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가 각 분야 전문가의 힘을 빌려 여러 산적한 문제의 대안을 들여다보는 기획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가기 : 시민건강연구소)
중국 우한에서 시작해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었다. 그 사이 1억1300만 명이 넘는 세계인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250만여 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 인구의 최대 3%를 죽음으로 몰아간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스페인 독감) 이후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 최대의 피해라고 할 만하다.
이런 대규모 피해가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이지 않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안착했다. 실물 경제를 대신해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 체제가 중요한 한 축을 잡게 됐다. IMF 사태 이전과 이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다.
코로나19 역시 특히 일자리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애초 한국에서 일자리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는 장기 해결 과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 노동 시장 상황이 국민 삶의 질 격차를 점차 더 크게 벌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 경제의 타격은 이런 양극화 경향을 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고질적인 청년 실업과 노인 노동 문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 산업혁명 수준의 산업 구조 개편은 한국의 일자리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크다.
당장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방안을 고심해야 할 때다. 이번 글에서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역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돌아보며, 근본적인 정책 방향에 문제가 있었음을 짚는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 청년실업 대책 등의 정책이 각기 나뉘어 전개되면서 개별 논란만 커지고,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고 김 소장은 지적한다. 이 대표적 사례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당시 일어난 ‘공정성’ 논란이다. 여론의 극심한 반발 이후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은 사실상 좌초했다.
김 소장은 이런 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개별 노동 문제를 결합하는 정책 혼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우리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경쟁, 청년실업, 비정규직, 여성의 경력단절, 노년 노동, 인력 구조조정, 플랫폼노동, 노동빈곤, 불안정 노동의 확대와 불평등의 심화 등 수많은 문제가 떠오른다.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과 불안정성의 증대로 인한 노동시장의 분단구조 심화로 집약된다. 역대 어떤 정부도 피해갈 수 없던 일자리 정책의 화두이다. 번듯한 일자리(good job)는 고사하고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도 부족하다.
세 가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고, 불안정·저소득 일자리의 늪에 갇힌 사람들에게 고용과 소득의 안정성 중 한 가지라도 채워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논하기 전에, 역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비단 현 정부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근본 문제를 방기했다는 데서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책에도 고용상황은 여전
역대 어느 정부도 일자리 정책을 중요하게 제시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 고용 여건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바가 없다. 국제비교지표로 삼는 고용률은 답보 상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실업률은 단지 3%에서 4%로 늘어났을 뿐이다. 실직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경제 상황이 안좋으면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지는 인원이 늘어나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자임을 선언해봐야 실익은 없고, 낙인만 남는 부실한 고용안전망이 큰 원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정규직 대비 60%의 임금을 받는 문제도 요지부동이다. 그럴듯한 직장에서 비정규직의 초임은 정규직 초임 대비 40~60%로 시작하다, 근속 10년이 넘어가면서 30~40%대로 추락한다. 고용형태가 신분제처럼 여겨지는 데는 이런 이유가 크다(한국 임금체계의 문제점이 연공급이라고 꼽는 건 한쪽 면만 본 얘기다. 다른 한쪽에선 그 기준이 숙련이든 근속이든, 자격과 기여에 따른 보상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난다.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 220만 명 중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노동자가 140만 명가량이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좋은 일자리는 더욱 부족하며, 일자리 간 격차도 좁혀지지 않았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나 현재 상태에서 불가피한 정책수단에만 의존하는 관행이 20여년째 안 바뀌는 고용정책 대상이 둘 있다. 노인 상대빈곤율은 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소득하위 70% 이하 계층의 노인들은 기초연금의 혜택을 받지만, 여전히 부족한 소득을 공공근로 등 노년 노동을 통해 채우고 있다(65세 이상 고용률 2019년 32.9%, OECD 평균 14.9%(2017)). 연륜과 경험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자발적 노동이 아니라, 생계를 꾸리기 위한 힘든 몸부림 원인을 국민연금의 미성숙 탓으로만 돌린 지가 20년째다.
