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정 씨는 2006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에서 일해왔다. 상담을 위해 건보와 관련한 시민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기도 하지만 전 씨의 소속은 건보공단이 아닌 민간 용역업체다. 입사 당시 건보공단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번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점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 하청업체는 네 번 바뀌었다.
김지연 씨(가명)는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상담사다.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시민의 문의에 답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공사가 아닌 민간 용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열차정보 등 사내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전화 중 시민으로부터 "서울교통공사 직원도 아닌데 말해서 뭐 하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 씨와 김 씨가 일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서울교통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상 기관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민간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다. 두 기관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27일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직영화를 요구했다.
건보공단 상담사 "민감한 개인정보 열람하는데 민간 용역업체 소속"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이날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들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건보공단의 무책임한 방치 속에 이 땅의 국민이자 건강보험의 필수 업무를 수행하는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의 부당한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며 "10년, 15년을 일해도 경력 인정은커녕 최저임금을 받으며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건보고객센터지부는 "우리는 최일선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건강보험 공단의 상담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살아가길 희망한다"며 "처우개선과 고객센터 직영화 등을 요구하며 2월 1일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보고객센터지부에 따르면,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한 명은 일 평균 120건 가량의 전화상담 업무를 수행한다. 용역업체가 제시한 상담시간인 2분 30초를 적용하면 5시간 정도 걸리는 업무지만, 복잡한 내용의 상담이 많아 실제 통화시간은 이보다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한다는 것이 상담사들의 설명이다. 한 상담사는 "건보료 납무마감일처럼 바쁜 날에는 시간외 근무수당도 없이 연장근무를 시키기도 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건보고객센터지부는 그간 건보공단의 콜센터 업무를 도급받은 10개 업체와 임금 등을 두고 교섭을 진행해왔지만 지난 15일 결렬됐다.
김숙영 건보고객센터지부장은 처우 개선과 관련해 "하청업체는 연간 600~700억 원의 이익을 챙겨가면서도 도급비 핑계를 대며 상담사 처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며 "원청인 공단에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시위도 했지만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영화 요구와 관련해 김 지부장은 "소득, 주소 등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열람하는 건보공단 상담사가 사기업인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괜찮다고 생각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냐"며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다른 4대 보험료 징수기관들은 이미 고객센터를 직영화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우리는 파업 돌입이 아닌 대화를 원한다"며 "건보공단 이사장은 리더로서 상담사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노조의 요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교통공사 상담사 "직접고용 전제로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 가동해야"
희망연대노조 서울교통공사고객센터지부도 이날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를 조속히 가동하고 민간위탁업체에 소속된 상담사를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
서울교통공사고객센터지부는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서울교통공사로 들어오는 다양한 민원을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응대하고 있다"며 "사고 발생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시민 등 민원인을 응대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직접고용 원칙을 제시한 '생명 안전 관련 업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고객센터지부는 "2020년 12월 10일에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등도 시정현안회의를 통해 '기관 직고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며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자회사 방식을 포함해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를 열겠다고 내부 소통망에 안내했고, 주요 간부가 '기관 직고용 반대, 기존 자회사로 전환 방침'이라고 밝히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교통공사고객센터지부는 "더 이상의 왜곡과 고객센터 구성원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며 "서울교통공사는 고객센터 직접운영을 원칙으로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를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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