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제멋대로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곤 한다. 봄인가 싶더니 어제는 초파일이었는데 섭씨 영상 30도까지 올라가서 여름을 방불케 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린다. 비 오기 전에 나무를 심으면 잘 산다고 해서 묘목과 조금 자란 나무 등 합해서 120 주 정도 심었더니 허리가 아프다. 고마운 후배가 도와주어서 옆에서 거들기만 했는데도 허리가 아프다. 세월이 무심하기만 하다. 나무 심는 계절은 조금 지났지만 아직은 봄이라 그런지 결혼식도 많다. 매주 토요일이면 몇 건 씩 이어진다. 그래서 오늘은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결혼이라는 말은 “혼인을 맺다.”는 뜻이다. 한자로 남자집을 혼(婚)이라 하고 처나 처가를 인(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혼인을 맺는 것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으로 상당히 중대한 일이다. 보통은 여자 집에 가서 저녁 무렵에 혼례를 치르기 때문에 ‘계집 녀(女)에 저물 혼(昏)’자를 합하여 쓴다. 혼인(婚姻)을 저녁에 하는 것은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의무와 관련이 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날짜는 신부의 모친이 알고 있다. 그래서 신부의 생리 후 5일이 되는 날 저녁에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신방에 들고 다음날 새벽 인시(寅時)에 아들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장인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기 때문에 ‘장가(장인집) 간다’고 표현한다. 시집가는 것은 ‘시댁에 간다’는 말이다.
혼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함을 팔고 사야 한다. 그래서 함진아비가 동원되고 동네방네 소리지르며 “함 사세요!”외고 외친다. 하지만 본래 함을 질 수 있는 것은 ‘아들 낳은 사람’만 자격이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백부(伯父큰아버지)가 함을 지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함을 지고 가면서 오징어를 얼굴에 붙이고 숯을 칠하는 등 험상궂게 하고 가는 것은 사악한 귀신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요즘은 마부가 있고, 함진사람이 말을 흉내내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함진아비’라는 말은 ‘함지다’의 관형사형 ‘함진’과 명사 아비(부(父)가 결합된 어형이다.(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조 교수는 여기서 아비의 의미를 ‘남자’로 보았다. ‘기럭아비, 장물아비, 중신아비’ 등에서 보이는 ‘아비’는 ‘아버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요즘은 의미가 변하여 ‘아비’의 뜻이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 이이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장물아비나 돌진아비(하늘소), 윷진아비(윷놀이에서 자꾸 지면서도 다시 하자고 달려드는 사람)와 같이 비칭화하여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용되고 있다.(조항범, <위의 책>) 함을 팔고 사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하는데, 마부의 지나친 장난으로 행사를 망치는 일이 종종 있다 과하게 술을 마시거나 함값을 뜯어 내기 위해 발걸음마다 수표(?) 깔아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변질된 행사는 결혼의 신성함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원래는 함을 놓는 시루떡 밑에 노자가 들어 있게 마련이다.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이미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함값을 많이 뜯어내려고 하는 것은 금전만능주의가 낳은 인습이다. 아름다운 결혼의 행사가 인습으로 변질되고 있음은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한다.
요즘은 주례가 없이 신랑•신부가 함께 들어가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고 있다. 필자도 거의 100회 정도 주례를 보았는데, 요즘에 와서는 주례를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여 년 전부터 마흔 살이 넘은 처녀•총각 주례를 보기 시작하더니 신랑 신부의 나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나이가 너무 많으면 아이를 낳을 때도 고생할 텐데 어쩌자고 결혼식을 자꾸 미루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집도 마련하고 경제적으로 든든한 기초를 마련하고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것처럼 결혼을 해야 돈도 모으고 자립할 수 있게 되는데,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자녀 세 명은 낳아야 애국자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좋은 풍습을 인습으로 만들지 말고 바람직한 것만 계승하여 밝은 내일을 기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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