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años de coreanos en CUBA(쿠바 한인 100년) 축하공연"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
'까날쿠바'(CanalCuba, 채널 쿠바)라는 이름의 이 유튜브 채널에선 쿠바의 10대, 20대들이 나와 익숙한 K-POP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훤칠한 아이들이 BTS, ITZY, SuperM, BlackPink, 4MINUTE 등등 익숙한 그룹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도 한국어 가사에 반응하며 마치 한국인처럼 입모양을 들썩인다.
우리에게 멀고 생소한 나라지만, 쿠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정도로 지구상에서도 '별난 나라'. 그 곳의 아이들에게도 K-POP열풍은 여지없이 불어왔다. 과거에는 한국 드라마나 대중가요가 '매니악'한 취미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지금 쿠바의 10대, 20대들은 다르다. 쿠바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고, 미국의 제재로 인해 어쩔수 없이 전 세계와 단절된 나라이지만, 그들은 다른 세계의 아이들과 똑같이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다. 젊은 쿠바 친구들에게도 K-POP은 선풍적 인기다. 리듬과 춤이 일상인 나라, 살사와 룸바의 나라 쿠바에서도 세련된 이미지의 K-POP은 매력적인가 보다.
올해는 쿠바 한인 이주 100년이다. 100년이라는 특별한 숫자가 아득해 보이지만, 100년 전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대에 상륙했던 한인들은, 100년 후 한국 문화의 쿠바 상륙을 맞이할 줄 알았을까.
쿠바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 열악한 자본 환경에서 이 영상을 제작한 이는 쿠바에 거주하는 정호현(훌리아) 감독이다. 다큐 영화 <쿠바의 연인>을 연출했던 그답게 영상 촬영과 편집에서 베테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만 이렇게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K-POP 팀만 100팀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아바나뿐 아니라 쿠바 전역에서 K-POP을 즐기고 K-POP 경연대회가 열린다. 이들은 '축제'처럼 K-POP과 함께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교양 유튜브 채널'에 가까워보이는 까날쿠바 채널인데, 정 감독은 처음에 쿠바 친구들의 K-POP 커버 영상을 채널의 한 코너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춤추는 친구들에게 '잘 찍고 잘 편집한 영상'을 선물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추천을 받아 처음에 3팀의 친구들과 영상을 찍었다. 쿠바의 명소 탁 트인 말레콘에서 춤을 추니 느낌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말레콘에서 3팀과 함께 촬영을 했다. 그런데 곧바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면서 쿠바에 방역3단계가 적용돼 아바나가 봉쇄됐다. 그러나 K-POP에 열정적인 젊은 친구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내 촬영 장소를 섭외하러 다녔다. 마침 좋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까날쿠바에 업로드되는 영상 자체가 십시일반으로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은 사실 쿠바에서 먹기가 어렵다. 물자가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한국식으로 다듬은 식재료 자체가 없다. 이를테면 돈까스를 튀기려면 직접 빵을 부숴 빵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로 더 열악해진 환경에서 한국 음식까지 만들어 스테프들에게 대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까날쿠바'와 K-POP 팬들의 '호의'에 비하면 대수가 아니었다.
문제는 있었다. 특히 영상 업로드가 문제였다. 쿠바에서도 비대면 교육 때문에 아이들 수업이 인터넷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인터넷 환경은 매우 좋지 않다. 3분짜리 영상 하나 올리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유튜브를 보기도 쉽지 않다. 쿠바 사람들도 공원 등지에서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영상을 보는데, 공기처럼 인터넷이 깔린 한국과 비교하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우리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영상에 등장해 춤을 추는 쿠바의 K-POP 팬들은, 왜 K-POP이 좋은 걸까. 궁금했다. 무엇이 그들을 K-POP에 빠지게 할까.
쿠바 한인 이주 10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영상으로 남기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지구의 국경선 쿠바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쿠바의 현재 코로나 확진자 수는(2일 기준) 7만6276명이고, 사망자 수는 425명이다. 사망률은 0.6%로 코로나 방역 모범국인 한국(1.7%)보다 낮다. 남북미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로 인식되지만, 남북미를 통틀어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나라들(도시국가 수준의 인구 소국 제외) 중 하나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한 고립은, 코로나라는 외생변수로 더 심각해졌다. 1년에 1만 명에 달하던 한국인 관광객도 코로나 여파로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삶이 이어진다. 당연하게도.
올해는 쿠바 한인 이주 100년 되는 해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트럼프는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을 거의 폐기하다시피 했다.) 분위기와 함께 한-쿠바 관계 100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소박하게나마 활기를 찾았을 터다.
1905년 5월 14일. 인천을 떠난 1033명의 한인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주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그들 중 300여 명의 한인은 1921년 3월 멕시코를 떠나 쿠바로 이주했다. "쿠바가 매우 잘 살아서 사탕수수를 자르는 노동자들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일한다고 했고, 물을 마시지 않고 대신 우유와 맥주를 마신다고도 했다"는 말에 혹해서 떠났으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한인들은 쿠바 아바나에서 2시간가량 거리인 마탄사스 등에 정착해 한인촌을 이루고 대한국인국민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한글 학교를 세웠다. 도서관을 만들고 한인 사회 소식을 공유하기 위한 간행물을 출판했다. 대한인국민회 한인들은 강령을 만들었다.
그들은 에네켄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을 아껴 아바나의 중국 은행을 통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보낸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 생소한 섬에서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살아가기 시작한 지 100년. 정호현 감독은 까날쿠바로 한국인들, 그리고 쿠바인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원래는 K-POP은 물론이고 쿠바에서 사는 이야기, 훌리아가 만난 사람, 쿠바 한인 이주의 역사 등을 다루고 싶었다. 까날쿠바 채널에는 정 감독이 직접 만든 쿠바 한인 이주 100년 역사 관련 영상도 있다. 정 감독은 "지금은 100년 한인들이 삶을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좀 더 조명해 보고 싶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하기 힘드니까. 그리고 지금 80대이신 어르신 분들 다들 돌아가시면 못하니까, 거기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쿠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쿠바의 성소수자 문제, 쿠바의 영화 문제다. '까날쿠바에 들어가면 쿠바의 이런저런 소식이 있더라. 내용이 들쑥날쑥해도 재미는 있네. 볼 만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채널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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