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연구원이 집계하는 '국가교통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2018년 한 해 약 25억 9000만 명이 도시철도(경전철 포함)를 이용했다. 이용객이 하루 평균 700만 명을 상회할 정도니, 지하철을 빼고 도시인의 일상생활을 논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지하철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2019년 당기 순손실액은 5324억 원에 달한다. 승객 1명당 501원씩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이 손실 규모는 대구 지하철이 가장 심각해서, 2019년 현재 탑승객 1명당 4,088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적자의 근본 원인은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된 지하철 사업의 건설부채에 있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앞다퉈 지하철 건설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방증한다. 여기에 잊힐만하면 '성과급 잔치' 등으로 뉴스에 보도되는 운영기관의 방만한 경영도 한몫한다.
적자가 무임승차 탓?
그런데 일각에서 이 적자의 원인이 65세 이상 노인 등에게 제공되는 무임수송 서비스 때문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서울 지하철을 이용한 무임승차자수는 약 2억 7000만 명이고, 이를 운임수입으로 환산하면 약 3700억 원인데, 이 가상의 수입액이면 서울교통공사 당기순실액의 70%가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는 측은 여기에 한술 더 떠 무임수송비용은 결국 교통복지비용이니, 이 부담을 정부가 떠안으라고 주장한다. 즉 세금을 투입해 손실을 메우라는 것이다.
이 사안만큼은 정치권과 노조가 한목소리다. 2017년에는 지하철을 운영하는 6개 지자체장들이 국비 지원을 요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발표하더니, 2018년에는 도시철도 운영기관장들이 비슷한 내용의 공동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국회에서도 2020년 여야 가릴 것 없이 무임수송 서비스에 대한 재정지원을 골자로 한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무임승차 제도가 무엇이길래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70세 이상 노인들은 지하철 요금의 50%를 할인받았다. 1984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무임승차 서비스는 더욱 확대되어, 65세 이상 노인들은 모든 시간대에 지하철 요금 전액을 이용회수에 관계없이 감면받고 있다.
이후 1985년 '국가유공자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에 따라 국가유공자에게, 1991년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에게, 1995년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라 독립유공자에게, 2002년 '518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에게 무임승차 혜택이 순차적으로 주어졌다.
무임승차 혜택이 여러 계층에게 제공되고 있지만, 노년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20년 국회입법조사처가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의 요청으로 작성한 자료를 보면, 무임승차자 중 노인의 비율이 약 82%이다.
주 수혜층이 노인이다 보니, 무임승차를 노인복지 측면에서 평가하는 논의도 활발하다. 일례로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은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무임승차제도의 노인복지 효과를 편익비용비(B/C) 1.63-1.84 수준으로 추산한 바 있다.
B/C가 1보다 크면 드는 비용 대비 사회경제적 효과가 큰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교통연구원이 주목한 무임수송 편익은 고령자의 여가·경제활동 증가에 따른 건강증진(우울증 감소 등), 지역경제 활성화(관광수요 증가 등), 복지예산 절감 등 다양한 측면을 망라하고 있다.
재정투입이 해법일 수 없어
무임수송의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고령인구 때문이다. 통계청이 2017년 시행된 인구주택총조사를 기초로 추계한 장래인구 전망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13.8%에서 2047년 38.4%로 약 3배가량 늘어난다.
이를 단순하게 해석하면, 2047년 지하철 탑승자 10명 중 약 4명이 무임승차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수입구조를 견뎌낼 운영기관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각의 주장처럼 세금투입이 해법일 수 없다. 정부 보조는 손쉬운 처방일지 모르나, 재정여건이나 무임승차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 건설하고 보자'라는 일부 정치인의 대중영합주의를 세금으로 수습하는, 즉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된다. 대중영합주의에 대한 왜곡된 학습효과는 더 심각한 대중영합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세금은 모든 국민에게서 걷히는데, 일상생활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도시인이기 때문이다. 처지를 바꿔서 농촌지역 고령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도입되고 있는 '1000원 택시' 서비스의 손실액을 도시 사람들도 나눠 부담하라고 한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공정책사업 손실금에 대한 정부의 지원원칙에 어긋난다. 정부는 예컨대 폐기물 처리시설 등 공공정책사업의 건설비를 지원하나, 운영비는 원칙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이른바 무임승차 손실액은 운영비에 해당한다. 이를 예외로 인정하면 또 다른 예외를 부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이 된다.
무임승차 제도가 지속가능하려면
무임승차 제도가 선의로 시작되었다는 데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제도가 보편적 이동권과 연결되므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국가 목표와도 부합한다. 하지만 현재의 틀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개선의 시작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직시하고, '정부가 책임지라'나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등의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교통복지 수준을 공론화하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공론화 과정에서 우리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를 겪은 주요국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2021년 서울연구원의 신성일박사가 '도시철도 무임손실 개선방안 연구'에서 정리한 자료(그림 2)를 보면, 주요국도 고령자에게 지하철 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우리처럼 모든 시간대에 이용회수와 무관하게 전액 감면하지는 않는다. 각 사회의 여건에 맞게 할인 시간대와 할인 폭을 정하고 있다. 대체로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대에 지하철 요금의 50% 정도를 할인해 주고 있다.
우리도 공론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할인 시간대와 할인 폭, 재원 부담 주체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농촌지역 고령자를 위한 교통복지 서비스와 소요 재원이 함께 논의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혜택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며 갈등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폭탄만 돌리다가 결국 모든 책임을 미래세대에 전가하고 마는 무책임보다는 생산적일 것이다.
■ 필자소개
장수은 교수는 영국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교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통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저명학술지인 Transportation Letters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국토교통부의 철도산업위원회 등 중앙부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교통계획/정책, 지속가능한 교통, 철도교통, 교통 빅데이터와 AI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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