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식민지배 35년에도 한국문제는 존재했다'에서 이어집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골간은 소련(러시아)과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 동맹 강화와 그 하부구조에 한미 동맹을 편입하는 과정이었다. 미중갈등, 한일관계 악화, 남북관계 정체로 요약되는 '3중고'가 뒤엉킨 현시점의 한반도 상황은 일제강점기와 분단, 냉전 시기의 국제적 알력을 연상케 한다.
한승동 전 기자는 "동아시아 문제의 근원은 일본 우파"라고 본다. 아베 전 일본 총리로 대표되는 이들이 전쟁범죄에 사죄하고,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을 먼저 내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도덕적으로 파렴치 한" 일본의 뒷배이며, 현 정부는 더 강하게 일본과 미국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구대열 이화여대 교수는 "범죄적 행위는 일본 역사의 본질이며, 식민지배의 잘못을 인정하면 일본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면서도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식민지배 문제는 우리가 향후 100년을 두고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당장의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출구를 생각하고"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지난 5월 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발표한 한미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데에도 "깜짝 놀랐다"며 "중국이 이를 문제 삼는다면 사드보다 더 크게 문제삼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달 29일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밝힌 동아시아 정책 제안에도 좌담 참석자들이 주목했다. 이 글에서 브룩스 전 사령관은 북한을 한미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끌어들이자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에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반중 군사동맹에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면 거부해야 한다"고 경계하면서도 "남북 분단을 고정불변으로 봤던 미국의 생각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속마음을 보였다면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남북 간 교류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좌담 전문.
한승동 "문제의 근원은 일본 우파", 구대열 "현정부는 책임 없나"
한승동 : 미국, 일본, 조선(한국) 관계는 일본 패전 뒤에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으며 냉전으로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고 본다. 미국은 일본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소련에게 한반도 절반을 내주었고, 패전국 일본을 사실상의 전승국으로 만들었으며, 남한을 일본 방위의 전방기지로 활용하고 엔 경제권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나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논란 때도 결국 미국은 일본 편을 들었고, 한국의 자존이나 가치와 무관하게 현상유지를 한국에 압박했다. 지금 한국의 지위는 일제 강점기 때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미국과 일본, 한국의 관계는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지금도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대열 : '패전국 일본을 온전히 차지하는 것이 미국의 확고한 의지였다'거나 '소련에게 한반도 절반을 내주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후 미국의 정책은 냉전과 공산 중국의 대두와 함께 일본을 부흥시켜 세력균형을 맞추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를 위해서 한일 간의 화해와 미국을 중심으로 3국간에 준동맹적 관계를 강화한 것이다. 남한 자체만으로 가치가 크지 않을 때는 일본 방위의 전방기지로 인식한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의 경제부흥으로 인해 이런 사고는 조금 변했다.
한국 현정권에서 한일관계가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미국의 정책 방향과 다르게 나아가자 미국은 한일관계 문제를 조정, 해결하려 하기보다 양국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미국이 묵시적으로 일본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현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이 앞으로 100년을 두고 거론하고 추궁하며 이용할 수 있는 이슈다. 징용 문제를 다룬 대법원도 국가를 지탱하는 3대 기관 중 하나라면 법률적 기준 이상의 안목으로 국가경영에 기여해야 한다.
한승동 : 최근의 한일관계에서 출구계획이나 플랜B 없는 현정부를 비판적으로 보신 듯하다. 국가기관인 대법원이 국가를 고려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부는 위안부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일제의 식민지배를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도덕적인 차원에서 파렴치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 대응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비판적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약하지 않나?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독일이 비교된다. 이건 한일관계나 민족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범죄의 문제다. 독일은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 가능한 배상 노력을 하고,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 꿇고 사과했다. 반대로 일본은 한국민족의 반일감정으로 돌리고 자기들 전범을 은폐했다. 일본이 아시아 민족에 대한 침략을 정말로 반성한다면 도쿄 궁성 앞에 소녀상을 세워도 모자란데, 이렇게 불량배 같은 짓을 하면 우리가 대응할 방법은 뭔가?
