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시민 기본권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사법부와 입법부마저 이에 동조해 인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구체적 보고서가 나왔다.
무분별하게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하고 집회와 시위의 권리와 감염병 예방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행정력을 발휘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각 사회인권단체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하 대응팀)이 공동 작성한 '코로나19와 집회시위의 권리'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발표자들은 지난해 정부의 집회 금지통고건수가 전년(2019년) 대비 4000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는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아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최홍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이 공동 작성했다.
스포츠 관람은 허용, 집회는 불허…한국 정부의 이중 잣대
대응팀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시에 신고된 집회 3만4944건 가운데 서울시장과 경찰의 금지통고건수는 총 3865건이었다. 금지통고비율은 11.06%다.
이는 전년(2019년) 3만6551건의 신고 가운데 1건의 금지통고만 내려진 데 비해 폭증한 수치다.
금지통고의 주요 사유는 '공공질서위협'이 3641건으로 가장 많았다. 집회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전파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시각이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 코로나19 위험이 점증하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관한 행정적 제한은 점차 구체성을 보였다.
지난해 2월 21일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되자, 서울시는 같은 달 26일 서울역 광장-서울광장-청계광장-광화문광장-효자동삼거리로 이어지는 광장 및 주변 일대와 종로1가 등 주요 장소에 집회금지를 고시했다. 이 고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6월 29일 처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체제가 도입되고 거리두기 1단계가 적용됐다. 당시 목표는 '방역과 일상생활의 양립'이었다. 이에 따라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집합과 모임 및 행사가 허용됐고, 스포츠 행사에는 제한적으로 관중 입장이 허용됐으며, 등교 수업도 허용됐다.
그러나 이 시기 민주노총의 '7.4 전국노동자대회'는 전면 금지됐다.
특히 지난해 8월 16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돌입하면서 실내 50인, 실외 100인 이상이 모이는 행사가 전면 금지된 가운데, 집회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 10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됐다. 집회에만 거리두기 3단계에 해당하는 조치가 앞서 내려졌다.
지난해 11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5단계 체제로 개편되고, 서울시에 거리두기 2단계가 적용됐음에도 집회에는 여전히 3단계 수준의 제한이 가해졌다.
각 지자체가 앞장서서 집회를 적극적으로 제한한 배경이다. 정부의 일관된 흐름에 따라 서울시와 서울시 10개 자치구, 6대 광역시, 경기도 31개 지자체가 전부 행정명령을 통해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관내의 모든 집회를 원천 금지했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전면 제한됐다.
따라서 집회하는 이는 앞장서 처벌 대상이 되고, 이는 곧 집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의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시민의 다양한 공적 활동 가운데 행정부가 집회와 시위를 가장 먼저 전면 금지했다"며 사실상 집회 차별이 이 기간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인천시는 시청사 주변의 집회는 금지하면서 드라마 촬영은 허용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경기도 여주시도 집회는 전면 금지하면서 신속 PCR 검사를 활용해 행사는 진행하는 모순된 입장을 보였다.
행정부 폭주에 입법부마저 찬동...국회가 인권 침해 앞장서
행정부의 인권 침해가 일어날 경우, 이에 대한 방어는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두 기관마저 인권 침해에 동조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지난해 7월 28일 서울행정법원은 방역을 이유로 하는 서울시의 집회 전면 금지가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시하고, 이 같은 대응은 위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결정 이후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8.15 집회' 이후 사회적 비난 여론이 커지자, 사법부마저 여론에 동승하기 시작했다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한희 변호사는 "지난해 9월 20일 인천지방법원이 마스크 착용, 2미터 거리두기 등 별지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가한 후 다른 법원에서도 유사하게 별지 조건을 붙여 집회를 부분 허가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이 흐름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과도한 제한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정부 거리두기 지침상 3단계에서도 10인 미만의 집회가 가능하지만, 정작 법원이 별지 조건에 '3단계 시 집회 전면 중단' 조건을 붙이기도 했다.
한희 변호사는 "법원의 과도한 별지조건이 그 자체로 새로운 형태의 집회 제한조치"라며 "법원이 지자체 행정이 갖는 문제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회의 자유 제한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법부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동승했다. 지난해 8.15 집회로 인해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이 일어나자, 특히 여당을 중심으로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적 법안 발의가 무수히 제기됐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 20일과 2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전광훈 방지법'이다. 처벌 수위를 강화한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다.
