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천당 아래 분당'이란 말이 있다. 그 분당 한복판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하 쪽방촌이 있다. 창문이 없어 빛이 없고, 난방이 안 돼 온기도 없는 2평 남짓한 방의 행렬.
주희재(가명. 당시 54세) 씨는 출근을 위해 저쪽 끄트머리 쪽방 문을 열고 나왔다. 무릎보호대가 달린 청바지를 입었고 한 손엔 헬맷을 들었다. 이런 도구는 주희재 씨를 지켜주지 못했다.
몇 시간 뒤, 주희재 씨는 죽는다.
그걸 알 리 없는 주 씨는 먹고 살기 위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2018년 6월 20일 오전, 배달 라이더 주 씨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주 씨는 성남 분당에서 일하는 배달 라이더다. 벌써 동네를 몇 번 돌았을까. 사람들이 허기를 느끼는 점심, 라이더는 가장 바쁘다. 라이더가 빨리 움직여야 배달대행업체, 식당 사장, 주문자가 만족한다. 이때 많이 배달해야 라이더도 돈을 번다.
주문 콜을 잡았다. 김밥 배달이다. 주문지는 분당 정자동 파크뷰아파트. 주희재 씨는 김밥을 챙겨 서둘러 아파트로 향했다. 배달을 마쳤을 땐 오후 1시 7분, 주 씨는 아파트 후문으로 빠져 나왔다.
파크뷰아파트 후문은 편도 6차선, 왕복 12차선 도로와 연결돼 있다. 약 100m 앞은 잡월드사거리. 여기에서 직진하면 서울 방면, 우회전으로 백현교를 건너면 수내역 인근 식당가다. 좌회전은 판교, 유턴을 하면 정자동 식당가 및 번화가로 가는 길이다.
아직 점심 대목이 끝나지 않은 시각, 라이더는 빨리 식당가 쪽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다. 그래야 콜을 받아 배달을 할 수 있으니까. 늑장을 부리면 식당 주인에게 찍힌다. 그러면 배달 기회를 잃고, 수입이 준다.
파크뷰아파트 후문에서 잡월드사거리 인근까지 온 주희재 씨. 그는 과연 어느 쪽을 택했을까. 일단 영업지역과 먼 서울 방면 직진은 제외. 우회전, 좌회전, 유턴이 남았다.
좌회전, 혹은 유턴을 하려 했는지 주 씨 오토바이는 바깥 6차선에서 안쪽으로 진입했다. 문제는 주 씨처럼 파크뷰아파트 후문에서 나오면 좌회전과 유턴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1차선은 유턴만, 2·3차선은 좌회전만 가능하다. 4차선에선 안쪽 진입을 막으려 시선유도봉을 설치했다.
주 씨는 시선유도봉을 피해 3차선으로 진입했다. 그때 뒤에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와 주 씨 오토바이가 충돌했다. 주 씨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
그 순간, 주 씨의 아내 김정미(가명. 당시 42세) 씨는 지인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정미 씨는 병원 응급실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울었다. 남편처럼 종일 거리에서 일하는 택시기사가 위로해 줬다.
남편은 생사를 다투고 있었다. 그 다툼도 밤 10시께 끝이 났다. 의학적 사망선고 직전, 의사가 주 씨 아내와 고교생 두 딸에게 말했다.
주 씨의 숨은 멈춰 가는데, 머리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 아래 깐 패드가 붉게 젖었다. 첫 째 딸이 울먹이며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의사 말대로 남편은 정말 딸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남편의 감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아내 김정미 씨가 그걸 손으로 닦았다. 남편은 그렇게 떠났다. 슬펐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아내 김 씨를 덮쳤다.
김 씨는 남편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안전교육 등은 제대로 받았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특히 남편이 왜 무리하게 시선유도봉을 넘어 좌회전 혹은 유턴 차선 쪽으로 이동했는지 의문이 컸다.
사실 이런 건 고용노동부에 소속된 근로감독관이 조사해서 알아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남편 사건을 아예 조사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이런 지침을 정했다.