강제징용과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한 것도 민주화 이후 국가적 위상과 국가관 자체가 달라진 배경 위에 나온 것이어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어느 시대보다 선명하게 내세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구 교수님은 지나치게 우리 내부 문제만 본 것 아닌가?
구대열 :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했을 때, 내가 수업시간에 '히로히토가 한국 탑골공원에 와서 무릎 꿇고 사죄만 했어도 한일관계가 해결됐을 텐데, 자기 시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넘긴 점에서 안타깝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은 독일처럼 '위대한 걸음(great gesture)'을 내딛지 못했다. 나치즘은 유럽 정신사에서 사생아다. 독일이 내세우는 문화적 게르만주의에서도 나치독일은 배척된다. 그런 이유로 독일은 빨리 청산하려 한 것인데, 일본의 범죄적 행위는 일본 역사의 본질에 해당한다. 식민지배의 잘못을 인정하면 일본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고 여긴다. 일본 사람들이 전쟁범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내가 한일 간의 문제, 식민지배 문제는 우리가 백년을 두고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한 것이다. 다만 어떤 이슈를 제기할 때는 출구를 생각하고 제기하자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어느 정부나 그랬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간 것도 출구 없이, 대책 없이 했던 것이다.
한승동 : 나 역시 일본의 태도는 역사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3년가량 체류한 적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에게 전범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자기들을 원폭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더라. 2차 세계대전 패전 때가 군국주의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천황제도 폐지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미국이 일왕에게 면죄부를 주는 등 방해했다. 근대 이후 유럽과 영국, 미국은 주로 중국을 표적으로 삼아 일본을 우군으로 활용했다고 본다.
우리는 이런 강대국 거래에 결과적으로 희생양이 됐다. 지금도 동아시아와 일본,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에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지 않나 싶다. 강대국 위주의 국제정치학으로 보면 우린 할 일이 없어지겠지만, 우리가 이를 벗어나려면 미국이 바라보는 시각을 용인하기보다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국 간의 거래나 국제정치도 정의의 관점에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백인의 짐(Whiteman's burden :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한 인종주의적 주장. 편집자)'이라는 것도 자신들은 정당하고 다른 민족의 희생은 돌아보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구대열 : 미국의 '핵심이익(vital interests)'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중남미, 그리고 대서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유럽과의 소통망 유지였다. 냉전 이후에는 소련을 막기 위해 서독, 이란, 일본을 키운다. 냉전이 시작되자 일본을 재무장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독에서는 곧바로 전범 문제가 처리됐지만,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기본적인 국가정체성과 합쳐져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 식으로 나온 것이다.
인류 역사를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과연 정의에 입각한 동물인가? 고대 로마는 카르타고의 씨를 말렸다. 몽골제국은 도시를 없앴다. 인간의 과욕을 억제하는 것은 규범이다. '백인의 짐'은 하나의 명분이다. 당신들 나라는 정말 못사니까 우리가 지배해서 수도도 놔주고 교육도 시켜주겠다면서 착취할 건 다 착취하는 것이다. 그걸 문명의 해택을 줬다고 하는 것인데, 일본도 조선에 그랬다. 그에 대해 서방은 일본이 잘했다고 박수쳤다.
19세기 말 한국 관련 기록들은 너무 비참하다. 문명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모른다는 말로 가득 차있다. 호러스 알렌(Horace Allen)이라는 조선 주재 미국 외교관이자 선교사가 있었다. 친(親)조선적이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조차 일기에서 고종을 이렇게 평했다. '불타는 로마를 보며 금(琴)을 켜는 네로와 다름없다'고. 너무 부정적이어서 읽기조차 싫은 기록들이 많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한국은 별 볼일 없으니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서양을 상대로 한 선전이 많았는데, 2차 대전 시작되면서 이 역할을 중국이 맡았다. 중국이 겉으로는 한국 독립을 지지하면서도 '한국을 지금 독립 시켜선 안 된다. 분열상이 강하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의 경제개발로 인해 최소한 겉으로는 이런 평가들이 없어졌고, 아무리 강대국 간의 정치라고 해도 우리가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학자들이 많이 고민하는 것도 그것이다.
