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들에게 도장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 즉 본인확인의 수단이다. 일본에서 도장이 본인확인 수단으로 사용된 배경에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인감증명제도가 있다. 전쟁 시기에는 월급이나 배급품을 지급할 때 사용하는 본인확인의 수단이 되었다. 전후에는 신분증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그 기능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도장 때문에 출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나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도장의 역할은 변화하고 있다.
2020년 9월 새롭게 등장한 스가 수상은 행정기관에서 도장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도장 폐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본사회에 대한 이노베이션이며 행정서비스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시키려는 행정개혁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도장 폐지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들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시스템 통합이 선행되어야 하고 도장업계 및 여당의원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28.7%를 차지하는 고령자의 비율은 IT 리터러시 문제와 결부되어 최대의 난관이다.
일본에서 도장을 대체하는 방안은 마이넘버카드를 이용한 전자서명 및 공인인증제도의 정비이다. 그리고 에스토니아나 EU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자도장(e-seal) 제도가 대안으로 도입되고 있다. 일본 사회 전반에서 도장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공적 인증제도의 정비가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필자)
일본사람들이 도장에 집착하는 이유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팬데믹은 일본사회에 정치경제적 패러다임 변화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의 일하는 방식에도 막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일본인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인 모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도장문화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예방을 위한 효율적인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출근부와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 출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도장을 찍거나 서류에 사인하기 위해 재택근무 중에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2%로 나타났다. 매우 높은 비율의 직장인이 도장 때문에 출근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사람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면, 도장 사용은 일상화되어 있다. 통장개설, 보험계약, 자동차 구입, 집 구매, 결혼, 이혼, 출생신고, 출근부, 영수증, 계약서 등은 물론 택배를 받을 때, 아파트단지의 주요 공지사항을 집집마다 회람할 때도 도장을 찍는다. 우편물을 보낼 때도 집집마다 주소를 새긴 고무 스탬프 정도는 거의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도장 하나로 여러 군데 찍는 것이 아니라 용도마다 다르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일본인들은 이토록 도장을 고집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일본에서 도장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 즉 본인확인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장은 사회적 관계에서 또 다른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사회에서 도장은 개인을 나타내는 심벌 이상의 의미이다. 도장이 지금과 같이 행정기관, 회사 간 거래, 개인 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필수적인 소통·확인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이다. 일본사회에서 도장은 국가에 의한 개인의 통제 수단, 근대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개인 또는 회사 간 거래 방식,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회사와 같은 민간조직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방식, 또는 의사결정에 수반하는 책임의 소재 및 추궁방식, 마지막으로 국민ID(한국의 주민등록번호)과 같은 개인을 확인·증명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도장이 본인확인 수단이 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도장이 본인확인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인감증명제도가 있다. 1870년 메이지정부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성씨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규격화 된 도장을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1878년부터 인감증명제도가 시작되었다. 이후, 개인 간 계약이나 거래에 도장으로 확인된 것만 인정하고 보장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도 인감증명업무는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는 업무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인에게 도장은 자신을 증명, 확인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인감제도의 영향으로 도장은 전 국민에게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메이지 정부가 출범하고 30년이 채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도장 파는 기능공들의 전국조합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전국에 4,000개 업체가 성업 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메이지정부는 개인들이 도장을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할 때도 일정한 규격을 제시하였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형태로 도장이 보급되었다. 결국 도장은 정부가 국민을 관리하는 수단이었으며 개인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하여 관청에 등록하는 도구였다.
이렇게 시작된 도장은 메이지정부가 추진한 근대화정책과 더불어 경제적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산업화의 기본적 인프라로 작용한다. 이 시기 산업화는 농촌사회의 폐쇄적, 1차적인 사회관계를 개방적이고 도시적인 사회관계로 변화시켰다. 농업사회에서 신용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인간적 관계에 기반한다. 그러나 도시적 산업사회에서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관계이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 간에 유익한 계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용을 확보하는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바로 도장이었다.
도장은 사회적 비용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공증기관이나 변호사와 같은 제3자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사회에서 도장은 당사자의 의사표시 수단이며 계약이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도장은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증가하는 경제적, 사회적 거래 관계에서 신용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었다.
