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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심한 당뇨발, 이렇게 치료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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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심한 당뇨발, 이렇게 치료하면 됩니다

[발로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진료일지] 협력의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 미리 알립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염증이 심한 발 사진이 나옵니다.

독자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겨울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요즘, 저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도, 가끔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날도 지역사회의 아픈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심한 당뇨발로 발가락 절단을 해야 할 위기에 있었던 어르신 한 분이 당뇨 조절이 되지 않아 왕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홀로 사시는 이 어르신은 지난해 염증이 심한 당뇨발로 입원 치료를 받다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 대학병원으로 보내졌고, 대학 병원에서도 절단을 해야 한다고 듣고, 평소 다니시던 민들레 의료사협으로 찾아와 어찌해야 하냐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제발 발가락만 안 잘르게 해 주세유~ 하라는 대로 다 할게유~."

"어르신, 그럼 매일 병원에 오실 수 있으세요? 그리고 담배도 끊으시고, 인슐린도 잘 맞으셔야 해요."

"그렇게 해서 발가락만 살린다면야 그렇게 해야쥬~."

저도 자신은 없었지만 어르신의 하소연에 못 이겨 일단 매일매일 치료를 하고 발 상태를 보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어르신이 치료에 잘 응해주시고, 담배도 끊으시면서 발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심한 발톱무좀으로 두꺼워진 발톱을 혼자 깎으시다가 상처가 더 생길까봐 병원에 오실 때 조금씩 발톱도 깎아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어쩐지 당뇨가 조절 되지가 않습니다. 약을 이리저리 조절해보고, 인슐린을 올려 봐도 혈당이 300이 넘어가고 발 상태도 더 이상 좋지 않습니다. 결국 치료가 잘되지 않는 원인을 찾으려면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발 치료도 해드리고 집에서 인슐린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지 직접 볼 겸 왕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 의학 드라마인 <하우스>에 보면 주인공인 닥터 하우스가 환자가 아픈 이유를 찾기 위해 몰래 집을 뒤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 오해하시지 마십시오. 물론 저는 몰래 뒤지지 않고 환자의 동의하에 집안 환경을 살펴봅니다만 왕진을 가면 볼 수 있는 단서들이 많습니다.

▲ 당시 발사진 ⓒ박지영

그날도 역시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집안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먼지뿐만 아니라 각종 음식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진득거렸습니다. 그러니 발 위생상태도 좋을 리가 없지요. 매일 주사해야 하는 인슐린은 어떻게 사용 중이신지 보여 달라고 하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리저리 찾으시더니 결국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인슐린 펜을 내미십니다. 원래 인슐린은 냉장 보관을 해야 하는데 보관도 제대로 못 하고 계신거죠. 게다가 인슐린 주사 시에 사용하는 주사침도 없습니다. 처방해드린 약들도 이곳저곳에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약들과 뒤섞여 있습니다.

"어르신, 어찌된 일이세요? 인슐린을 제대로 맞고 계신가요?"

"저기... 사실은 주사를 맞을래도 눈도 어둡고, 자꾸 깜박깜박해서 못 맞고 그려유~."

"약은 제대로 드시고 계세요?"

"약도 어떨 때는 먹고, 어떨 때는 못 먹고 그러네유~."

"집 청소는요? 발은 잘 씻고 계시나요?"

"혼자 사니 잘 안 하게 되네유~."

결국 이분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냥 약 처방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제대로 치우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매일매일 인슐린을 맞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민들레 의료사협에는 '주민참여건강증진센터' 줄여서 참센이라고 부르는 내부 조직이 있습니다.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의료와 돌봄을 중재하는 '케어 매니저' 역할도 합니다.

▲ 케어 매니저와의 카톡 ⓒ박지영

일단 병원으로 오시는 날은 병원에서 인슐린을 맞고, 병원에 나오지 않는 날은 집에서 맞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로 했습니다. 케어 매니저가 방문하여 유통기한 약물들은 다 회수하고, 약 달력에 약물을 정리하여 시간에 맞춰 드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스스로 인슐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슐린 주사 사용법을 크게 프린트해서 붙여드리고, 반복해서 교육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운동도 하시도록 했습니다.

▲ 집에서 관리를 위한 노력들 ⓒ박지영

▲ 집에서 관리를 위한 노력들 ⓒ박지영

▲ 집에서 관리를 위한 노력들 ⓒ박지영

이렇게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면 민들레 의료 사협을 비롯한 몇 군데 사회적 기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지급해 드리고, 그것으로 필요한 물품도 사고, 건강 활동도 추가로 하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절단할 뻔했던 발가락은 90% 이상 좋아졌고, 당뇨도 거의 정상까지 조절이 되어 현재는 인슐린 용량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제가 왕진을 가서 어르신의 실제 생활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케어 매니저와 협력을 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겠지요.

▲ 좋아진 발 ⓒ박지영

요즘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찌해야할지 몰라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처럼 답답했던 저의 마음에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왕진시범사업, 가정간호사와 작업치료사로 이루어진 민들레 방문진료팀, 돌봄을 연결하는 케어 매니저와의 협업으로 조금씩 숨통이 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협업이 민들레 의료 사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병원 의료진들 모두 이런 협력 관계를 이루어 일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박지영

끝으로, 지면을 빌어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언제든 발벗고 나서 주는 '민들레 주민참여건강증진센터'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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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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