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세월호, 한익스프레스 등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들이 사회적 참사 독립 조사기구 설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다.
생명안전시민넷이 세월호 7주기를 앞두고 13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주최한 '재난 ·산재 참사 유가족 증언회'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의 고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워온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증언했다.
참사 이후 가족을 잃은 고통을 안고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닌 유가족들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직접 뛰어다녀야 했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인 전재영 대구지하철참사피해자대책위 사무국장은 "사고 당시 현장을 훼손하지 않겠다던 대구시의 말을 믿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지하철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물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놨었다"며 "이후 몇몇 가족이 야적장의 쓰레기를 뒤져 희생자 신체 14점과 140여점의 유류품을 발견해 현장훼손에 대한 책임을 물은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 국장은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수습 주체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되는데 대부분 참사가 일어나는 이유에는 지자체나 정부의 잘못이 있다"며 "사실상 가해자가 수습주체가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기 위한 일을 한다"고 비판했다.
2011년 춘천 봉사활동 인하대 학생 산사태 참사 유가족인 최영도 씨는 "산사태라고 하면 자연재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반드시 산사태가 나는 건 아니다"라며 "참사 전에도 두번의 산사태가 있던 곳에 민박집을 허가하고, 당일 산림청에서 산사태 경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춘천시, 군부대가 산사태 사고 현장 근처에 파놓은 방공포진지가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당시 춘천시의 책임을 묻기 위해 1인 시위와 선전전 등을 하고 국정감사도 열심히 준비했다"며 "오랫동안 싸우면서 가해자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로는 참사의 원인을 밝힐 수 없고 피해자가 직접 참사 원인을 조사하고 밝히고 알리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2019년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누나인 김도현 씨는 "사고 이후 가족들이 건설현장 근처에서 2주 동안 합숙하며 밤을 새가며 사고 현장 증거를 모았다"며 그 과정에서 쓰레기통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안전모를 찾은 일, 고인이 추락한 뒤 마실 나가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가던 현장 이사를 CCTV에서 본 일을 회상했다.
김 씨는 "저희가 찾아갔을 때 발주처의 한 직원은 ‘재수 업게 여기서 죽어 공사가 지연되게 해 돈만 더 들게 한다’는 둥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며 "노동부 경기지청과 수원 서부경찰서도 태규 사건을 (산재가 아닌) 실족사로 처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상시적이고 독립적인 사회적 참사 조사기구 설립해야"
‘참사 재발방지와 피재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상황과 개선 과제’를 발제한 오민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참사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고 참사 이후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 상황이 확인된다"며 "피해자들이 사고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안전을 모든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고 참사 피해자의 권리, 상시적인 독립적 참사 조사기구 설립 등을 담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이 법을 논의하고 제정하는 과정에서 참사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문제점이 극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특별하고 일회적인 한시적인 조사기구가 아닌 상시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며 "그런 조사기구가 참사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조사할 뿐 아니라 조사 결과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람이 나오면 처벌을 하거나 요구할 수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위원장은 이어 "유가족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춘천 봉사활동 인하대 학생 산사태 참사는 여전히 자연재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생각됐을 것"이라며 "피해자들이 상시적이고 독립적인 사회적 참사 조사기구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증언회에서는 이밖에 윤경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 유가족들이 참사 이후 고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워온 과정, 남은 과제에 대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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