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본부가 이 모 중사의 사망 사건을 국방부에 보고하면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군의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국회 국정조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30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중사가 숨진 지난 5월22~23일 공군 군사경찰단이 작성한 사건보고서 4건을 공개했다. 세 번째 보고서까지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와 2차 가해 정황, 유족의 수사 및 처벌 요구가 상세히 담겼으나 국방부에 전달한 네 번째 보고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통째로 누락됐다. 센터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모두 빠지고 유족의 반응이 완전히 조작됐다"면서 "단순한 허위보고를 넘어 사건 무마·은폐에 이르렀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센터가 공개한 보고서는 각각 △5월22일 새벽 숨진 이 중사를 발견한 직후 작성된 초기보고서 △오전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가 작성한 발생보고서 △5월23일 작성된 세부보고서(세 번째 보고서) △같은 날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한 세부보고서(네 번째 보고서)다.
두 번째 보고서와 세 번째 보고서에는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과 수사 상황, 유가족 반응, 부검·장례관계 등이 적혀 있다. 세 번째 보고서에는 특히 "유가족은 '딸이 스스로 사망한 것을 인정하지만 해당 대대 일부가 딸에게 강제추행 사건 가해자 선처를 요구해 힘들어했다'며 조사 및 처벌을 요구했다"는 내용과 함께 "전 소속대(제20전투비행단) 부서원 대상, 강제추행 사건 가해자 비호 여부 조사 예정"이라는 후속 조치 계획도 있었다. 이 보고서들은 각각 공군 군사경찰단장,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장이 작성해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같은 날 군사경찰단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전달한 네 번째 보고서에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삭제됐다. 후속 조치 계획도 빠졌다. 유가족 반응에서도 강제추행과 관련된 내용이 빠지고 "유가족이 애통해하는 것 외 특이반응 없음"이라고 했다. 조작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유족이 사망 동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둔갑했다"면서 "국방부 검찰단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4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을 압수수색해 이 문건들을 모두 확보해놓고도 지난 25일이 되기까지 핵심 인물인 공군 군사경찰단장조차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는 이 모든 문건과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수사를 뭉개고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 두 수사 책임자를 보직 해임해 수사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합동수사를 통해 6월 초, 이미 공군 군사경찰단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중요한 사실을 누락한 채 보고한 사실과 이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국방부 설명에도 축소·은폐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공군의 부실수사를 수사 중인 국방부 합동수사단도 지지부진한 수사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건 초기 이 중사를 직접 회유·압박한 노 모 준위와 노 모 상사는 이날 오후 구속기소됐다. 노 준위에게는 과거 회식자리에서 이 중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로써 성추행 가해자 장 중사를 포함해 재판에 넘겨진 군 관계자는, 또 다른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윤 모 준위까지 총 4명이다.
이 중사의 유족은 전날(29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국정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군인권센터도 관련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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