 노동자도 흔히 겪는 근골격계질환 등이 모두 제외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매년 320여 명이 산업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사망에 이르는데, 과로로 인한 사망자수는 520여명에 이릅니다.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량에서 비롯한 과로사는 엄연한 산업재해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시행령안에 과로사, 직업성암, 근골격계질환 등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시된 직업성 질병 목록을 전면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근로기준법에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방지,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등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안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는 안전보건관계 법령에 근로기준법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시행령안으로는 과로사, 일터 괴롭힘 등으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책임자는 의무 위반이 없으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근로 기준법 등을 시행령내 안전보건관계 법령에 명시해야 합니다.

증대재해기업처벌법은 10만명의 서명으로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법제정 신청을 하고, 겹겹의 난관을 뚫고 수많은 시민의 힘으로 어렵게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OECD 회원 국가 중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입니다. 언제까지 이 부끄러운 오명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까?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는 법 제정을 신청하고 끝내 관철시킨 시민들의 요구를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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