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망 사건'을 맡은 변호사 쪽이 한낮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 표현하면, 메시지 없이 PDF파일만 하나 보냈다. 그래도 파일을 열어볼 순 없었다. 식당에서 밥 나르는 노동자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김정미(가명) 씨는 열 시간 노동을 마친 밤 10시께 집에서 파일을 열어봤다. 법원 판결문이었다. 읽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했다. 심장 박동수가 살짝 빨라졌다.
심장 박동수는 급격히 추락했다. 남편은 자기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사망했다. 재판부 논리가 그렇다. 2021년 1월의 끄트머리, "0.1%의 희망이라도 기대"했던 마음은 허무하게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판결문을 다 읽은 김정미 씨는 3년간 매일 복기한 그날로 다시 돌아갔다.
남편 주희재 씨(당시 54세. 가명)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일대에서 배달 대행업체 기사로 일했다. 사고가 발생한 2018년 6월 20일 오후 1시 7분, 남편은 김밥 배달을 마치고 가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남편은 분당 잡월드사거리에서 좌회전이나 유턴이 가능한 안쪽 차선으로 진로 변경을 시도했다.
남편은 3-4차선 사이에 그어진 백색실선과 시선유도봉을 넘다 3차선에서 직진하던 SUV 차량과 충돌해 그날 밤 사망했다.
김정미 씨는 기자에게 한 이 말을 지금까지 수없이 했다.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산재)’를 청구했을 때부터 그랬다. “남편은 범죄자” 논리도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공단 측은 이런 논리로 산재를 불승인했다.
고의로 사고를 내서 사망했다고? 아내 김정미 씨 등 유가족의 분노를 산 부분이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아무 근거 없이 산재 불승인 처분을 한 건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의 내용은 이렇다.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는 이렇다.
주희재 씨는 정말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망했을까? 아내 김 씨는 곧바로 산재보상보험재심위원회(재심위)에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를 청구했다. 재심위는 김 씨가 청구한 내용을 판단하기에 앞서 외부 변호사 세 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A변호사는 이런 의견을 냈다.
상대차량과 경합하여 사고가 발생했으니, 산재를 승인해야 한다는 의견. 다음엔 B변호사의 의견을 보자.
역시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마지막 C변호사의 핵심 의견은 이렇다.
자문 변호사 3인 모두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세 변호사 중 둘은 상대차량 운전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당시 사고는 "오로지" 주희재 씨의 과실로만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사망 직전 치료를 받은 주희재 씨의 병원비를 지급한 쪽은 상대 차량 운전자 D씨의 보험사였다. 보험사는 치료비 약 289만 원과 합의금 2009만 원을 주 씨의 유가족에게 지급했다.
특히 보험사에서 산정한 상대차량과 주희재 씨의 과실 비율은 '1대9'였다. 차선을 변경한 주 씨의 과실이 크지만, 보험사도 운전자 D 씨의 책임이 아예 없지 않다고 본 셈이다.
D 씨 역시 사고 당일 분당경찰서에서 본인의 과실을 적는 진술조서 칸에 이렇게 썼다.
D 씨는 진술조서 피해경위에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좌로 돌렸지만 충돌을 피하지 못하고 제 차량 우측 앞부분으로 오토바이와 충돌했다”고 적었다. 즉, 사고가 나기 전 그는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봤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재심위는 주희재 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은 옳다고 결정했다. 여기에서도 “주희재는 범죄자”라는 논리가 등장했다.
김정미 씨는 마지막으로 행정법원 찾았다. 앞서 말한 대로, 법원에서도 남편은 범죄자 굴레를 벗지 못했다. 김 씨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은 일주일.
자문변호사들의 의견, 보험회사가 따진 과실 비율 9대1, 여기에 상대 차량 운전자 진술까지. 항소심에서 다시 한 번 다퉈보면 산재 승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 씨는 항소를 포기했다.
사실 김 씨에게 "0.1%의 희망"도 못 보게 한 건, 돈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하다가 죽고 싶은 라이더는 없다. 위법하게 차선을 변경했지만 결국 주희재 씨 사고도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다. 30분 배달제가 부활한 시대에 안전하게 운전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라이더는 약 3000원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런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가 존재한다.
동시에 산재는 ‘노동자에게 과실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국가는 재해와 범죄행위의 인과 관계를 더욱 엄격히 따질 필요가 있다.
주희재 씨 사건을 살펴본 복수의 변호인들은 한결같이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안인데, 1심에서 종결돼 아쉽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희재 씨가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한 건 수수로 3000원을 더 벌기 위해서였으리란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 남편이 안타까우면서도 아내 김 씨는 돈이 없어 항소를 포기했다. 남은 가족의 살림살이는 이전보다 훨씬 팍팍해졌다.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데,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또 하나. '범죄자'는 형법에 따라 기소되고, 처벌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실제로 주희재 씨의 차선 변경은 범칙금 2만 원에 해당하는, 일명 '빨간줄'로 불리는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 행위다. 이런 과실을 범죄라고 부르면 이 나라는 벌써 '범죄자의 왕국'이 되지 않았을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