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시작된 것은 2015년부터다. 신시장은 상인들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좁고 사방이 막혀 있어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차량을 이용할 수도 없어 수산물의 이동이 어렵고 경매도 몹시 불편한 구조였다. 임대료는 몇 배 비쌌다. 상인들은 입주를 거부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얘기다. 현대화 사업으로 세워진 신시장이 상인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지어져 입주 거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구시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상인과 구시장을 헐어버리려는 수협의 싸움은 이후 4년간 격렬하게 이어졌다. 명도 집행이 10차까지 이어졌고 매번 충돌이 컸다. 공실 관리라는 명분으로 폭력적인 퇴거 작전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상인들은 똘똘 뭉쳐 싸웠지만 싸움은 쉽지 않았다. 입주를 거부하면 그 자리를 일반분양하겠다는 압박과 단전, 단수 등의 극단적 조치로 많은 상인들이 신시장으로 옮겨갔다. 이 중에는 결국 장사를 접고 신시장을 떠난 상인도 적지 않았다. 신시장은 높은 임대료에 맞춰 판매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줄고 매출이 떨어지는 구조의 악순환이었다. 구시장에 끝까지 버티던 상인들은 2019년 8월 열 번째 명도 집행에서 모두 끌려나왔다. 그리고 구시장은 지난해 헐렸다.
2019년 8월 육교 위에서 농성이 시작됐다. 구시장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다. 애초 700명에 가깝던 상인은 현재 80여 명 남아 있다. 장사를 하지 못해 보험과 적금을 헐어가며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새로운 공간 마련을 서울시와 협의 중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배·가압류는 여전히 이들을 괴롭힌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51억. 가압류도 개인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대에 이른다. 1, 2심에서 승소했지만, 수협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초기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사업을 추진했다가 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한 바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용산까지의 케이블카 계획이나 복합 쇼핑몰 건립 계획 등도 꾸준히 나돌고 있다. '돈 되는 건물' 지으려고 수산시장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상인들의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신시장은 한 개층을 쓰던 구시장의 구조를 2개층으로 나눠 점유 면적을 좁혔다.
노량진을 찾았다. '잘못된 설계' 하나가 어떤 파탄을 초래하는지를 생각하다가, '배제'와 '획일'이 끝내는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막연한 '개발 논리'를 가진 집단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개발 논리'의 든든한 뒷배가 우리 사회가 아닌지 생각했다. 육교 위 푸른 천막이 있는 풍경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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