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의 4분의 1이 돌아온다. 한미 양국이 내년 초까지 사우스포스트 내 부지 50만㎡를 반환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9일 외교부가 밝혔다. 2004년 반환이 결정된 이후 유의미한 대규모 반환은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지난해 반환된 곳은 장교숙소 5단지 뿐으로 전체 면적의 2.6%에 불과했다.
용산기지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미군이 사용했다. 1948년 철수했다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돌아와 지금에 이른다. 그 사이 한미연합사가 이곳에 자리잡았다. 1991년 미군골프장 부지가 반환되면서 이 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글박물관, 용산가족공원이 들어섰고, 육군본부 터에 1994년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
미군 이전에는 일본군이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 중이던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강요하며 군대를 주둔시켰고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본격 진주했다. 조선총독의 관저도 여기 있었다. 사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3세기 고려 말 몽골군이,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기 있었다. 19세기 청일전쟁 때도 일본군은 이곳을 병참기지로 삼았다.
기지 반환이 완료되면 용산공원이 조성된다. 여의도 면적의 거대한 국가공원이 서울 한가운데 생긴다는 사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계획대로라면 약 300만㎡ 규모로 뉴욕의 센트럴파크(341만㎡)보다 조금 작은 규모다. 그러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2004년 한미 정상의 합의 이후 국회 비준까지 이뤄진 반환 협정의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2017년 시작해 2027년 국가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이미 많이 늦었다. 미군은 이번 반환 합의 때도 미군 잔류 시설의 공사부터 마무리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문학적 액수의 부대 내 오염 정화 비용을 누가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이미 합의된 잔류 시설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반환도 더딘 상황에서 지난 3일에는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용산공원 부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해 또 다른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1945년 9월 미군은 용산에 들어오면서 이곳을 '캠프 서빙고'라고 이름 지었다. 느리고 길이 험해 보이지만 '캠프 서빙고'는 이제라도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반환된 부지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