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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알기] 불초(不肖)와 빈승(貧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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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알기] 불초(不肖)와 빈승(貧僧)

오랜만에 한자놀이나 해야겠다. 우리말에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명사는 80% 정도나 된다. 요즘은 외래어가 많아서 조금 낮아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한자어가 우리 말에 끼친 영향은 크다. 과거 태능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침마다 교사들을 모아놓고 조회라는 것을 했다. 필자는 학생부에 근무하는 터라 본 교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침마다 불만이 많았다. 맨날 같은 얘기만 하면서 굳이 왜 조회를 해서 교사들을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루는 연구부장이 발표할 시간인데 갑자기 “불초 소생이 보기에는 ……”이라고 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순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몇몇 나이 드신 분들도 나를 따라 웃었는데, 다른 젊은 교사들은 무슨 일인지, 왜 웃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불초(不肖)라는 단어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하는 말”이다. ‘아니 불(不)에 닮을 초(肖)’ 자를 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하는데, 아버지를 닮지 못해서 불효하다는 뜻이다. 즉 아버지를 본받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며, 아버지에게 자신을 낮추어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연구부장은 나이가 지긋하고, 필자는 당시 20대 중반이었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30대 정도였는데, 이들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래서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 버렸고, 나이 드신 원로 교사들은 그 의미를 알고 함께 웃어 주었다.

이 말은 원래 <맹자(孟子)> ‘만장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고대의 성인이었던 요임금이나 순임금, 그리고 우임금 등은 자신의 자식들이 부족한 것을 알고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나와 있는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요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임금의 아들 또한 불초하다. 순임금이 요임금은 도운 것과 우임금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 되었고, 요임금과 순임금은 오래도록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었다.)”(장진한, <신문 속 언어지식> 재인용)고 하였다. 여기서 단주는 요임금의 아들이고, 순임금의 아들은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버지만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뜻을 불초(不肖 : 아버지를 닮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요즘은 젊은이가 어른을 닮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쓰는 것도 가끔 보기는 하였지만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이에게 하는 말은 더욱 아니다. 늙은(?) 연구부장이 젊은 교사들에게 “불초 소생이……”라고 시작한 것은 아마도 웃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딱딱한 교무회의에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말하자고 한 것인데,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욱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비슷한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스님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빈승(貧僧)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 표현에서도 가난한 사람을 표현할 때 ‘as poor as church mouse’라고 한다. 가난해서 먹을 것도 없는 곳이 교회인데, 그곳에 사는 쥐는 얼마나 불쌍한 동물일까? 요즘은 교회가 대형교회가 많아서 남 주기는 아까워서 아들에게 세습하는 곳도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습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릇은 작은데 바닷물을 담으려고 하는 곳이 있어서 탈이다. 불초(不肖)하면 그 그릇에 맞는 곳을 찾아야 한다. 스님도 마찬가지로 탁발을 하면서 지내다 보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죽하면 “가을 중 쏘다니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는 가을철에 부지런히 탁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스님이 자신을 칭할 때 ‘빈승(貧僧 : 가난한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빈승이 스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가끔 <삼국유사>에서 1인칭으로 ‘빈승’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책을 쓴 분이 ‘일연스님’이기 때문이다. 스님이 습관적으로 1인칭으로 ‘빈승’을 썼다고 해서 그 인물이 반드시 스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문장을 보면 “빈승화랑지도 단지향가불한범패(貧僧花郞之徒 但知鄕歌不閑梵唄 : 저(빈승)는 화랑의 무리인지라 다만 향가만 알 뿐이요, 범패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불초(不肖)나 빈승(貧僧)이나 1인칭으로 쓰이는 것은 같은데, 사용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생활할 때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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