또한, 청년 일자리 관련 굵직한 대책만 98년 이후 8차례 정도 나왔다. 그럼에도 청년 고용상황은 변하지 않았다(청년실업률은 2015년 9.15%, 2019년 8.91%, 2020년 8.95%다. 같은 기간 확장실업률3(체감실업률)은 21.9%에서 22.9%, 2020년 25.1%). 정권이 바뀌어도 한시적 일자리 위주의 대책도 바뀐 게 없다. 인턴공화국이라 불리던 이명박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은 그 집약판이다. 그렇다고 다른 정부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생산적 복지·고용 정책의 연장선인 구직촉진수당(국민취업지원제도로 전환)과 청년내일채움공제만 성과로 내세우는 게 20년 청년 고용대책의 현주소이다. 당사자 직접 지원제도인 서울시 청년수당, 경기도 청년배당과 같은 문제인식에 구직촉진이라는 발상이 곁들여진 제도는 정책의 큰 사각지대를 좁게 메우는 기제일 뿐이다(청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나 경력단절 여성, 자영업자를 포함한 정책대상은 20년 35만명 규모이고 22년 60만명 규모로 확장하는데, 지급수준은 연간 최대 300만 원대에 그친다).
청년을 비롯한 고용창출 정책의 대부분은 채용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채용장려금 중심이다. 지원금 정책으로 기업의 고용을 '유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원금을 인건비 3분의 1 이상으로 높이는 방법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낳고, 정책 효과도 기대만큼 높지 않다. 벨기에의 로제타플랜(청년실업의무고용제)과 프랑스의 주 35시간제를 통한 고용창출 과정에서 기업 인건비 부담 문제의 해결책이자, 청년 고용창출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쓰인 방법은 지원금의 3배에 달하는 범칙금을 쓰는 '견인'책이었다. 이런 방법은 한번도 이 땅에서 구현된 바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 보수적 사고의 뿌리에는 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가 일을 통한 복지보다 우선이다. 그런데 민주개혁정당의 정책도 집권 후반부로 가면 급격히 앞의 사고와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안전망 수준에서 공공근로를 통한 노인의 소득 보완기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당장에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20년 이상 같은 상황이라는 데 있다. 청년 일자리에도 획기적 변화는 없었다. 인턴 정책을 보완 강화하는 수준에서 소득안전망을 조금 가미한 것이 전부이다. 1인당 소득 3만불,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지금도 모두에게 안정된 노동소득이나 사회소득을 줄 여건이 안된다는 변명만 계속되고 있다.
취약한 일자리안전망의 경로의존성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라는 주창은 보수정당의 슬로건이다. 성장 우선주의의 발로이다. 여기에 제3의 길을 천명하며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사회민주당 우파가 가세했다.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과 독일의 슈뢰더 정부가 대표적이다. 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프로그램과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일을 통한 복지) 정책도 그 흐름과 같다. 사회복지 안전망이 미성숙한 우리 여건에서 복지 확대를 일과 연계하는 건 재정적으로도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비어 있던 필수 안전망인 아동, 노년층, 중증 환자, 노동능력 상실자에 대한 복지 인프라의 기초를 놓는데는, 한 가지만 해도 일년에 수조에서 수십조 원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차상위 소득층 이상의 안전망은 일을 통한 복지로 메우게 된다. 고용안전망도 최저수준으로 설계된다. 그간 한국은 돈이 적게 들게끔, 최저임금 언저리의 일과 연계해서 최소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그쳤다.