전용기 의원안은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집합행위 금지 위반 형량을 징역형 수준으로 강화했고, 오영환 의원안은 감염병예방법상 집회 금지조치 위반 형량을 기존 벌금 300만 원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나아가 이원욱 의원은 감염병 상황 시 집회와 시위를 전면 제한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국가인권위마저 해당 개정안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낼 정도였다.
행정부 감시가 본래 목적인 입법부 기관이 앞장서서 시민 기본권인 집회를 통제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보루여야 할 입법부가 파시즘적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의 대응이다.
한희 변호사는 "'OOO 금지법'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법체계 정합성이나 헌법 합치 여부에 관한 검토 없이 이슈에 편승해 언론 보도를 목적으로 이뤄진 법안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법안이 실제 제정으로 이어지는 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희 변호사는 "국회는 입법기관인 동시에 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 정책을 마련하는 기관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국회는 집회의 자유와 방역 간 조화로운 해결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엔도 집회 권리 보장 강조…"집회 보장은 선택 문제 아냐"
코로나19 시국에 일어난 이 같은 집회 제한 흐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집회에 관한 시각을 재점검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인 집회의 자유에 관한 우리 사회의 성실한 고민이 과연 있느냐고 회견 참가자들은 지적했다.
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집회와 시위를 적대하고, 시민의 권리를 축소하려 했다"며 "코로나19 시국이 되자, 정부는 집회에 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고 비판했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 1월 20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확진자의 감염경로를 분석한 조사 자료를 보면, 사업장(6.1%), 종교 시설(5.9%), 의료기관(4.7%), 가족 및 지인 모임(3.2%), 요양 관련 시설(2.5%)이 주요 감염 경로"였지, 집회는 아니었다며 "영국의학저널에 따르면, 밀집도가 낮고 환기가 잘 되는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쓴 상태로 장시간 (감염자와) 접촉하며 소리치거나 노래하더라도 전파 위험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집회 금지 조치에 관한 원칙이 없이, 각 지자체장 자의로 금지가 이뤄졌으며 △이 때문에 집회와 다른 사회활동 간 형평성 문제가 심각했고 △집회금지 및 제한 조치에 관한 개선 의지도 없었다고 지난 한 해를 돌아봤다.
대표적 사례로 '2020 한국전자전' '2020 더 골프쇼'와 같은 대규모 박람회, 하루 평균 20만 명이 방문하는 '더현대 서울' 백화점 오픈 행사 등은 감염병 전파 위험이 큰 대규모 실내 밀집 활동은 허용된 반면, 감염병 전파 위험이 훨씬 떨어지는 실외 집회는 전면 금지하는 모순적 대응이 지난 한 해 한국 행정부의 태도였다는 비판이다.
정록 활동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조치는 인권 존중의 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채택 전 시민사회와 논의해야 한다'는 유엔특별보고관의 원칙을 인용하며 "집회시위 권리와 같은 기본권은 그 제한이 예외적이어야 하고, 제한이 이뤄지더라도 기한은 일시적이어야 하고, 제한에 따른 효과와 피해에 관한 사전 사후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시기에 집회가 더 절실한 이들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 필요하다 정록 활동가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살인적 노동 환경에 노출된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목소리는 코로나19 시기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록 활동가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집회가 안전하게 이뤄질 것을 장려했고,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방역수칙을 지키는 집회는 개최되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미국 공중보건 전문가 1288명이 코로나19 시국에도 집회시위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며 "방역과 집회시위의 권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광훈 목사 집회도 보장해야 민주주의"
정록 활동가는 코로나19 시기 방역당국은 집회를 무조건 금지할 게 아니라, 집회와 시위가 안전하게 개최되도록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방역당국이 집회와 시위 참여자를 통제 대상이 아닌, 방역의 주체로 대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집회의 제한은 일시적이어야 하며, 이후 검토를 통해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할 행정 조치라는 평가도 나왔다. 근본적으로 집회금지의 남용이 가능한 감염병예방법 49조 1항을 개정하는 게 입법부의 의무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같은 맥락으로 오는 14일부터 16일로 예고된 전광훈 목사의 광복절 집회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랑희 활동가는 "작년의 광복절 집회로 인해 많은 분이 (올해 전 목사 집회를) 걱정하시겠지만, 그간 전 목사 태도는 조금씩 변했다. 이번에도 방역 수칙 준수, 신속 PCR 검사 등을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이처럼 방역수칙을 준수하겠다는 집회는 우리 사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랑희 활동가는 "정부가 무조건 그들을 적대하기보다, 대화 상대방으로 삼아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지금은 전 목사 집회를 포함해 모든 집회에 관해 주최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집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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