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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전쟁범죄 폭로 아시안계 작가의 자살과 '램지어 파문'의 연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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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전쟁범죄 폭로 아시안계 작가의 자살과 '램지어 파문'의 연관성은?

[워싱턴 주간 브리핑] '램지어 파문'이 드러낸 현실과 좌표 ②

긴 글이라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결론부터 밝힌다.'램지어 파문'에 대한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이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마크 램지어 교수가 최근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 계약에 기반한 매춘부"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태평양전쟁에서의 성 계약')을 발표해 큰 논란이 일었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그의 논문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램지어 파문'은 미국 학계의 문제다. 사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램지어 파문'에 분노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냉정한 현실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램지어 파문' 자체가 드러낸 문제에 대한 앞의 글에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고자 한다. 필자주

'램지어 파문'이 드러낸 현실과 좌표 ① 하버드대는 "10세 아동 자발적 성매매" 논문을 감쌀 것인가?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은 왜 자살했나

하버드대 교내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은 22일(현지시간) 하버드대 기관 차원에서 램지어 논문에 대한 비판 성명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 라이셔 일본학연구소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램지어 교수의 최근 출판물은 하버드대의 일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학문의 실증적인 근거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램지어도 소속돼 있다.

연구소는 램지어 논문에 대한 학술성명, 반박문, 언론매체 기고문 등을 소개하면서 이런 입장을 밝혔고 "학술지(램지어 논문을 실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 편집자들에게 미국과 국외 학자들이 제기한 우려 사항을 충분히 다뤄야 한다는 요구를 재확인한다"고 촉구했다.

연구소는 특히 "어떠한 형태의 증오 발언, 괴롭힘, 협박도 명백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에 램지어 논문을 비판한 외부학자들에 대한 일본 극우들의 협박 메일 등을 지적한 것이다. 램지어도 자신이 증오 발언을 담은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와 에이미 스탠리 노스웨스턴대 교수 등 램지어 논문을 비판한 일부 학자들도 협박 메일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지적은 20여년 전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리스 장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리스 장은 199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난징대학살'을 주제로 한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을 쓴 중국계 미국인 작가다. 이 책은 30만 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난징대학살에 대해 '잊혀진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라고 고발했다.

난징에서 일본군의 범죄를 고발한 최초의 영어 책인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아이리스는 미국 사회에서 난징대학살을 고발하는 대변인이자 일본정부가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그는 1999년 당시 영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리스 장이 쓴 <난징의 강간> 표지

아이리스는 2004년 차를 몰고 외진 도로로 가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당시 그녀는 36세에 불과했고, 남편과 두살 난 아이가 있었다. 의사들은 조울증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부모와 친구들은 그녀가 자살한 진짜 '이유'에 대해 두 권의 책을 통해 폭로했다. 아이리스의 친구이자 동료 언론인인 폴라 카멘은 2007년 <아이리스 장을 찾아서 : 우정, 야망, 그리고 비범했던 마음의 상실>이라는 책에서 아이리스가 자신의 책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논란으로 인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어 했는지 증언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잉잉 장은 2011년 딸에 대한 자서전 <잊을 수 없는 여인 : 난징의 간강 이전과 이후의 아이리스 장>을 썼다. 은퇴한 생화학 교수인 잉잉은 이 책을 통해 아이리스의 자살이 일본 극우세력들의 집요한 협박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이리스는 책 출간 이후 일본 극우들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아이리스의 부모는 누구보다 총명하고 정의심이 강했던 딸이 편집증과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쇠약해진 이유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위협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을 주도하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가 일본 극우세력의 집요하고 끈질긴 괴롭힘 끝에 자살한 것은 미국에서 일본 극우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며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램지어 파문'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극우언론 <산케이 신문>의 그림자는 예사롭지 않다. 램지어 교수는 미쓰비시가 1970년대부터 하버드대에 거액의 기부금을 준 대가로 만들어진 '미쓰비시 일본법학 교수'이며, <산케이 신문>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처음 보도한 언론이다.

미국과 일본 > 미국과 한국 > 한국과 일본

아이리스 장이 폭로했던 '난징대학살'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독일 나치의 끔찍한 전쟁범죄인 홀로코스트에 비유된다.

만약 미국 학술지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내용의 논문에 게재될 수 있었을까? 이 논문을 발표한 교수를 소속 대학 총장은 "학문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옹호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해당 논문이 학술지 심사의 문턱을 넘을 리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이런 논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는 당장 학계에서 매장 당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식의 차이는 일차적으로 가해국인 독일과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전쟁범죄에 대한 인정, 공식 사과, 책임자 처벌 등이 선명하게 진행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국주의와 전쟁 당시의 폭력, 강탈, 강제노동, 강간, 학살 등 온갖 범죄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집권세력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역사적 연원을 따져보면 미국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선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핵폭탄 투하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첫 번째 핵폭탄을, 그로부터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을 떨어뜨렸고, 일본은 그해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과연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탄 투하가 불가피한 일이었는지 논란이 제기된다.

