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자회사 고용 및 500만 원 지급을 대가로 불법파견 등과 관련한 일체의 법적 권리를 포기하라는 확인서를 받고 있다.
기계정비 등 정규직과 같은 공정에서 섞여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법적 권리를 포기하고 현대제철이 설립을 추진 중인 자회사 '현대 ITC 주식회사'로 가도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적 책임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꼼수'로 읽힌다.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 9일경부터 자회사 입사를 지원한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시정지시 이행 확인서'와 '부재소 확약서'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자발적으로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직접고용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기존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내하청업체와 맺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임금협약, 노동관행 등을 근거로 현대제철이나 현대 ITC 주식회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사내하청업체 시절의 임금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이에 동의하는 대가로는 자회사 입사와 격려금 500만 원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법적 권리를 포기하고 자회사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시절과 비슷한 차별적 처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총무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자회사로 가면 평균적으로 기존 정규직 대비 70~72% 정도이던 처우가 80% 수준으로 오른다고 하지만, 그 가능성은 불확실하고 개선 폭이 크지 않다"며 “정규직과 자회사의 상여금 기준이 다르고 정규직과 달리 자회사에서 호봉제 시행 여부도 확인되지 않아 정규직과 자회사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은 기본급과 기여금으로 구성된 자회사 노동자의 기본시급을 사내하청업체 근속연수에 따라 1년차 1만 230원에서 20년차 1만 3200원 사이로 제시하고 있다. 연차가 쌓이더라도 급여 상승폭은 제한적이다.
김 부장은 “임금뿐 아니라 복지도 문제가 된다"며 “자회사로 가면 신규 입사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속에 따라 부여되는 연차휴가 등에서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자회사 입사를 지원한 노동자에게 받고 있는 확인서에 대해 "일반적으로 회사와 소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사는 어렵다"며 "이후 다툼의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회사 방식 고용 및 정규직과의 차별에 대해서는 "입사 경로가 다른 정규직과의 형평성, 비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기존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나 안정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최적의 방안을 찾아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2019년 9월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61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청구 항소심에서 광주고등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불법파견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 현대제철은 지난달 7일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달 30일 15개 사내하청업체에 오는 31일 도급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의 자회사 설립을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직접고용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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