한번 설정된 경로로 인해 이후의 정책 방향을 제약하는 악순환 경로의존성이 작동한다. 이제야 전국민 고용보험제 등 기본 고용안전망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반증이다. 14개 특수고용 직종에 한해서 적용하며, 산재보험 특고 가입률 3분의 1 미만인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그나마 적용 예외를 엄격히 인정하겠다는 방안이다. 숭숭 뚫려 있는 실업급여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체 취업자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49.4%에 불과하고, 피보험자격 상실자 중 구직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28.9%이다(2017년 기준). 이를 전국민고용보험제의 특수고용 적용 확대로 일부 해결하고, 올해부터 시행되는 한국형 실업부조라는 국민취업지원제도로 일부 메우고 있다(별도로 저소득 근로소득계층을 위한 근로장려세제가 있다. 안전망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기제이나, 고용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면 상충될 수 있는 제도이다).
대상의 확대(enlargement)도 충분치 않으나, 더 심각한 문제는 하향 설정된 고용보험제도의 확충(enrichment)이 매우 더디고, 구조적 한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2019년 10월부터 급여액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상향, 지급기간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확대). 현 고용보험제도의 구직급여제도는 비자발적 실업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최장 지급 기간도 9개월에 불과하고 실업 전기간에 걸친 소득대체율은 매우 낮다(최고 실업급여의 '순소득 대체율'(평균 근로소득 대비 실업급여)은 42.0%로 OECD 평균 55%에 미치지 못한다(OECD, Wage and Benefit, 2018). 지급기간이 짧고 장기실업 보완제도가 없으므로 실직 1년 후나 5년 후엔 격차가 더 벌어진다(각각 31% 대 53%, 10% 대 28%). 고용보험 적용대상 확대도 현 제도의 연장선에서는 안전망으로서 낙제점이다.
소득이 고루 나눠지지 않는 메커니즘의 근저에 깔린 일자리 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 일자리는 최선의 복지이다. 보수적 성장주의 담론도, 생산적 복지의 방어논리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기본소득의 반대논리도 아니다. 사람에게 생활을 영위하고 미래를 설계할 일자리를 제시하는 건 노동시장정책과 고용·소득의 안전망이 모두 부실한 여건을 헤쳐나가면서 동시에 둘의 연계를 강화할 핵심 고리이다. 우리 경제의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으니,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출중심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국민 대다수에게 안정적이고 고른 일자리를 제공하는 건 여태까지처럼 불가능한 일인가?
역대 정부 일자리 정책 실패의 역사
2013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였지만,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고 늘린다’는 논의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당시 선거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정책 중심으로 상징화했다. 여성 시간제를 늘리는 데 초점을 두다가 상용형(정규직형) 시간제로 옮겨가서 공무원 일자리 중 일정 비율을 시간선택제로 만드는 것이 결론이었다. 외형을 강조하는 상징적 정책이 전반의 대책을 집약하기보다, 대체하며 고립되어 전개된 나쁜 예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정책은 좋은 일자리를 공공부문에서 만들어 이 성과를 민간 기업에 확산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일단, 81만개 중 순수한 창출은 많이 봐야 절반이고 좁게 보면 3분의 1에 불과하다. 더 많은 숫자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일자리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전환은 모두 중요하므로 81만개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정작 문제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의 모범을 민간에 확산한다는 정책이 막연해, 공공부문에서 이른바 '공공성'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민간부문 일자리 대책에서 손을 놓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관련 일자리 대책은 예전 정부 정책과 비슷하다. 역대 정부의 기업 정책은 시대에 따라 녹색산업, 바이오산업, 디지털산업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고, 녹색경제, 창조경제, 혁신경제로 포장만 바뀌었다. 일자리 창출 비전이 없는 산업지원정책에 불과하다. 물론 새로운 유망 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선택적 개입 전략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정교하지 않고 흐름에만 편승하면서 외형 성과에 치중하는 산업정책으로 그친 사례를 반복할 위험성이다. 정부 기업 대책에 일자리 창출과의 정책연계가 설계되지 않은 것이 그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은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 프레임으로 공무원, 공공기관의 일자리 축소를 단행해 4대강 사업에 따른 토목 일자리 확대 외에 일자리 구조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세금으로 일자리 만든다는 비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토목 공사를 비판하는 데 사용된 그 논리는 보수진영이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을 비판하는데도 동원했다. 저성장 저고용 체질로 바뀌는 성숙경제에서 부족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 내기 위한 공공부문의 능동적 역할을 부정하는 건 '기업에 맡기면 된다'는 시장 극단주의가 빚은 허상(이데올로기적 비판)의 결과다. 공공근로, 청년인턴제의 반복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역대 정부 모두가 반복했던 일자리 정책의 허점이다. 이 한계를 극복할 비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건, 결과적으로 보면 공공부문의 성과에 흠집이 나면서이다. 사실 그 이상의 비전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제까지 민주개혁진영 일자리 정책의 한계이다.
