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은 ‘군수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민선7기까지 전직 군수 6명 가운데 이미 사망한 2명을 제외한 4명 모두 구속되거나 기소되면서 생겨난 오명이다.
여기에 재선거를 통해 새로 취임한 오태완 군수마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근 기소되면서 의령 사회는 다시 한 번 끓어오르고 있다. 게다가 오 군수는 여성 기자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도 당해 있고, 이와 관련해 방역수칙 위반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인구 소멸과 활력을 찾지 못하는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군민 우선, 화합 의령’을 군정 목표로 제시한 신임 군수마저 전임 군수들과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급기야 ‘의령 오적(五賊)’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나고 있다. ‘오적’은 전직 군수 4명과 현직 오 군수를 한데 묶어 비난하는 말이다.
군수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의령
인구 2만6000명의 소도시 의령이 바람 잘 날 없는 것은 군수들 때문이다. 각종 비리와 법 위반 혐의로 연이어 구속되거나 기소됐고,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를 살릴 군정 실행과 해법 모색은 그때마다 난관에 봉착해 지역정서도 들끓었다.
이들 가운데 민선3기로 가장 먼저 의령군수를 지낸 한우상 전 군수는 사기 혐의로 공소가 제기됐다. 지난 2018년 민선7기 의령군수 선거 당시 무소속 후보로 나서면서 지인에게 선거자금 3억 원 정도를 빌린 뒤 갚아주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29일 공소가 제기됐고, 오는 17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
민선4기와 민선5기 의령군수를 지낸 김채용 전 군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지난 6월 22일 기소됐다. 의령군 농특산물 쇼핑몰 토요애유통(주)의 경영부실에 따른 손실액을 직위를 이용해 임의로 감면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령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토요애유통은 지난 2009년 3월 30일 오픈한 의령군의 농산물 공동브랜드이자 쇼핑몰이다. 김채용 전 군수는 이 토요애유통을 대표적인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해왔다. 민선4기 이후 민선5기 권태우 군수가 선거운동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병상 당선됐지만 끝내 사망하자 보궐선거가 열렸고, 김채용 전 군수가 다시 선거에 나서 당선된 이후 논란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토요애유통이 2010년 양파 매취사업을 진행하면서 재고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대규모로 썩어 피해가 발생했다는 감사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토요애유통 대표에게 피해액을 배상하도록 개인 소유 아파트를 가압류 조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김채용 전 군수는 4억9043만 원에 달하는 손실액이 발생한 것과 가압류 조치 사실 등이 언론에 알려지면 자신과 토요애유통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감면조치를 하라고 공무원들에게 지시를 해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한 첫 공판은 오는 9월 3일 열릴 예정이다.
토요애유통과 관련된 논란은 민선6기와 민선7기에까지 이어졌다. 오영호‧이선두 전 의령군수들이 공모해 지난 2018년 토요애유통 경영자금을 빼돌려 불법 선거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특히 오영호 전 군수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혐의들로 기소돼 지난 2월 17일 징역 2년4개월이 추가로 선고됐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 직후인 지난 2014년 7월 조직폭력배를 시켜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쓴 한 일간지 기자를 협박하게 한 혐의(협박교사)와 2015년 3월 이 조폭에게 토요애유통의 수박 운송권을 준 직권남용 혐의, 재산을 숨길 목적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타인의 계좌를 이용해 24차례 금융거래를 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자신 소유의 산지를 무허가로 형질 변경을 해 산지관리법을 위반한 혐의 등이다.
이선두 군수는 지난해 3월 17일 구속돼 같은 달 27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군수직을 상실했고,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올해 초 만기 출소했다.
“의령 구원투수” 자처 오태완도 ‘패전투수’ 위기
현존 역대 민선 군수들이 하나같이 법의 심판대에 서거나 심판을 받게 되자 행정 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제대로 된 군수’를 뽑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오태완 군수도 이를 의식한 듯 전직 두 군수가 불명예스럽게 군수직을 사퇴해 생긴 공백을 메꿀 ‘의령을 살릴 구원투수’라고 자처했고, 취임사에서 ‘의령 미래 50년 중장기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한 지 100여일 만에 오 군수마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군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오 군수는 지난 4·7 의령군수 재선거 과정에서 허위경력을 선거공보물 등에 기재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민주당 경남도당이 고소를 했고, 4개월여 만인 지난 7월 30일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이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을 배당받은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합의부는 오는 9월초 1차 심리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 군수가 구원투수가 아닌 ‘패전투수’가 될 가능성은 다른 곳에서도 불거졌다. 지난 6월 17일 군청 출입 기자들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여성 기자를 상대로 한 성적 발언과 신체접촉 등 강제추행 논란이 불거졌다.
오 군수는 “사실무근”이라거나 “허위주장”이라고 반박했지만 해당 기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이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수사를 계속 진행 중이며, 혐의 여부에 대한 결론과 함께 검찰 송치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폭투’의 흔적은 또 있다.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다. 강제추행 논란이 불거진 식사자리는 오 군수와 기자 등 8명으로 시작했지만, 공무원 2명이 추가로 합석해 사적 모임 허용 인원 8명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인구 3만 명 이하 전국 14개 자치단체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장 적어 ‘코로나 청정지역’으로까지 불렸던 의령의 수장이 스스로 ‘청정지역’ 이미지를 훼손하고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된다.
이에 대해 지역 민심은 “검증 안 된 후보를 군수로 뽑은 군민들의 잘못이 크다”며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렇게 겪어놓고도 또다시 제 눈을 제 스스로 찌른 격”이라고 자책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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