한승동 : 강자의 위치에서 보니 약자가 그리 비친 것일 텐데, 일본 보수우파들은 아직도 한국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본다. 지금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총리가 하는 얘기를 보면 문 대통령과 만나지 않겠다는 이유가 '너희들이 골대를 옮기고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내 시각에선 국제법 협잡이라고 비난을 하고 싶다. 국제법이란 것이 제국주의들이 식민지 전쟁을 하던 때에 각자의 영역을 정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합의한 규율 아닌가. 국제법 일환이라면서 징용공이나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해법을 들고 와야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하고, 4개월 동안 주일대사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는 오만을 보면 일본은 여전히 그런 시각에 있다.
일본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동아시아에 평화는 없다. 동아시아 문제의 근원은 일본 우파다. 일본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납북 일본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한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피해자는 북한에도 많은데 일본은 북한에 사실 인정도, 배상도, 사죄도 하지 않았고 식민지배를 인정한 적도 없을뿐더러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이 먼저 해법을 내놔야한다. 해법이 대단한 게 아니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식민지배와 침략 문제가 불법이었고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하는 흉내라도 내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부끄러워해야지, 되레 지금 한국의 발전은 자기들이 돈을 줘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우리는 대일 적자국이고 일본의 이익이 더 크다. 이런 한‧일 사이의 경제적 주종관계를 구조화 한 것이 한일협정이고, 뒤에서 강제한 게 미국 아닌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겠나.
구대열 : 1960년대에 한일관계를 묘사한 친일적인 책 첫 머리에 '한국 근대사의 최고 영웅은 안중근이고, 일본의 최고 영웅은 이토 히로부미인데, 이 두 사람은 상대국에는 최고의 악당이다. 그것이 바로 한일관계다'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한일 관계가 삐끗하면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조정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선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 측면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나갔다고 평가를 한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이 알아서 하라는 듯이 슬쩍 빠지며 일본 편을 드는 꼴이 됐다. 일본의 태도를 미국이 묵인하는 것이다.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미국, 중요한 기로에 선 한반도"
한승동 :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정무차관 시절, 역사문제가 터졌을 때 대놓고 한국과 중국을 나무랐다. 원인제공자는 일본인데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던 사람이 현재 국무부 부장관이다. (최근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미국 마크 램지어 교수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구대열 : 친일적 태도를 가진 학자에게 일본에 유리한 자료를 주고 무얼 써보라고 하면 램지어 교수 같은 그런 글이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대응은 너무 일회적이다. 미국과 외교관계에서 어느 국장, 과장이 채널을 구축했다면 다음 사람에게도 인계해야 하는데, 그저 개인적인 관계에 그친다. 일본과 유럽은 그런 걸 철저하게 인계한다. 자신의 후임이라면서 연결시킨다.
이부영 : 미국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한국을 일본의 경제 종속형으로 만들고, 한국을 베트남에 파병하도록 해서 반공 진지를 더 강화했다. DMZ 철조망까지 막힌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이니 미국과 일본은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내부에선 4.19 혁명, 유신 반대운동, 1980년 5월 광주항쟁, 1987 6월항쟁, 최근 촛불 혁명이 이어졌다.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당해도, 섬처럼 갇힌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일어난 것이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최근 들어 G7 정상회의에 초청될 정도로 한국은 과학기술과 경제적 발전으로 세계에 기여할 게 많은 나라가 됐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볼 때는 오히려 일본이 한국보다 뒤쳐졌고, 미국이 내세우는 보편적 인권에 비쳐볼 때도 일본은 한국에 비교된다.
