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14년 동안 국회의 외면을 받는 사이, 시민사회에서는 필요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이 7일 만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데 이어 과거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전직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31일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를 들어 "지나치게 과대대표된 일부의 목소리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과거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전 국회의원들도 참여했다. 17대 국회에서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최순영 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는 "17대부터 21대에 오기까지 국회가 아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참담하다"면서 "차별금지법은 촛불로 정권을 바꾸고 여당에 과반 의석을 준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권영길 사단법인 평화철도 상임대표(18대 대표발의)는 지난 3월 숨진 채 발견된 고 변희수 전 육군하사를 추모하며 "차별금지법이 있었더라면 변희수 하사가 죽음을 택했겠나. 국회는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권 상임대표는 "한국은 성차별, 장애인차별, 세대차별, 학력차별, 비정규직차별, 지역차별 등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차별공화국"이라면서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말하듯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19대 대표 발의)는 "제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당시 두 건의 차별금지법안이 더 있었다. 하지만 두 법안은 일부 종교계의 반발에 중간에 취소됐고 제가 발의한 법안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정치권이 방관한 결과 차별과 혐오가 전 사회에 번졌다. 강남역에서 여성을 노린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강서구에서는 정치인이 앞장서서 장애인학교 설립을 막아섰다.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고 차별과 배제가 확대된, 위험천만한 시대"라고 짚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도 "평등법(차별금지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구체화한 법이다. 혐오와 차별이 빠르게 확산하는 오늘날 '최저 기준'을 정하는 법"이라며 "헌법을 실현하고 민주주의 발전의 책무를 진 국회는 마땅히 평등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지난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 공동 발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장혜영 의원안과 별도로 평등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도 "(평등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며칠 전부터 문자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반대 의견도 존중한다. 다만 (평등법이 필요한 사람도) 존중해 달라"면서 "치열하고 충실한 공론의 과정을 거쳐 근거 없는 우려는 해소하고 우려가 남는 부분은 입법을 통해 보완하자"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4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이 게시된 지 7일 만에 5만6185명의 동의(오후 2시30분 기준)를 얻었다. 국민동의청원은 청원 게시 후 30일 이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으로 회부된다.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로 알려진 청원인 A 씨는 청원글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민이 국회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적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