전쟁시기에는 월급이나 배급 확인 수단으로
도장이 개인들의 생활 속에서 본인확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계기는 전쟁이었다. 1894년부터 10년 간격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이어졌다. 정부는 전쟁에 동원된 국민에게 월급을 지급하면서 본인확인 수단으로 도장을 찍게했다. 월급이 본인에게 지급되었으며 그것을 확인하는 수단이 도장이었다.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회사나 관공서에 취업한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특히, 1940년대 접어들어서 일본이 시작한 전쟁이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전시통제경제가 시행되면서 쌀, 소금 등 생활필수품이 배급제로 전환되었다. 배급경제 상황에서 배급품이 지정된 사람에게 전달되었음을 확인하는 수단도 도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장은 자신을 대리하는 수단이며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도장이 가지는 사회경제적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더구나 현대사회 일본에서 개인은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을 가지지 못했다. 신분증이 없는 사회에서 도장은 자신을 증명하는 본인확인 기능을 유지하게 되었다.
도장은 조직에서 책임을 분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
도장은 일본형 의사결정방식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회사나 관공서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활용되는 의사결정방식이 품의제 결재방식이다. 조직의 하급자(또는 업무담당자)가 기안을 하고 최고 결정자까지 순서대로 올라가면서 결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업무와 관련된 다른 부서의 관계자도 결재에 참여한다. 이러한 의사결정방식은 조직 내 이해당사가가 모두 합의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한 한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서 책임의 소재가 애매해지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도 수상이나 장관이 책임지지 않고 말단 공무원이 처벌되는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책임의 분산화를 가져오는 도장문화의 영향이다. 품의제 의사결정방식에서 도장을 찍는 칸이 위에서 아래로 만들어지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직후, 미국과 연합국에 의해 전범처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의사결정자를 가려내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 이유가 바로 품의제도에 기반한 도장문화 때문이었다. 전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자가 자신은 아래에서 결정해 온 내용에 단지 도장만 찍었다고 항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도장은 의사결정과정에 동의하는 표시일뿐만 아니라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수단으로도 이해한다. 결국 도장은 리스크 분산이나 책임면제를 합리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결국 도장은 조직 내에서 누가 결정했는지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도장은 일본사회에서 조직 유지 및 관리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도장의 역할은 끝났지만 관행이라서 유지
그러나 최근에는 도장의 이러한 기능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기술과 3D 프린터 등 기술발달로 진정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되었다. 도장은 누구나가 쉽게 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단지 관습적인 상행위, 관례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수단으로 변화되었다. 실제로 2020년 6월 내각부, 법무부, 경제산업성이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법상, 계약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성립하는 것으로 서면으로 작성 또는 서면에 도장을 찍어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하였다.
앞에서 소개한 설문조사에서도 ‘도장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이 74.7%이다. 도장이 가지는 의미가 달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도장 폐지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50.1%로 나타났다. 폐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거래처의 ‘계약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어서’ 51.4%, ’법적인 유효성이나 시큐리티 불안’ 순으로 나타났다.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로 이행하는데는 심리적인 저항이 동반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장문화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배경에 가업중시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치도 가업으로 승계하는 2세, 3세 의원들이 적지 않다. 의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회사 운영도, 시장의 가게도 마찬가지이다.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면서 존재하는 방식에 거부반응도 크지 않다. 일본은 기존질서를 수용하고 이러한 행위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변하지 않고 지속해가는 것에 가치부여를 하는 사회이다. 일본 사회에서 개인은 집안, 회사, 단체 등 집단 속의 구성원인 개인으로 존재하여왔다. 일본에서 도장을 만들 때, 이름 전부보다는 성만 새기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파편화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도장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도장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가 제시한 마이넘버카드를 이용한 본인인증은 미덥지 못하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도장을 찍으려고 출근하는 진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정부는 도장을 폐지할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에서도 출근하는 현실을 반영하여 2020년 9월 새롭게 등장한 스가요시히데(菅義偉)수상은 정권운영의 핵심적인 정책으로 도장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9월 25일, 스가정권에서 규제개혁담당 장관을 맡고 있는 고노타로(河野太郞)는 행정절차에 수반하는 모든 도장 날인을 폐지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정부 각 부처 공무원에게 인허가나 행정업무에 도장이 필요한 경우,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자료와 함께 제출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리고 낙후된 디지털 문화를 변혁시키기 위해 주무관청인 디지털청을 2021년 9월에 출범시킨다. 일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장 폐지와 디지털청의 신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본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이노베이션이다. 또한 디지털기술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행정기관의 서비스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시키려는 행정개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일대 전환을 위해 스가 내각은 2021년 5월 이른바 ‘디지털 개혁법’을 통과시키고 제반 개혁적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장 폐지’는 디지털 후진국 일본이 4차산업사회(Society 5.0)로 도약하려는 야심찬 시도의 첫발이라고 볼 수 있다.
