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일본에서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장관급 국외 순방을 관통했던 주요 메시지의 일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등 '공유 가치'를 토대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적 전진이 공격을 받고 있다"며 "독재정치에 대처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했던 이유는 세계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두 갈림길에 서 있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최근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對)중국 압박에 무게를 두는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그 한 예로, 3월 18일 알래스카에서 개최되었던 미·중 외교수뇌부의 최초 상견례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과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을 강력히 제기함으로써 이 문제들을 둘러싼 미·중 간 격한 설전이 오간 바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매개로 한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미국이 지목한 부정한 국가를 공격하고 상대를 제압했던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령 1975년 소련을 포함한 유럽 33개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미국 등 35개국 사이에 체결된 헬싱키협정에 따라 미국은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의 인권문제에 점차 깊이 개입했다. 즉, 인권 보호와 사상의 자유로운 교류에 대한 규정을 동 협정문에 포함시켰고,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에 대해 "소련이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처럼 반체제 시위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조항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바츨라프 하벨, 폴란드에서 레흐 바웬사 같은 반체제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고, 결국 궁극적으로 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데 최초 도화선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러한 과정을 또 한 번 적용해 핵과 인권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있는바 그 대상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미·소 냉전기 유럽에 존재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와 같은 국제협력체 설립을 제안함으로써 과거 성공적이었던 다자안보협력 경험을 북한에 적용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북한 내 인권을 중시하면서 동맹국 간의 결속과 통합을 바탕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모색하고 노력하는 대상국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경쟁국이거나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냉전시대 소련이 그러했고,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에 대적하는 전 세계 유일한 국가인 중국이 그러하며, 중국을 등에 업고 미국에게 끊임없이 도발하는 국가가 북한이다. 즉, 미국의 힘에 도전하는 국가가 아니거나 그들의 영향력 확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국가일 경우, 세계의 경찰국이라는 미국의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방관자적인 게 사실이다.
이렇듯 심각한 민주주의의 침해와 인권 말살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방관하고 있는 전형적인 예가 작금의 미얀마이다.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사태에 대한 보도를 접하노라면 슬픔을 넘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심지어 두 아들에 아버지까지 삼부자가 모두 사망한 가족이 있다는 뉴스가 들리는가 하면, 이미 수십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하고, 군부 쿠데타에 항의했다가 희생된 숫자가 천 명에 육박해 가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처럼 심각함에도 독재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겠다는 미국의 별다른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 듯하다. 정녕 이것이 외교정책의 중심에 민주주의를 두고 인권의 가치를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하는 정당한 모습인지 반문케 한다. 오늘도 유혈진압에 쓰러져 가는 미얀마 국민들을 애도하면서, 미국과 소위 그 동맹국들의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인도적 개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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