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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함백, 탄광으로 읽는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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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함백, 탄광으로 읽는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 ‘함백, 탄광으로 읽다’ 발간

강원도 정선 탄광마을 ‘함백’의 역사와 일상의 삶이 온전하게 담긴 ‘함백, 탄광으로 읽다’(신국판 변형, 194쪽)를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발간했다.

함백은 강원도 석탄산업사의 뿌리를 지탱하는 곳, 해방 후 UNKRA(국제연합 한국재건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개발해 우리나라 석탄산업 발전을 주도한 곳, 고속굴진 기술을 바탕으로 1963년 항도굴진 세계기록을 달성한 곳. 한때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이름을 떨친 곳이다.

▲함백, 탄광으로 읽다 표지. ⓒ진용선 소장

6․25전쟁 직후 정선군 함백은 희망의 땅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연소속 일본인 시라키 다쿠치(素木卓二)가 탄층을 발견할 무렵 함백은 전형적인 두메산간 농촌마을이었다. 그때는 ‘함백(咸白)’이 아니라 ‘조동(鳥洞)’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밭농사를 짓거나 화전을 일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제는 1925년부터 탄층을 조사하고도 지형이 너무 험해 수탈 순위에서 밀렸던 함백 탄층의 광구를 고한에서 함백까지의 수십 개로 나눠 지정하고 탄광 개발을 서둘렀다.

해방이후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남한으로 송전되던 전기를 차단하자 서울 시내 조명이 꺼지고 전차도 멈춰 섰다. 전국이 전력난에 시달렸다. 당시 정부는 1948년 11월 영월화력발전소에 발전용 탄을 공급하기 위해 함백 광구 개발을 급히 서둘렀다.

1949년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지질조사소 연구진이 함백을 답사해 탄맥과 매장량을 조사했고, 1950년 11월 대한석탄공사를 창립한 정부는 함백탄광 개발에 투자를 집중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1955년 8월부터 2년 동안 육군 연대 규모의 군파견단이 함백탄광에 파견되어 탄전을 연결하는 도로를 개설하는 등 석탄증산의 기틀을 다졌다.

6·25전쟁 직후 영월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할 목적으로 광업소 이름에만 쓰이던 ‘함백’이라는 지명도 이 무렵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7년 3월 9일 영월부터 함백까지 22.6㎞의 산업철도인 함백선도 개통되었다. 두메산간 마을인 함백은 희망의 땅이 되었다.

함백에 가면 배고픔이 없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함백에 몰려들었다. 함백광업소는 정부의 석탄증산계획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과 ICA(미국국제협조처) 지원으로 고속성장 했다.

1963년에는 남아프리카가 보유한 갱도 고속굴진 세계기록을 경신해 세계에 함백광업소의 이름을 알렸으며 1970~1979년 연평균 증가율은 5.4%에 달했고, 1976년에는 77만 톤이라는 역대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함백은 광산을 낳았고, 광업소는 함백을 먹여 살렸다. 그 배경에는 광부들의 땀방울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곳 탄광에서 일을 했고, 또 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넉넉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함백도 여느 탄광처럼 오래 가지 못했다. 1980년대를 지나며 국제 유가가 안정되고 가스가 보급되자 연탄 사용량도 크게 줄어들고, 차츰 석탄도 쓰임새를 잃고 말았다.

함백광업소는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조치에 따라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한채 1993년 10월에 폐광 했다. 1948년부터 45년 동안 캐낸 탄이 무려 1709만 t이나 될 만큼 석탄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함백탄광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저자인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은 “함백 탄광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라고 했다.

한편 이 함백 탄광 이야기는 탄광에서 일한 광부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10여 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해 엮은 책이다. 따라서 단순히 어두운 탄광의 역사가 아니라 탄광촌에서 살아온 모든 이들의 삶을 성찰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탄광이 잘 나가던 시대에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함백 사람들의 이야기로 1938년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가 함백 여미산광산(女美山鑛山)을 운영할 조선아연(朝鮮亞鉛)을 설립한 후 광물수탈, 해방 후 1948년 함백탄광 개발을 담고 있다.

이어 1957년 함백선 개통과 함백광업소의 성장, 인구 증가에 따른 탄광촌 사택과 일상 공간, 우물방송과 계모임, 햇빛만 보면 녹는 탄광촌의 돈, 석탄의 성쇠와 함께한 교육, 그리고 사라진 흔적, 탄광의 유별난 금기어와 자미갱 폭발 사고, 석탄산업합리화와 폐광, 남아있는 사람들, 함백역, 지워지지 않은 함백과 함백탄광의 흔적 등 모두 9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 책은 함백 탄광의 역사와 함백 사람들의 삶이 빠짐없이 기록된 작은 백과사전이다. 일제의 자원 수탈 과정에서 처음 확인된 함백탄전이 석탄산업의 중요한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광산 취업을 위해 사람들이 함백으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과정이 기록되었다.

또한 1950년대부터 탄광촌이 본격 개발되면서 주거 공간의 팽창, 탄광촌 사택 주부들이 우물이나 수돗가에 모여 생산하는 핫뉴스인 가담항설(街談巷說) 이야기를 비롯해 그릇계, 반지계 등의 계모임과 춤바람, 함백광업소 호황과 비례해 늘어나는 학생 수와 교육 현장, 생활 속으로 파고든 타부(taboo) 관련 금기어와 자미갱 폭발 사고, 폐광이후 암울한 미래를 불안해 한 가장의 뒷모습과 가족들의 눈물 등 함백 사람들의 진한 그리움과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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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봉

강원취재본부 홍춘봉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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