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검토했던 일본 방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1년 7개월 만의 정상회담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일 정상 간 공식 만남은 결국 무산됐다.
정상회담 물밑 조율이 쉽지 않던 상황에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부적절한 언행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한국 정부로선 악화된 국민 감정, 코로나19 위험 등을 무릅쓰고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9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 계기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협의를 나누었다"며 "양측 간 협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다"고 했다.
박 수석은 그러나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며, 그 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와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도쿄올림픽은 세계인의 평화 축제인 만큼, 일본이 올림픽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희망한다"면서 "우리 선수단도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이지만 그간 쌓아온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선전하고 건강하게 귀국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단 대표 자격으로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양 정상 간 회담 무산은 벌써 두 번째다.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약식 회담을 계획했으나, 일본 측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로 무산돼 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몇 차례 짧은 인사를 하는 데 그쳤다.
이후 양국은 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한 외교 당국 간 물밑 교섭을 이어왔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5분 간 약식으로 진행하자는 일본 측과 한 시간 동안 주요 의제에 대해 정식으로 논의하자는 한국 정부 간 이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최근 발간된 2021년판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 땅으로 명시했고, 소마 공사는 한국 외교에 대해 '자위 행위'라고 폄훼하면서 결정적으로 교섭 판을 깼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면서 "국민 정서를 감안해야 했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해 소마 공사의 막말이 판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줬음을 시사했다.
이날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소마 공사의 막말 파동과 관련해 "어떠한 상황, 맥락 하에서 한 것이라도 외교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소마 공사에 대해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엄중 주의를 주는 것으로 일단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소마 공사에 대한 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지만, 중대한 외교 결례였던 만큼 일본 정부의 주의 조치는 한국 정부엔 미흡한 대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한다"면서도 "일본 정부는 적절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며, 향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결국 정상회담 준비가 결국 파국으로 끝나면서, 한일 관계는 더욱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됐다. 스가 총리 취임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복원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더욱 수렁에 빠진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이번 정부 임기 말까지 계속 일본과 대화 노력을 해 나가고자 한다. 한일 정상 간 만나게 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나, 문 대통령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은 요원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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