꼬여버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는 처음부터 민간 기업 대책이 공백이었다. 막연히 공공부문에서 모범사례를 확장한다는 발상이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하청 노동자 정규직 전환 문제가 상징적이다.
필자는 2011년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현실에 대한 국회 발표를 네 차례했다. 이 때 새롭게 놀란 점이 있다(웬만한 비정규 노동의 현실에 대해 잘 아는 연구자로서 처음 놀란 건 2008년경 최저임금 수준의 하청회사를 셋으로 쪼갠 노동자를 활용해 핵심 모듈부품을 생산하는 현대모비스 부품공장과 라인별로 하청회사를 분할해 경차이지만 완성차를 생산하는 동희오토 사례였다).
인천국제공항 전체 인력의 87.4%인 민간위탁 간접고용 노동자가 공항 현장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공항으로부터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본사에서 정규직으로 구성된 운영관리 부서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도 못하고, 하청회사 관리자를 통해 그들을 간접 관리하는 기막힌 장면을 일상적으로 연출했다. '불 나도 (국가 주요시설의 관리자인 공사 직원이 아니라서) 문고리도 못 따는 소방대'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와 어긋나는 극단적인 차별적 고용관행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무조건 아웃소싱'이라는 잘못된 신화를 맹신한 결과는 결코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지 않음이 드러났다. 당시 연구결과로 간접고용 10년차 노동자의 연봉은 정규직 초봉의 절반에서 3분의 2 수준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7년만 지나면 정규직 초임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줘도 인소싱하는 것(방법은 정규직화와 현재 대다수 전환자처럼 자회사)이 외주위탁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었다. 2015년 연구 결과로는 임금 격차도 더 벌어졌지만, 아웃소싱 기성금 인상률이 더 높아져 그 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었다. 비정규직 차별을 낳는 정책은 정당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아웃소싱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대기업, 공기업의 대졸 초임 4500만 원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자(하청회사에서 공기업 자회사로,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 또는 공무직으로 또 하나의 고용형태로 전환)가 근속 15년차에도 받지 못하는 연봉이다. 향후 재설계가 필요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은 3년마다 3~5만 원 오르는 게 전부거나(공무직), 기존 정규직 임금의 3분의 2(공무직)~2분의 1(공기업, 대기업)에서 시작해 근속 15년차에는 40~30% 수준으로 더 내려가는 수준이다. 기존 정규직 임금구조가 과도한 연공성의 문제를 갖고 있다면, 비정규직이나 정규직 전환자의 임금구조는 근속 경력 보상의 부족과 다른 대안 부재의 문제 즉, 연공이든 숙련이든 보상이 부재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그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되고 강화된다.