핵폭탄을 투하하기 전에도 이미 일본은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에 의해 크게 몰리면서 오키나와 전투에서까지 패배해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히로시마에서만 폭탄 투하로 거주 인구의 절반이 넘는 14만 명이 사망했고,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두 번의 핵폭탄 투하로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따져 묻기는 어렵게 됐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가해와 피해의 역사, 또 당시의 냉전질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미국이 일본의 전후 보상을 중재하는 과정에도 작용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국인 중국과 한국은 제외된 채 나머지 피해국 48개국이 참여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이 평화조약 체결의 진짜 목적은 미국이 일본과 서둘러 공조체제를 짜기 위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자마자 미일안보조약이 조인됐다. 마이크 혼다 전 하원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2월 16일 하버드대 학생들이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지적했다.

"나는 미국 정부도 이 과제('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일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731부대와 위안부 문제는 왜 다뤄지지 않았나. 나는 바이든 정부가 이제라도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에서 소련-중국과 대항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 중요했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한국이 됐다. 한국은 해방 후 5년 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격인 한국전쟁을 치러야했으며 분단국가가 됐다. 폐허가 된 가운데 대한민국이 건국하는 과정에서 친일세력이 다시 득세를 했다. 이들이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생존 자체가 절체절명인 시대가 계속 이어지면서 일본 식민지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처벌과 보상은 뒤로 미뤄졌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1965년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맺고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으면서 전쟁범죄 피해자들이 사과를 받고 배상을 받는 개별 청구권은 포기했다. ('위안부' 문제는 1992년 김학순 할머니의 폭로로 처음 가시화됐기 때문에 논외로 해야 한다.) 중국이 마오쩌둥 정권 때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 부정과 왜곡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됐다.

2021년에도 여전히 엇갈리는 한국-일본-미국

안타까운 사실은 70여 년이 지난 2021년 현재도 미국의 동맹국가로서 한국과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과 정치적 DNA가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물러나고 인권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조 바이든 정권이 지난 1월 출범했다.

한국, 일본, 미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이에 기반한 개별 국가들의 국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과 경쟁에서 일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동맹국이다. 일본 정부도 70년 전에서 변한 게 없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전임인 아베 신조보다도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여기에 북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난제를 하나 더 떠안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봄날은 없다"며 한국과 미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바이든 정부에서 외교정책의 '키'를 쥐고 있다고 평가되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과 함께 지난 17-18일 한국을 방문했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었다. 한국에 앞서 이들은 일본을 방문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8일 KBS와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것을 포함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다"고 말했다. 앞서 국무부는 '램지어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심각한 여성인권 침해"라는 원칙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이 직접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다만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우리의 친한 친구이자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이 화해의 정신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력히 격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램지어 사태'에 대해서도 "그 논문을 알지 못한다"며 거리를 뒀다.

과거 오바마 정권 당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위안부'가 아니라 강제성이 드러나는 "성노예"라고 공식문서의 용어를 바꾸도록 지시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당시였던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또다시 피해자들이 배제된 정부간 협상에 그치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 측면도 있다.

'램지어 파문'을 계기로 각성된 학생들과 학자들..."'위안부' 문제는 가장 오래된 전쟁범죄 중 하나"

'램지어 파문'에 대해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을 통해 미국에서 '역사 왜곡'을 하려던 일본 극우의 '작전'은 역효과를 가져왔다. 덕분에 '위안부' 문제는 이 이슈가 다소 생소했던 미국내 경제학계나 법학계에서도 일본의 대표적인 전쟁범죄로 알려지게 됐다. 마이클 최 UCLA 교수가 시작한 램지어 논문에 대한 반대 성명에는 3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서명했다. 또 하버드 학부 학생회, 로스쿨 학생회 등에서도 램지어와 하버드대 측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혼다 의원은 임진왜란 당시 물살의 흐름을 알았기 때문에 단지 12척의 배로도 일본과 싸워서 이겼던 이순신 장군을 언급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은 이길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정의로운 목소리의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윤리 담당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학교 교수는 지난 16일 화상 세미나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대 일본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유일한 국가라는 지적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남자들이 특히 전쟁 때 여성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관한 것이다. 강간과 성폭력은 인류 문명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전쟁범죄 중 하나다. 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최근까지의 전쟁에서도 성폭행이 발생했다. 이 문제는 남성들이 여성을, 특히 남성들이 가장 공격적일 때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굉장히 광범위하고 오래된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가 일본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이용수 할머니가 최근 주장하고 나선 '위안부' 문제를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다루자는 문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 된다면 이는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전쟁 범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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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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