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이달 들어 회고록을 출간했다. 보수적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였던 그가 하천·환경 문제에서 출발해 사회 참여, 나아가 정치 참여의 길을 걸으며 직접 맞닥뜨린 생생한 현장 증언이 담겼다.
이 전 의원은 지난 3일 출간된 회고록 <시대를 걷다>에서, 한국전쟁 피난둥이로 출생해 2020년 국회의원 임기를 마칠 때까지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정리했다.
법학자로 중앙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언론사 비상임 논설위원 활동 등을 통해 주로 환경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그가 현실 정치와 직접 부딪히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서울시 물값 문제'였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야심작이었던 청계천 복원 문제를 놓고 서울시와 수자원공사가 대립한 사건이었는데, 당시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이었던 이 전 의원을 포함해 시민사회는 수자원공사가 옳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이후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을 내세운 이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돼 실제로 강바닥을 파헤치면서, 보수진영 학자였던 이 전 의원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대정부 투쟁의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운하반대교수모임 등이 제기한 4대강 반대 소송 대표를 맡으면서다.
4대강 반대 운동은 그의 정치 참여로 이어졌다. "대운하를 비판하는 등 내가 워낙 이명박을 싫어하니까 친박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자기 편으로 생각했다"고 그는 회고록에 썼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4월이었는데, 그를 보고 박 전 대통령이 처음 건넨 말은 "4대강 때문에 수고가 많으시지요"였다고 한다.
2011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던 때부터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치발전위원으로 대선정국 한복판에 있던 때까지는 그가 정치권력 핵심부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던 때였다.
김종인, 조윤선, 최경환, 안종범 등 당시 박근혜 캠프에 참여해던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물론 2012년 문화방송(MBC) 파업 사태 중재를 위해 여당 대선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에게 MBC 노조와의 밀약을 주선하는 등 정치의 이면에서 직접 활약한 내용도 담겼다.
5.16 정변, 10월 유신, 인혁당 사건, 정수장학회 문제 등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맞닥뜨린 과거사 관련 문제에 대해 그가 후보에게 답변 요지를 작성해 건넨 사실도 밝혔다.
"5.16은 국가 발전과 더불어 역사의 평가에 맡길 것이고, 10월 유신은 헌정을 중단시킨 잘못된 처사이고, 인혁당 판결은 잘못된 것으로 재심에서 판결난 만큼 피해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하며, 정수장학회는 독립 법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국민 정서를 고려해 가능한 일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는데, 박 후보는 이 '커닝 페이퍼'를 무시하고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등 "기가 막힌" 발언을 했다.
대선캠프의 일원으로서,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제기한 '박정희 독도 폭파론'을 반박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해 독도를 다녀온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을 만난 일도 회고록에 담겼다.
이 만남과 관련한 대목에서는, 1963년 대선 직후 박정희 당선자가 최 대령에게 "당신 덕분에 내가 당선됐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5.16 정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던 박 전 대통령이 1962년 10월 울릉도를 시찰하자, 국가 최고지도자(민주적 선출이 아닌 군사독재 지도자라 해도)의 첫 울릉도 방문에 대해 울릉도 주민들이 감격에 가까운 열렬한 환영의 반응을 보였고, 이후 최고회의 총무수석이던 최 대령은 지방 낙도 민원 해결을 일부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듬해 대선에서 '박 의장'은 민정당 윤보선 후보에게 1%포인트차 신승을 거뒀는데, 개표 초반에는 지고 있다가 새벽 5시경 도서 지역 개표 결과가 나오면서 흐름이 반전됐다. "박 의장은 최영섭 총무수석에게 '섬 지방 민원을 챙겨 준 당식 덕분에 내가 당선됐다'고 덕담했다"고 그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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