행정기관 도장 폐지를 가로막는 요인들
그러나 일본정부의 이러한 도전적인 시도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 요인이 가로막고 있다.
첫 번째 장애요인은 현재 스가정권이 관료제 및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할 수 있는 리더십 또는 정치적 자원이 없다는 점이다. 중앙부처의 관료들에 대해서는 내각부에 설치된 인사국을 통해서 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1990년대 이후, 지방분권개혁으로 재원이나 권한을 이양한 상태이다. 지방교부세나 사업보조금 등으로 참여를 강제하기에는 권력적 자원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도장을 대체할 대안은 전자서명, 공인인증제도의 보급인데 이 또한 보급률이 낮다.
일본 정부는 현재 도장의 기능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마이넘버카드(일본의 전자주민등록증)와 연계한 전자서명, 공적개인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마이넘버제도는 2015년부터 행정절차에서 필요한 개인을 식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롭게 도입되었다. 총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으로 마이넘버카드를 보유한 국민은 4,343만 명 정도이다. 이는 전체 국민의 34.2%이다. 나머지 65.%는 도장을 대체할 수단이 없다. 마이넘버카드를 활용하면, 인터넷 계약, 온라인투표 등에서 본인확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편의점에서 주민등록 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향후 의료보험증, 운전면허증 등과도 통합될 계획이다.
이러한 활용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는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과다하게 보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보유, 관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군국주의적 국민 통제와 연결된다.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정부는 국민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물자는 물론 사람들을 징집하였다. 전시체제하에서도 국민들은 철저하게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패전에 대한 고통도 결국은 국민의 몫이었다. 이러한 전쟁시기의 국민총동원체제에 대한 트라우마는 개인정보의 국가통제에 대한 반발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주민등록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주민등록은 각 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관리한다. 전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부여하는 번호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개인에 관련된 정보를 관리하는 방식도 분야마다 각기 다르다. 의료보험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관리기구가 독자적으로 관리한다.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를 매개로 연계되어 있지 않다. 일본정부가 마이넘버카드를 새롭게 신설하려고 하는 이유도 국민 개개인의 행정정보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시스템 통합이 선행
두 번째 장애요인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시스템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행정절차의 디지털화가 느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행정정보시스템과 1,718개 지방자치단체(2021년 1월 기준)의 행정정보시스템은 각기 다르다. 각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본정부가 2020년 코로나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추진한 재난지원금 지급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만 엔(114만 원 정도)을 재난지원금으로 지원하였다. 그러나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와 시스템 차이로 온라인 신청을 받지 못하고 창구나 우편으로 신청을 받았다.
또한 행정관청 업무에서 도장을 모두 폐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정보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스가 정부가 디지털청을 새롭게 신설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향후 5년 이내에 지자체의 정보시스템을 통합하고 모든 국민들이 전자서명을 활용해서 도장이나 첨부서류 없이 원스톱 행정민원처리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전국의 지자체 행정정보시스템이 통합되지 않는 한 민원처리에서 전자서명이나 공인인증서 사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행정관청에서 도장 날인이 필요한 업무는 11,000건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도장 폐지는 결국 창구업무의 축소, FAX나 우편으로 서류를 제출하는 행정관행을 폐지하는 것이다, 행정업무처리가 전례주의를 고집하는 일본의 행정문화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도장이 필요 없는 행정처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소득세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급여소득자 부양공제신고서'는 서류 제출 시, 국세통칙법 제 124조 2항에 따라 도장 날인이 의무화되어 있다. 부양공제 신고서를 제출하는 급여소득자는 연간 4만4000만 명 정도이다. 전입신고에도 도장은 의무화되어 있다. 주민기본대장법시행령 제26조에 따라서 도장을 찍어서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법안 개정에도 반대가 만만치 않다.