특히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며칠 전 미국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유심히 봤다. 전 세계는 물론이고 미국은 한국의 역동성에 주목해 세계 정치전략으로서 중국 독재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일본 중심으로 짜놓은 동아시아 정책을 밀고나가는 것보다, 한국을 중심에 두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미국이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승동 : 경제적 분야와 민주주의에선 일본보다 한국이 더 중국에 위협적이다. 영화 '기생충'이나 케이팝의 파급 효과도 상상 이상으로 크다. 중국이 한국 문화를 차단한 것은 신세대들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반도체나 배터리 등 미국에 필요한 분야에서도 한국의 활용 가치가 커졌다. 일본이 쇠퇴하는 첨단 분야에 한국의 강점이 생긴 것이다. 기존에는 미국이 일본을 위해 한반도 남쪽 절반을 활용하자는 인식이었는데, 브룩스의 사고방식은 남북을 어떤 식으로든 하나로 통합시켜 중국에서 떼어내는 쪽으로 인식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보면,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일본보다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부영 : 브룩스의 글은 미 국무부나 국방부에서 대한, 대일, 대중 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내보인 것이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미국에 적대적이다. 두 나라는 큰 핵국가다. 북한도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핵국가가 됐다. 과거 공산 국가인 이 3개국이 모두 반미를 하고 있다. 미국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든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와 묶인 적대국에서 분리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물론 브룩스가 글에서 북한을 한미동맹에 편입시킨다거나 한국이 반중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대목은 언감생심 될 수도 없는 희망사항이다. 다만 <포린 어페어스> 글의 중요한 의미는, 남북 분단을 고정불변으로 봤던 미국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변화시키고, 남북 간에 통일은 아니더라도 교류협력을 통해 비적대적인 외교관계를 맺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
한승동 :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미국 정치 리더들은 중국과 러시아 관계를 밀착시키고 미국을 고립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만나 이를 되돌려놓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 정책도 변할 조짐이 있다고 본다. 중국을 고립시켜야 한다면 북한은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부영 : 우리도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한국 위상이 굉장히 강화됐고, 북한이 한국의 진의를 믿으면 교류협력을 할 수 있는 시기에 왔다. 브룩스가 미국의 속마음을 보였다면,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번 한미 정당회담, 한미 공동성명에 그 고민이 있었다고 본다. 다만,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 한미동맹에 집어넣고, 한반도를 중국 포위에 단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응하지 말아야 한다. 반중 군사동맹에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면 거부해야 한다.
구대열 : 나는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이 발언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문이다. 미국 압력 때문인지,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한 말인지 모르겠다. 중국이 문제를 삼는다면 대만해협 문제는 사드보다 더 크게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승동 : 대만해협 발언에 대해 중국이 한마디를 했지만 거의 문제삼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선 미중관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고, 한국과 멀어지면 안 되니까 참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위험한 대만해협 문제를 말했을 때는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북한과의 관계에 관한 모종의 선물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북한도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나 김여정 부부장 발언을 보면 강경자세가 누그러졌다. 그렇게 볼 때,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면 남북관계 개선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는 언질을 주지 않았나 싶다. 다만 이런 상황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힘이나 아이디어가 청와대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구대열 : 우리가 통일을 한다면 중국과 소련이 내놓을 청구서가 뭐일까.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군이 삼팔선 넘는 것은 용인해도 미군은 삼팔선 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평양까지 넘어섰을 때 중국이 개입했다. 러시아는 함경도 등 러시아 접경지역은 무장 세력이 위협되지 않도록 비무장하라고 요구했다. 그런 조치 없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을 할 때 일본이 내놓을 것은 또 뭐일까. 우리가 통일을 한다면, 주변국들의 갖가지 장애가 있을 것이다.
이부영 : (브룩스의 글은) 한일 관계 현상 변화에 관한 미국의 방안을 제기한 것이다. 분단 고정 상태의 한반도에 변화 가능성이 커진 것인데, 분단을 만든 미국이 견디지 못해 생긴 변화다. 중국을 포위하려면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야 하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고통, 국제적 제재를 풀어 줄 길을 찾는 과정에서 그 짐을 한국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 간 교류협력이다. 지금은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이야기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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