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노동조합은 trade union이다.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노동조합을 '무역협회'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몇 해 전 연합뉴스가 독일노동조합총연맹, 즉 독일노총인 German Trade Union Confederation을 독일무역협회로 오역한 기사를 전송하는 바람에 이를 그대로 받아 쓴 한국 신문사들이 "독일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역협회 회장도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한다"는 오보를 쏟아낸 적이 있다.
노동조합은 원래 '직업인단체'
Trade에는 여러 뜻이 있다. 무역이나 거래라는 뜻도 있지만 직업이란 뜻도 있다. 북한에서는 노동조합이라 하지 않고 직업동맹이라 한다. trade union의 속뜻을 잘 살린 우리말 해석이다. 노동조합이란 별게 아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노동조합이다.
국민건강서비스(NHS) 제도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의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영국에 갔을 때다. 초청 노조로부터 방문할 곳들을 추천 받는데, Royal College of Nursing(RCN)이란 곳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왕립간호대학에 간다고 동행한 한국노조간부들에게 설명하고 RCN을 방문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관계자 설명을 들어보니 RCN은 간호인력을 양성하는 간호대학이 아니라 간호업에 종사하는 회원 40만명을 둔 간호사협회였다. 더 놀라웠던 점은 RCN이 간호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직능단체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간호사협회가 간호사노조였고, 간호사노조가 간호사협회였던 것이다.
의사협회도 노동조합
노동조합론을 공부하면 노동조합의 조직형태(기업별노조, 직업별노조, 산업별노조, 지역별노조, 일반노조 등)를 배우는 데, RCN은 노동조합의 역사적 맹아인 동업조합(guilds)의 전통을 계승한 전형적인 직업별노조(craft union)인 셈이었다.
국제노조회의에서 스웨덴 친구를 만나니, '귀족노조'가 선거 때마다 친노동 좌파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친자본 우익정당을 지지해서 골치라고 투덜거렸다. 들어본 사정은 이랬다. 스웨덴에는 노총이 3개 있다. 제조업노총(LO), 사무직노총(TCO), 전문직노총(SACO)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전문직노총 소속 노조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직노총에는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약사협회, 군장교협회, 학교장협회, 예비군장교협회, 건축사협회 등 전문관리직 종사자 단체들이 결집해 있다. 문제는 스웨덴 노동시장의 상층부에 속한 이들이 선거 때마다 진보좌파정당을 무시하고 공공연히 보수우익정당에 표를 준다는 것이었다.
변호사와 의사도 '일하는 사람'
누구나 자기 노동으로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자기 노동으로 취업하여 직업생활을 영위한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일하는 사람(working people 혹은 workers)이다. 일용직잡부도 일하는 사람이지만, 의사나 변호사도 자기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일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일하는 사람에게 '결사의 자유'를 두 번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제21조를 통해 국민의 자격으로 보장받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제33조를 통해 근로자의 자격으로 보장받는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하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같은 '근로자단체(employees' organisations)'만 생각한다. 하지만 영국과 스웨덴 사례에서 보듯이, 직업이나 직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을 하는 trade union으로서의 노동조합 문제를 논할 때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대한변호사협회같은 전문직단체들도 포함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
'주인님들의 단체'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자본론>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에 나오는 말이다.
아담 스미스의 이야기를 지금의 한국 상황에 빗대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변호사협회는 대표적인 '특권귀족노조'
나는 "주인님들의 단체" 범주에 최재형과 윤석열, 그리고 문재인과 이재명과 송영길 같은 법조인들이 회원으로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감행하는 반사회적 의사들의 단체인 의사협회도 마찬가지다. 이들 단체는 의사와 변호사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총파업과 국가시험과 인턴채용 거부 등 다양한 '단체행동'을 법률과 공권력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행사해왔다.
문제는 민주노총같은 '근로자단체들'의 총파업은 허장성세로 드러나면서 내세운 요구를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반면, 변호사협회나 의사협회 같은 '주인님단체들'은 총파업을 실제 감행하지 않더라도 정부 관료들이 알아서 기어 주면서 '주인님들'의 요구를 수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보면, 자기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은 피를 흘리며 단체결성권을 확보해 자기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반대로, 법지식과 법기술을 활용해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봉건시대부터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까지 변함없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법률가계급은 국가권력의 지원 속에 자신들의 이익단체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인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창설된 '사회적 특수계급'
대한민국헌법은 제11조에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변호사협회나 의사협회, 그리고 전경련과 경총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특수계급들"이 창출되어 국가권력의 비호 속에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이 사회적 특수계급에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인들과 '보수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인들도 끼여있는 지 오래다. 퇴직한 고위 관료들도 여러 협회들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는 추세다.
법률가라는 사회적 특수계급에 속한 최재형은 "소수 특권노조의 부당한 기득권 남용과 불법행위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며 "자녀 우선채용이라는 고용세습장치,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간부의 비리가 만연하는 등 수많은 비상식적 특권과 불법행위"를 거론했다. 누워서 침 뱉기 인 게,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변호사와 의사 같은 사회적 특수계급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재형이 '독실한 기독교인'?
위키피디아에서 '최재형'을 검색하니,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교회장로 최재형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불법을 일삼는 진짜 '특권귀족'은 누구인가?
최재형은 "불법을 일삼고 방역지침을 비웃는 안하무인식 불법집회를 강행하며… 감금해 폭행해도 경찰이 손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짐에 따라 국가경쟁력과 민간의 고용창출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태"의 책임이 '특권귀족노조'인 민주노총에게 있다고 핏대를 세운다.
이 말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최재형은 똑같은 잣대를 법조인들이 '조합원(member)'으로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동생 최재민이 조합원으로 있을 대한의사협회(위키피디아는 '최재민'을 소아과 개업의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전광훈 같은 우익기독교도들에게도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나치즘을 떠올리게 하는 최재형의 '노조 때리기'
히틀러(1889~1945)의 충복인 괴링(1893~1946)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특권귀족'인 법률가 최재형의 '조직노동(organised labour) 때리기'에서 독일 나치당의 선전선동을 떠올린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1933년 1월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히틀러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좌파노동운동 죽이기'였다. 동일한 시기 조선총독부(1910~1945)도 당시 막 등장하던 조선의 노동조합운동에 무지막지한 탄압을 퍼부어 끝내 말살시켰다.
다른 공약들에서는 준비와 공부가 안 되었다며 겸손한 척 하던 최재형이 자신 있게 내건 첫 공약이 '노동조합운동 죽이기'인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특권귀족'인 최재형의 신분과 반공-친미로 일관하며 양지만 좇아 살아온 그의 이력을 감안할 때 대단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독립운동가로 색칠하려 했지만, 차츰 드러나고 있는 그의 선친들의 조선총독부 시절 행적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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