세 번째 장애요인은 도장업계 및 여당의원의 반대이다. 정부는 2018년 법인설립과정에서 회사의 직인 등록을 폐지하는 상업등기법 개정안을 제출하였으나 대체수단의 준비가 늦어지고 업계반발로 무산되었다. 결국 상업등기법은 2019년 법 개정이 이루어져 회사의 직인 제출이 임의조항으로 변경되었지만, 아직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법인의 부동산등기등록과 관련해서도 인감증명서 제출과 같은 서류 제출은 폐지되었으나 법인의 실인제도는 여전히 남게 되었다.
여당 자민당에는 「일본의 도장제도·인장문화를 지키는 의원연맹」이 존재한다. 행정절차에 필요한 도장 폐지로 국민의 신뢰수단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자민당의 의원단체는 법 개정에 반대하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스가정부의 도장 폐지에 대해서 도장업계의 반발도 거세다. 900개 도장업체로 구성된 일본도장업협회는 이번 행정절차에 필요한 도장 폐지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인감증명제도의 폐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감증명제도의 존속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령사회와 IT 리터러시 문제
마지막으로 일본사회에서 도장문화와 행정디지털화를 고려할 때, 고려해야 점이 고령자문제이다. 2020년 9월 15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617만 명, 전체 인구의 28.7%이다. 고령자의 비율은 IT 리터러시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특히, 시정촌(한국의 구시군)행정 업무의 많은 비율이 주민의 사회복지와 관련되어 있다. 농촌지역은 물론 도시지역에도 고령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행정디지털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정이다. 고령자세대는 다른 세대보다도 도장문화에 익숙하다.
더구나 전후 일본이 패전을 딛고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현역으로 일본사회를 이끌어 온 장본인이다. 이들은 전후 일본이 만든 경제성장에 대한 성공신화를 고집하며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현실적으로 고령자세대는 행정정보화와 서비스 이용을 위한 IT 리터러시 문제와 맞물리면서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많은 업무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적 인증제도의 정비가 가장 시급
일본에서 도장을 없애기 위한 대체안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방안이 마이넘버카드를 이용한 전자서명 및 공인인증기능이다. 그리고 민간분야에서 도장을 대체하는 방법으로는 에스토니아나 EU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자도장(e-seal) 제도이다. 전자도장(e-seal)은 청구서, 영수증 등 회계서류에 디지털 데이터 형태의 e-seal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전자서명도 사용가능하다.
EU는 e-seal를 활용하여 금융,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민간분야에서는 트러스트 서비스(trust service)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트러스트 서비스는 데이터의 위조, 변조 방지를 위한 서비스이며, 이것은 전자 데이터(문서)의 작성자 및 데이터의 내용이 위조, 변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스템이다. 이외에도 전자서명 서비스나 도장 자체를 전자화하는 서비스 등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도장문제의 근원은 공적 영역에서 사용 관행이다. 행정기관의 도장 폐지가 이루어진다면 민간 영역으로도 어렵지 않게 파급될 것이다. 그러므로 도장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공적 인증제도의 정비가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인프라 정비와 민간 영역에 대한 지원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도장문화가 만들어내는 일련의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한국사회와도 중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현상을 고려할 때, 더더욱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고령화 사회가 직면하는 행정서비스의 디지털화와 온라인 거래의 일상화는 한일 양국이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에스토니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디지털인증서와 신분증을 통합된 ID카드 보급이 대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서 국가가 막대한 개인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에 대한 불신이 지나치게 크다. 일본에서는 마이넘버카드제도에 대한 거부, 한국에서는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이 실패로 돌아갔다. 양국에서 국가에 대한 불신이 디지털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인증이 식당이나 편의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의 자기통제권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개인정보 보유에 대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EU와 같이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헌법적 권리로 보정하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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