그런데 막상 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논의에 들어가자 상황은 급변했다. 정규직 노조와 신입 직원들의 반발에 외부 여론에도 비판적인 시각만 부각되었다. 정의롭고 평등을 추구하는 사안에 공정성 시비가 붙었다. 이를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핵심인 정규직 전환정책의 진취성은 많이 상실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온전한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논란만 커졌다. 비정규직 관련법이 입법예고된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상은 공공부문과 준공공부문인 금융산업 기간제 노동자로 한정되었다. 그 때도 온전한 정규직 전환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중규직’이라는 어중간한 신분의 무기계약직이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도 소극적이지만 이 정책을 이어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을 계승해 전환 대상을 직접고용 기간제만이 아니라 용역, 하청, 협력업체라 부르던 민간위탁의 간접고용으로까지 확대했다.
그 결과 발생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은, 전환이 자회사 채용 중심으로 귀결되었음에도 특혜와 불공정 시비를 낳았다. 평균 근속연수 10년이 넘으며 공항의 실질적 운영을 담당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이렇게나 문제가 될 일인가? 특혜 편법 채용이 있었으면 가려내면 될 일이다. 근속 15년차가 되어서도 정규직 초임 수준도 받기 어렵고, 이 처지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자회사 채용이 대다수인 조건에서 불공정 시비는 분명 과도하다. 그러나 논란은 증폭되고 확장되었고, 이후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거의 대부분은 자회사 고용으로 매듭지어졌다. 정책적 성과로 삼을 만한 민간부문으로의 전환 확장 사례는 없다(통신회사 사례는 여당 을지로위원회의 노력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희망연대노동조합의 연대와 투쟁의 산물이다).
인턴공화국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 인턴 중 정규직 채용 비율을 할당했더니 유력자의 취업 청탁이 인턴으로 쏠리던 현상이 있었다. 한편 더 큰 유력자의 경우 가장 유망한 민간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성격도 있던)이던 금융기관에 자녀의 정규직 취업을 청탁한 사실이 일부 드러난 바 있다. 더욱 고단수의 취업청탁은 청탁 돌려막기이다. A은행과 B은행의 취업청탁을 서로 갈음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현실이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청탁 사례나 비정규직으로 심어놓기 관행으로도 일부 나타났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전과 비교해도 이례적일 정도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은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었다.
청년들에게 묻는다. 정규직이라고 다 같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신분적 격차는 줄어드는 것이 맞다. 학력별, 직업별 격차는 합리적 차이로 반영하면 될 것이다. 그들의 일자리가 현재 공사 취업준비생과 취업경쟁을 하는 일자리도 아니다. 현업업무(기술, 기능, 노무, 경호)에 배치되어 평균 근속 10년이 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력과 기여는 채용의 자격이다. 일부라도 절차에서 특혜나 불공성의 문제가 있다면 가려내고 보완하면 될 일이다. 과거처럼 신분제 차별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안정적이지도 효율적이도 않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과 이에 대한 무대책으로 인해 정규직 전환의 긍정적 의미는 사라졌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 일자리정책도 영종도 섬에 갇혀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의 확산
코로나19 확산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크다. 2019년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고용상황은 2020년 3월 이후 악화되기 시작했다. 전반적 고용대책과 함께 소득지원책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유지지원제도의 기간 종료에 따른 대책, 고용유지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과 무급휴직자 등의 고용안전망 대책도 고용보험 확대와 확충의 과제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특별재난지원금 지원제도도 한시적 기본소득의 실험이라는 의미로 가다듬어야 한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확산의 충격은 상대적으로 노동시장 내 고용이 불안정한 취업자에게 더 컸던 점이다. 2020년 3월 이후 여성, 청년층 취업자의 감소 규모가 컸으며, 소규모 사업체 취업자와 임금근로자 중에서는 임시직과 일용직이 많이 감소했다. 고졸이하, 전문대졸자 등 중저학력층의 고용감소가 컸고 이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인 기능직, 서비스직, 판매직 등의 감소 폭도 컸다. 최근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상용직 등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인 취업자 역시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K형 불평등 양상은 뚜렷하다.
불안정성이 높고 차별이 심한 노동시장 구조에 팬데믹의 불평등 효과가 더해지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나 디지털혁명의 영향까지도 양극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본다면,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대책은 더욱 더 중요해진다.
