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에 담긴 조선의 역사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연구해온 사학자가 이번에는 편지의 행간과 이면에 담겨 있는 인간의 감정에 주목했다.
전경목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고문헌전공)가 새로 펴낸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421쪽, 20,000원)은 조선시대 버전의 ‘전원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TV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대 이후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감정의 충돌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방송이 종영된 이후에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꾸준히 재방송되는 ‘전원일기’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그리운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신간인 ‘옛 편지로 읽는 조선사람의 감정’은 조선시대 향촌에 있던 한 가문과 외부의 여러 세력들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저자는 조선시대 부안의 우반동에 거주했던 ‘부안김씨’의 고문서 가운데 655점의 간찰에 주목했다. 지방의 양반인 부안김씨가 서울의 경화사족과 500여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에는 다양한 생활상이 가득 그려졌다.
여기에는 역사서에는 실리지 않은, 또는 실리지 못할 은밀한 이야기도 풍성하다.
일테면 아들의 첩(妾)을 중매해 달라는 관찰사의 내밀한 청탁이나 구중궁궐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층들에 대한 유언비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도망친 노비를 잡아달라는 부탁들이 장면마다 빼곡하다.
저자는 간찰을 읽으면서 욕망, 슬픔, 억울, 짜증, 공포, 불안, 뻔뻔함 등 감정과 관련된 일곱가지 키워드를 뽑아내 이로부터 조선시대 생활상을 밝히는 ‘사실’을 추려냈다.
다소 근엄하고 절제가 미덕이라고 알았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편지 속에 쏟아 놓은 천진난만할 정도로 솔직하거나 격정적으로 드러낸 감정 표현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눈길을 끈다.
저자인 전경목 교수는 “간찰에는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는 기록되지 않은 당시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매우 세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보고이자 소중한 자료”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일상생활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 정도의 단순한 호기심과 관련된 것들도 충분히 탐구 가치가 있다”면서 “간찰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이 조선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하도록 돕고 그런 편린들이 모여 한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좀 더 총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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