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내리기 전 낙태 수술을 해 기소된 의사에 대해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헌재 판단을 근거로 낙태 시술에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 시술을 해 준 혐의(업무상촉탁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 씨에게 선고유예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무죄로 파기자판 했다고 12일 밝혔다. 파기자판은 상고심 재판부가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A 씨는 낙태죄 위헌 판결 전인 2013년, 당시 임신 5주 차였던 여성의 요청에 따라 낙태 시술을 해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미혼이었던 여성은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하자 '그동안 복용했던 술과 약물 탓에 기형아 출산이 우려된다'며 시술을 요청했다.
1심과 2심은 여성에게 낙태를 해야하는 건강상 이유가 있었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모자보건법상 임신이 여성의 생명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엔 '부득이한 임신중절'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1·2심은 여성의 상태가 그 정도로 위중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여성이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고 A 씨도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하지 않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심 판결이 이뤄진 2017년부터 3년이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됐다. 그 사이 2019년 4월 헌재는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에 위헌 결정을 한 것으로 그 조항은 소급해 효력을 잃는다"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같은 조항이 적용돼 공소가 제기된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낙태죄는 국회가 시한 내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현재 효력만 상실된 '입법 공백' 상태다. 형법상 범죄는 아니지만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안을 포함해 6건의 낙태죄 관련 대체 법안이 발의돼 있다. 여성계는 △임신중단 약물 허용 △임신중단 수술의 건강보험 급여화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체계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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