앞으로 가야할 일자리정책
일자리 관련 향후 논의는 고용의 '창출',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 과도한 격차의 '해소'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도록 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잘 되기 어렵다. 현재의 과도한 격차를 그냥 둔 채 이뤄지는 좋은 일자리 창출 정책이나 전환 정책의 결과는 매우 제한되거나 실패하기 쉽다. 일자리 창출 없이는 좋은 일자리 전환의 여력이나 과도한 격차 해소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한때 모든 노동의 '존중', 차별이 아닌 '평등과 연대'가 강조되는 시대가 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신분제적 차별과 비견되는 극심한 격차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고위층의 학벌, 취업 관련 비리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정의 문제가 '공정' 문제로 뭉뚱그려져 제기되면서, 그나마 차별을 일부라도 축소하려던 정책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공정과 연대가 마치 배치되는 것처럼 된 과정은 투명하지도 않고, 분명치도 않다. 공정은 약자도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는 의미를 갖는다. 그 결과가 과도한 격차로 이어지면 정의롭지 않다. 모두가 함께 사는 연대는 공정과 결합되는 것인데, 그 반대로 흘러간 맥락을 바꾸어야 한다.
세 가지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현재 전개되는 쟁점을 제대로 구축하는 방안이다. 확대의 과제와 확충의 과제를 결합하는 포괄적 고용안전망의 구축이다. 고용보험 가입대상 확대만 아니라, 실업급여 지급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실업보험제를 도입해야 한다. 자발적 실업까지 급여 지급 대상으로 포함하고, 특고 적용 대상 확대와 함께 고용보험이 아닌 실업보험으로 바꾸어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서 한국형을 뗀 실업부조제로 최초실업자, 장기실업자, 자영업자, 경력단절자를 포괄하고, 구직촉진수당을 실업부조로 바꾼다. 이를 실업급여 지급기간 확대, 소득대체율의 상향을 통한 확충과 실업기간별 단계적 보완방안과 결합한다.
둘째, 새로운 강력한 대안의 방향으로 재제도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고용책임제(근로기준법 5인 미만 적용 + 단시간 노동자 보호 강화 +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 개편과 사유제한제 도입 + 정리해고제 요건 실질화 등 개편)와 고용안전망의 확충을 연계하는 방안이다.
셋째, 고용창출에 주력하는 대안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공공서비스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전국민돌봄서비스의 확대와 공공서비스 질적 확대를 통해 중위 임금 이상 일자리 창출의 여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아동, 청소년, 노인, 중증 환자 등의 돌봄 수요는 450만 이상이며, 그 중 일자리로 연결되는 것은 4분의 1~3분의 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간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확대되는 효과도 생긴다. 이런 선순환 효과는 일자리정책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는 견인책을 동반한 청년실업의무고용제(20~30만 좋은 일자리)와 노동시간단축을 정책적으로 혼합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10~50만)를 현재 구직난과 미래의 생산인구 절벽 사이에 낀 청년세대를 위한 특별 고용창출 방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안의 구현은 정책혼합의 구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태 정부의 노동 정책은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 청년실업 대책 등의 정책을 개별적으로 다루고 있어 각개격파 식 논란만 가중되었다. 이를 결합하는 '정책 혼합(Policy Mix)'의 설계가 필요하다. 이들 문제는 노사 모두 -강점과 약점은 서로 다르나-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영역이므로 '대타협(Grand Deal)'의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복원은 한국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구조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교환(Political Exchange)'의 수준을 상정해야 한다. 애매한 설계도가 아니라 치열한 논란이 되었던 쟁점 사안에 착목(着目)하되, 이를 구조변화의 방향을 설계하고 종합적으로 다룸으로써 가능하다. 덴마크, 스웨덴 방식의 연대적 유연안정화의 경로 설정은 지금부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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