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노동이 안전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흔히 산업재해를 떠올린다. 맞다. 당연히 산재가 첫째 위험이고 그런 노동의 극단적 결과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산재를 두고 안전과 건강을 논할 수 없다.
이 시기, 담론으로서 '산재'는 본래 의미를 넘어 이미 정치 또는 정치경제의 영역으로 들어간 듯하지만, 내용으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현실을 지시한다. 첫째는 노동의 안전과 건강 침해라는 중차대한 문제, 둘째는 이를 해결하려는 정책이자 제도.
지금은 누구나 나중 것에 관심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안전과 건강 침해의 비참한 현실에 비교적 익숙한 데다, 산재 관련 제도와 정책이 전기를 맞고 있어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부분 제도와 정책이 '진보'의 잠재력을 내포하는 것도 중요하다(물론 '나쁜' 정책도 많다).
내년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도 명백한 한계가 있지만, 남은 기간이라도 진보의 가능성을 더 키워야 한다. 어이없는 사고,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스캔들이 된 후도 '하루가 멀다고 되풀이'되는 산재 사고를 그냥 둬야 하는가.(☞ 관련 기사 : <YTN 뉴스> 6월 12일 자 '대형산재에 재계 '바늘방석'...'경영자 포괄 처벌'에 촉각')
여기서 한 가지 더,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법은 가능성이 있는 한 가지 수단일 뿐, 우리의 지향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고 실천하며 실현한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법과 제도는 더 넓고 깊은 변화를 촉발하고 끄는 견인차가 되어야 마땅하다.
새로운 또는 가중되는 노동의 위험 때문에도 산재는 지금 제도에 머무를 수 없다. 제도를 강화하되 제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현실은 중대 재해를 줄이고 예방하되 '중대'의 틀을 초월해야 하는 과제도 제기한다.
눈에 보이고(가시성),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며(단기), 신체적 손상이어야만 재해가 아니다. 비가시적 손상, 느린 폭력, 심리와 정서의 직업병도 불건강이고 질병이며 재해이다. 법이 규정한 것 이상으로, 재판이 판결한 것 너머까지, 확립된 지식의 경계까지 넘나들며, 안전이며 건강이 실재한다.
나날이 늘어나고 또 드러나는 것들, 다음 사례는 '중대'나 '재해'가 아니라 '갑질'이나 그저 '문화'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최근 드러난 공군의 '성추행' 사건도 어떤 개인의 일탈(!) 행동이나 일부 집단의 문화로만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노동의 조건, 특히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노동환경이 근본 원인이라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비로소 보통의(?) 산재를 둘러싼 것과 꼭 같은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 보인다. 교육이니 상담이니 해도 좀처럼 줄지 않고, 내부와 권력은 별것 아니라고 숨기며, '네 탓'이라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까지. 지속하며 일관되니 구조며 법칙이랄 수밖에 없다.
해결을 위한 접근도 다를 것이 없으니, 구조에 닿지 못하는 '병영문화 개선'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다시 상담과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겠지만 언제는 하지 않던 대책인가. 답은 뻔하다. '근본적', '장기적' 또는 '점진적'이라 냉소해도 다른 수가 없는 것, 젠더를 핵심으로 나이와 위계 등이 교차하는 완강한 권력 구조를 바꾸어야 조금은 더 안전한 직장이 될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일이 벌어지는 노동의 양식, 장시간 노동이나 플랫폼 노동의 위험 문제도 중대 재해의 틀과 딱 맞지 않는다. 투잡, 쓰리잡을 하는 사람에게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용주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배달 노동자의 안전은 누가 어떻게 보장해야 하나.
노동조건과 무관하게, 혹은 일하는 방식이 오래되거나 새롭거나, 노동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데는 한 가지 공통 원리가 있다.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정책과 제도, 기술과 수단이 중요하지만, 노동하는 사람들의 힘이 '착취의 힘'에 대항해야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권리를 요구할 권리도 함께. 모든 노동하는 사람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조건을 함께 말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을 넘어, 99%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건강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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