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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비범죄화 5개월…의료 공백 위험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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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비범죄화 5개월…의료 공백 위험은 '여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발표 "임신중단 시기 늦어져 더 위험해져"

형법상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지 5개월이 흘렀지만 후속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아 법·제도의 공백 속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건강상 위험과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 등의 주최로 열린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포럼에서 참가자들은 "현재의 입법 공백이 의료 공백을 방치하고 있다"며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의 관점에서 하루빨리 대체 입법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5년 내(2016년 1월~2021년 3월) 임신중단 경험자 중 당시 만19~44세였던 602명(19세 이하 27명, 20대 290명, 30대 259명, 40대 26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의료 공백은 초기 의료접근성을 낮춰 임신중단 시기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신중단 시기가 늦어질수록 건강상 위험이 커지고 높은 비용 부담으로 연결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의료 공백은 응급피임약이 필요할 때부터 드러났다. 응급피임약은 85%의 피임 성공률을 보이는데 48시간 내 복용해야 한다. 조사 결과 40.4%에 달하는 응답자가 응급피임약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중 13.2%는 '필요했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답했고 18.5%는 '약물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다. 필요했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68.8%는 결과적으로 임신해서 임신중단 수술을 받았다고 답했다.

응급피임약을 사용한 59.6%(349명) 중 14.2%도 의료인의 거부로 처방전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46.2%는 '응급피임약이 낙태약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답했다. 응급피임약 사용자 중 10.6%는 사용하면서도 '응급피임약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임신중단까지의 소요시간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1주 이상 걸렸다. 응답자 평균 임신 사실은 임신 5.7주차에 알게 됐고 임신중단은 임신 7.1주차에 이루어져 임신 사실 인지부터 임신중단까지 약 1.4주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요시간은 연령별, 혼인 여부별, 지역별로 차이가 나타났다. 저연령이고 미혼일수록 임신 사실 인지는 늦었지만 임신중단 결정은 빨랐다. 지역별로는 의료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도시 거주자일수록 빨랐다.

임신중단까지 1주 이상 소요된 202명을 대상으로 이유를 조사한 결과 20대 이하와 30대 이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20대 이하는 낙태죄(39.0%),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의 부족(39.0%), 상대방의 동의(29.5%), 비용(27.6%), 의료기관의 거부(21.0%), 주변 시선(15.2%), 부모 의견(14.3%) 순으로 나타난 반면, 30대 이상은 상대방 동의(34.0%), 낙태죄(30.9%),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의 부족(29.9%), 의료기관의 거부(15.5%), 주변 시선(9.3%), 부모 의견(7.2%), 비용(7.2%)으로 나타났다.

임신중단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컸다. 비수도권·읍면 단위 거주자의 경우 임신중단을 8.16주차, 수도권·동 단위 거주자의 경우 6.91주차로 나타나 1.25주의 차이가 나타났다. 특히 비수도권·읍면 단위 거주자인 20대 이하의 경우 10.94주로 나타나 의료 공백의 위험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읍면 거주자, 특히 강원·제주 지역은 "산부인과를 찾기 어렵다"고 답한 응답자가 많았다.

의료 접근성의 어려움은 높은 비용은 물론, 건강상의 위험 부담으로 이어졌다. 임신중단 약물 사용 경험자는 189명에 불과했다. 이 중 68.2%는 병원에서 구했으며 20.6%는 의료기관 외 국내 판매처에서, 22.2%는 해외 단체를 통해 구했다고 답했다.

임신중단 약물은 어디서 구했는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었다. 의원급 병원은 30~40만 원, 2차 병원 이상 40~50만 원, 의료기관이 아닌 국내 판매처 30~40만 원, 해외 단체 20~40만 원 선이었다.

다만 약물의 종류, 구입처의 신뢰성 등에는 큰 차이가 있다. 병원에서 구한 경우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미프진이 아닌, 위궤양 치료 약물이지만 임산부에게 낙태 부작용이 있는 '미소프로스톨'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의료기관이 아닌 국내 구입처는 약물의 부작용, 사용방법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가짜 약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임신중단 수술 비용은 약물에 비해 차이가 컸다. 수술비용은 50~80만 원 사이의 응답이 가장 많았고 평균 60만 원대였다. 다만 눈에 띄는 점은 '100만 원 이상' 응답자는 수도권에 많았으며,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단을 받은 이후엔 80만 원 이상의 비용 구간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임신중단 후유증에 대한 정보와 치료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체 응답자 602명 중 24.8%는 신체적 부작용(자궁경부 무력증, 자궁천공, 골반 염증성 질환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48.0%는 정신적 건강문제(불면증,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를 호소했다.

응답자의 85.5%는 임신중단 과정에서 '부작용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 및 선택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주수 또는 사유에 따른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상담과 의무 숙려기간, 의료인의 거부권에도 회의적이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비범죄화 이후에도 임신중단의 어려움의 이유가 비슷하게 나타나는 점을 들어 "여러 쟁점 사안이 재확인됐다"며 "향후 임신중단 의료접근성을 논의할 때 이러한 장애 요인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는 "(센터에 임신중단 관련) 정확한 정보를 찾는 연락이 많다"라며 "정확한 정보도 없고 의료 상담환경도 부족하다. 의료현장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영 대표는 출산율과 인구정책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던 출생을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SRHR)'의 관점에서 다루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생산'이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임신 시도·유지·중지, 출산, 양육을 할 수 있을 만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 '차별, 강요, 폭력, 사회적 낙인 없이 자녀를 가질지 여부와 시기, 방법, 자녀의 수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사할 권리'를 말한다.

나영 대표는 "임신과 출생을 둘러싼 각종 환경, 성교육, 피임, 출산, 양육, 사회경제적 상태, 파트너십, 가족 구성, 성관계와 성건강 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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