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 Human Rights, 이하 UNGP)'이 1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지난 2011년, 유엔은 기업과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존 러기 하버드대 교수를 특별 대표로 임명하여 6년간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과의 광범위한 논의 및 조사 작업을 통해 본 지침을 마련했다. 본 지침은 '기업 인권 침해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 인권을 존중해야 할 기업의 책임; 사법적/비사법적 구제책 마련(보호, 존중, 구제)'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침 실행을 위한 워킹그룹을 임명하고, 동향 논의 및 이해관계자의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연례 포럼을 제네바에서 10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적 논의는 보다 심층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법제화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UNGP)이 국제사회의 기업 인권 담론의 핵심으로 대두되었으며, 다국적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위해 권고사항을 제시한 OECD는 인권 실사(Due Diligence)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업의 실질적 이행 방안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10대 원칙을 통해 기업과 인권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유엔글로벌콤팩트는 UNGPs와 OECD 가이드라인과 더불어 지속가능경영,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적 논의 및 의제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전 세계 정부 역시 기업과 인권 관련 제도 및 구속력 있는 법률을 제정해 나가고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등 국가에서는 기업의 인권 실사 법안을 추진 중이거나, 법제화하여 시행 중에 있으며, 현재 52개국에서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 NAP)을 수립 및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에)서는 그린 딜(Green Deal)을 신성장 전략으로 공표하며, 상반기 내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전반에서의 인권, 환경, 거버넌스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Directive on Corporate Due Diligence and Corporate Accountability)을 도입할 예정이고, 독일은 EU보다 더 강화된 기업실사의무화법을 추진 중이다. 유럽에서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들은 더 높은 수준의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심각한 안전보건 위기, 불평등, 인종 차별, 부패 리스크 증대, 기후변화 가속화 등 유례없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는 인간의 기본적인 복지와 존엄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주었고 기존 시스템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UNGP)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 기업과 더불어 사회와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적절하고 의미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UNGPs 틀 안에서 인권에 관한 회복 탄력성에 대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경제 위기의 충격을 겪으면서 사회에서 큰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을 위해, ILO에서 제시하는 글로벌 표준 수준의 정책을 통해 시의적절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 노동자가 안전재해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노동 착취로 이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며,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위기의 시대, 지속가능하고 인권친화적인 경영 활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보여줘야 한다. UNGPs에서 권고하듯, 비즈니스 과정에서의 잠재적, 실제적 리스크를 파악하고 완화해 나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특히,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수준의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는 기업의 법적 리스크 대응에도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으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한 사법적/비사법적 구제책의 마련 역시 기업 인권 증진을 위한 핵심적 사안이며, 정부와 기업 모두 구제책에 대해 지속적인 개선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10년 전 필자가 첫 UNGP포럼을 참석했을 때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유엔 회의장에서 미얀마 시민활동가가 기업의 인권침해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오래도록 부르며, 그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무거운 박수가 멈추지 않던 장면이다. 한국도 여전히 매년 산재로 수천 명이 죽는다.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숫자다. 하루가 멀다고 젊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면 슬픔이 깊어진다. 그러나, 10년 전 전 세계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중요한 원칙을 만들었고, 세상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나 크고 작은 진전을 이뤄왔다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시행된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고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다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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