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에 밥을 주고 목마른 개의 물그릇에 물을 채워주는 일... 높은 문턱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부실한 난간과 미끄러운 바닥을 살피는 일... 보이지 않는 글씨를 읽어주고,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골라주고, 끼니를 어떻게 챙길지 같이 고민하는 일... 사정을 듣고 그 마음에 공감하는 일...
어느 의료진의 얘기다. 춘천 소양호 일대의 30개 마을에서 노인들을 진료하는 양창모 선생의 방문진료팀은 주로 거동이 어려운 고령의 주민들을 찾아간다. 벌써 2년째. 약 타러 병원 갔다 오는 데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산간벽지의 노인들에게 방문진료는 고맙고 절실하다. 당연히 '3분 진료'는 있을 수 없다. 충분히 대화하고, 청진기를 대고 몸의 소리를 듣는다. 진료 중에도 어디가 또 불편한지를 끊임없이 살핀다. 진료 외에도 그들의 생활 전반에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역시 인기는 높았다. 한 마을에서는 진료팀이 왔다는 소식이 퍼져 예정에 없던 방문 요청이 잇따랐다.
현재 이 진료팀은 소양강댐 수몰지역 일대의 주민들을 위해서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같은 방문진료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면 어떨까? 공공의료 영역에서 말이다. 우선 '죽기 전 요양원 2년' 공식을 끊을 수 있다. 내 집에서 내가 가꾼 정원을 보며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령층의 삶의 질과 존엄의 문제다. 지방의 공동화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은퇴자들이 귀촌을 망설이는 이유는 병원이 멀기 때문이다. 요양보호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의료 공백이 해소되면 귀농·귀촌이 꼭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어디서든 가까운 보건소가 방문진료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사는 한국사회에서, 지방의 빈집이 급격히 늘어나는 지금,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공공의 차원에서 방문진료 사업은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비용이 문제일까? 양 선생의 진료팀은 한국수자원공사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3명의 급여와 차량, 의료기기, 비품 등 모든 경비를 포함해 한 해 예산이 채 2억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의료진의 유입을 기대하기에는 매우 적은 액수다. 그러나 예산이 더 커진다고 해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은 전혀 아니다. 양 선생은 춘천의 경우 한 팀만 더 있어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의사 양창모, 간호사 최희선, 케어매니저 정윤후. 단 세 사람과 차 한 대의 움직임은 단촐했다. 그러나 분명 크고 중요한 실험이었다. 이들의 하루를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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