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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충청도 말과 문화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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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충청도 말과 문화문법

필자는 자주 학생들에게 “한국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을 외국에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필자는 한국어를 참 잘한다. 다른 한국인들보다는 조금 잘한다. 순수한 우리말도 조금 더 알고(예를 들면 ‘온’, ‘즈믄’, ‘골’ 등), 한자도 일반인들보다는 쬐끔(?) 더 안다. 학부에서 한문교육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더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한국어교육학을 공부했다. 우리말 중에는 한자에 바탕을 둔 단어가 많기 때문이다.

14년 간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박사학위를 받고 충청도로 이사 왔다. 고향이 여주인지라 충청도 방언에도 익숙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당황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를 들면 “내일 10시에 만나요”라고 했을 때 두 가지 답변이 있다.

하나는 “알았슈!”와 또 하나는 “그류”다. 서울 사람들은 상대가 “알았슈!”라고 하면 내일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알고 있다”는 뜻이지 “내일 오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알았다고 했지, 언제 나간다고 했느냐?”는 반문을 받을 수 있다. 반드시 “그류”라고 해야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

요즘은 웬만한 것은 번역기가 있어서 통·번역을 잘해준다. 필자도 구*번역기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도 신조어나 방언 등은 통역할 수는 없다. 사람처럼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아니 기계는 도저히 사람의 통·번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것은 사람만이 지닌 특성이다.(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통역은 사람이 해야 한다.)

사람의 다양한 언어문화를 기계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문법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유럽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단어다. 필자는 2016년에 <한국어문화문법>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여기서 주로 다룬 내용이 한국문화와 외국문화의 차이에서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나 어려움을 서술하였다.

예를 들면 “고무신 바꿔 신는다”는 말을 영어나 자국어로 번역해 보라고 한다. 한국의 군사문화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100% “체인지 슈즈(Change shoes)”라고 한다.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여자 친구가 변심한 것이라고 설명하려면 한참 걸린다. 한국 남자는 반드시 입대해야 하고, 그 동안 여자 친구는 기다려 줘야 한다는 등등의 설명을 보태야 한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라고 쓴 글이 있다. 외국인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라는 광고를 보면 짜증을 낸다.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냐고 흥분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과 의식구조가 다르다. 직설적인 독일인과 은유적인 표현을 즐기는 한국인과는 차이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어의 무궁한 표현법을 외국인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의 아체에 갔을 때 일이다. 창피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고백해 본다. 부지사 초청 만찬에 갔는데, 하루 종일 피곤하던 터라 식탁에 있는 사발의 물을 보자마자 단숨에 들이켰다. 안내하던 부지사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필자를 바라보았다. 그 어색함은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인도네시아는 손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반드시 식탁에 손 씻을 물을 올려놓는다. 마실 물은 병에 담겨 있었다.

각 나라의 문화에 맞는 어법이 있다. 이에 맞춰 해석을 달리 하는 것을 문화문법이라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도 때로는 “알았슈!”와 “그류”를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가 생긴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단순히 문자나 어휘를 가르친다고 해서 교육이 끝난 것은 아니다. 조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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