이런 지침은 지켜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사업장 외 교통사고 건을 조사한 재해조사 보고서는 단 두 건 뿐이다. 정부가 이렇게 지침을 지키지 않는 동안, 같은 기간에 배달노동자 35명이 사망했다.
김정미 씨는 남편 사망 약 2개월 뒤인 2018년 8월 30일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청구'를 했다. 남편이 일하다 길에서 죽었으니 당연히 산재가 인정될 거라 생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같은 12월 26일 이런 답을 줬다.
공단 측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2항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애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는 걸 근거로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렸다.
남편이 왜 그때 그곳에서 1차선 방향으로 차선을 변경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교통법규를 어겼다는 점만 강조했다.
김 씨는 이런 공단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심사청구를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심사위)는 아래의 두 가지 이유를 들며 남편 주희재 씨가 좌회전 차선에 끼어든 이유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그럴 듯하게 정리된 두 근거. 하지만 이는 심사위가 라이더 노동을 잘 모르고, 사망한 주희재 씨에 대해선 더욱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지난 3월, 분당 정자동 일대에서 만난 여러 라이더는 심사위의 첫 번째 근거를 이렇게 반박했다.
7년째 분당에서 배달 일을 하는 박준성 라이더도 의견을 덧붙였다.
심사위의 두 번째 근거는 더 심각하다. 점심-저녁시간에 최대한 일하는 게 라이더인데, 그 시간에 밥을 먹겠다고 현장을 뜨는 배달노동자가 있기나 할까? 특히 주희재 씨의 상황을 알면 심사위의 판단이 얼마나 안이한지 알 수 있다.
주 씨는 자영업을 하다 실패해 2017년 8월 13일부터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사업 재기를 위해, 고교생 두 딸 등 네 가족을 위해 그는 하루 약 15시간 길에서 일했다. 믿기 어렵다고?
기자는 최근 주희재 씨의 통장 내역을 통해 그의 수입을 확인했다. 2018년 1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주 씨의 수입은 이렇다. 1월 570만 원, 2월 243만 원, 3월 600만 원, 4월 252만 원, 5월 650만 원. 사망한 20일까지 일한 6월엔 450만 원을 벌었다.
이 정도 벌기 위해선 하루에 배달을 50~60건 정도 소화해야 한다. 이렇게 일한 주희재 씨가 고작(?) 점심을 먹기 위해 정자동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은행동까지 갈 생각이나 했을까?
무엇보다 주희재 씨는 주소지인 은행동에 살지 않았다. 그는 출퇴근 시간을 아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정자동 지하 쪽방에서 살았다. 집에는 아주 가끔씩만 들렀다.
결국 심사위는 ‘배달 노동자 주희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가 교통법류 위반했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들은 이런 말과 함께 아내 김정미 씨의 심사청구기각을 결정했다.
아내 김 씨는 답답해서 가슴을 친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재심사를 청구했다. 재심사위의 법률 자문에 의견을 낸 세 변호사는 동일하게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문 변호사는 모두 산재를 인정했지만, 재심사위는 2019년 11월 21일 또 김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같은 이유였다.
김정미 씨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급여를 받겠다는 마음보다 남편이 일하다 죽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다. 김 씨는 법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또 기각. 법원도 정부처럼 남편 탓만 했다. 김 씨는 1년 6개월을 이어온 싸움을 스스로 접었다. 지난 3월, 성남 은행동 자택 근처에서 김 씨를 처음 만났다. 김 씨에게 "왜 항소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지친 표정을 지었다.
소송에서 진 김 씨는 근로복지공단을 대리했던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남편은 자영업을 하다 망했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하루 50~60번 음식을 배달했다. 그러다 거리에서 죽었다. 그 남편을 대신해 이젠 김 씨가 식당에서 국밥을 나른다.
김 씨가 일하는 식당은 남편이 사망한 현장에서 채 1k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김 씨도 남편처럼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다.
그럼에도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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