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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지랄과 뗑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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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지랄과 뗑깡

언어는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지랄하고 있네.”라고 하면 거의 예사말처럼 쓰는 것인데, 서울에 올라가면 욕이 된다. 필자는 경기도 여주 출생이라 충청도 사투리를 많이 쓴다. 충북 음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음성 사투리도 쓰고, 원주와도 가까워 가끔은 강원도 사투리도 나온다. 하지만 충청도에서 30 여 년을 살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충청도 사투리가 입에서 흐른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언어습관이다. 보통은 어려서 쓰던 말을 계속 쓰게 마련인데 어쩌자고 이곳저곳의 사투리가 섞여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충청도의 예사말(?) 같은 ‘지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단어가 처음 보인 것은 <계림유사>라는 책이다. 송나라 사람이 썼다고 하는데, 신라어를 중국어로 기록한 책이다. 한자로는 ‘질알(窒斡)’이라고 썼다. 현대어에서는 “1.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2.간질(癎疾)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과거에 간질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여기서 파생되어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이르게 되었다고 본다. 박경리의 <토지>에 보면

지랄 같은 세상. 나도 진작, 누구처럼 엿판이나 메고 용정을 떠나는 건데……

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는 지랄이 간질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로 바뀐 것이다. 지금도 많이 쓰고 있는 단어이지만 속된 표현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돈지랄도 유분수지, 그 많은 돈을 며칠만에 다 썼다고?”(<표준국어사전>의 예문)과 같이 쓰고 있어서 간질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는 간질로 쓰러져 발작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림유사>에 나올 정도였다면 상당히 역사기 오랜 단어임은 틀림없다.

‘지랄병’을 일본어로 전간(癲癎)이라고 한다. 미칠 전(癲)에 간질 간(癎) 자를 쓴다. 일본어 발음으로 뗑깡(てんかん)이라고 한다. ‘뗑깡’은 일본어 ‘tenkan·癲癎’에서 온 말로 1950년대 이후 신문 기사에서 검색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국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말은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장애를 유발하는 발작 증상이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병을 가리킨다. 우리말로는 보통 ‘간질(癎疾)’ ‘지랄병’이라 하고, 의학적으로는 ‘뇌전증(腦電症)’이라 한다.(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한자어로 그대로 풀어 본다면 지랄병이라고 하는 전문용어다. 요즘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생떼를 부릴 때 쓰고 있지만, 원래는 앞에서 설명한 지랄과 같은 말에서 출발했다. “진수는 막무가네로 뗑깡을 부린다.”(<고려대 한국어사전>에서 인용)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므로 의미를 생각하여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것이 좋다. 우리말로 한다면 ‘생떼’라고 하면 적당하다. 비슷한 말로, 억지, 투정, 행패 등으로 쓸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행패라는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땡깡' 부리고, 골목대장질 하고, 캐스팅보터나 하는 몰염치한 집단.”

이라는 표현이 정가에서도 나왔던 모양이다. 아마 발음상 ‘땡깡’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는 ‘뗑깡’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어를 바르게 발음하자는 의미일 뿐이다. 우리말 표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나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간질, 지랄, 뗑깡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말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말처럼 사용하고 있다. 언어의 사회성에 따라 의미가 분화되고 확장되어 그렇다고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말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이 문화민족이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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