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림 앞에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림 속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숱한 얼굴들이 쌓였다. 영정으로 지어진 빌딩. 두 사람의 남편 얼굴도 거기에 있었다.
한 맺힌 12년 세월이 밀려왔다. 용산에서 장사를 시작하며 설레던 순간부터 철거민으로 설움 받던 나날, 참사가 터지던 끔찍한 순간과 가족의 시신을 냉동고에 넣어두고 견뎌야 했던 거리의 생활...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 감당해야 했던 이미 산산히 부서진 일상까지... 힘들어 잊고 싶다가도 잊을 수 없어 가슴 쥐고 울며 견딘 세월이었다.
12년의 세월은 길었지만 무엇이 바뀌었나 싶다. 당시의 시장은 희생자를 탓하며 다시 고통을 주고 있고, 그는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공공연히 빠른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1일 용산참사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을 규탄했다. 오 후보는 참사를 희생자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다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1일 사과했다. 유가족들은 "진심이 아니다. 진심이면 우리 앞에 와서 직접 사과하라"고 일축했다. 이날의 풍경을 담았다.
▲ 1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오세훈 후보의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 후보는 하루 전인 3월 31일 관훈클럽에서 "이 사고는 과도한 그리고 부주의한 폭력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력 투입으로부터 생겼던 사건"이라고 발언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희생자 탓' 발언 하루 만에 사과한 오세훈 시장에게 가족들은 "진심이 아니다. 진심이면 우리 앞에 와서 직접 사과하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1일 개관한 용산도시기억전시관에 용산참사의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참사 당시의 사진을 보고 있는 전재숙 씨. 남편 이상림 씨는 망루에 올랐다 목숨을 잃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참사 때 망루에 올랐던 이충연 씨. 망루에 오른 것은 '말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헐값 보상에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강제 철거로 일관된 당시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망루에 올라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영정으로 세운 빌딩. 용산참사는 농성과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단순 사고가 아니다. 탐욕스런 자본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개발 강행과 이를 두둔하고 호위한 국가와 공권력이 빚어낸 비극이다. 아무런 문제 의식 없는 오세훈 후보가 10년 만에 다시 시장직에 오른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오세훈 후보는 '당선되면 일주일 안에 시동을 걸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많다며 개발 속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2010년 1월 용산참사 희생자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시신은 1년간 냉동고에 있어야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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