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 대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양부모가 아이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거나 학대 조짐이 있는 경우 파양 등을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 발언 때문에 정치권·시민사회가 달아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입양 전제 가정위탁' 제도 강화 등 입양 절차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선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동을 바꾼다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입양을 취소" 등과 같은 표현은 입앙 아동이나 가정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정인이 사건' 관련 질문을 받은 문 대통령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행정부 차원의 대책을 먼저 설명한 이후, 이어서 입양 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야권에서는 날선 비난이 쏟아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너무 쉽게 말씀하신 것 같다"며 "어린이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부모가 바뀌고 하는 데 대해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여러 자료들이 많다. 그런 것 때문에 입양 과정에서 가정법원 허가도 받는 등 조건이 있는데, 무슨 어린아이들을 마음에 안 들면 돌려보내고 하는 그런 것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 중인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SNS에 올린 입장문에서 "대단히 심각한 실언"이라며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나 전 의원은 "입양아동을 마치 물건 취급하는 듯 한 대통령 발언은 너무나 끔찍하게 들렸다"며 "현실적으로 파양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라 쳐도, 그것을 대통령이 '개선책'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모독한 대통령"이라며 "아이가 무슨 쇼핑하듯 반품, 교환, 환불을 마음대로 하는 물건인가"라고 가세했다. 유 전 의원은 "대통령이 아동학대를 마치 입양의 문제인 것처럼 말할 때부터 이상했었다"며 "문제는 아동학대이지 입양이 아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사실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국민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아이들한테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반려동물에게조차 그렇게 하면 천벌 받는다"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은 아이와 부모가 천륜의 연을 맺는 것"이라며 "(그런데) 교환?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입양이 무슨 홈쇼핑이냐"고 했다.
금태섭 전 의원 역시 "인권의식이 의심스럽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나"라고 개탄했다. 그는 "실시간 기자회견인 만큼 말꼬리 잡기보다는 답변 내용의 맥락과 취지를 감안해서 평가해야 하지만 이 부분만은 도저히 넘어가기가 어렵다"며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렇게 볼 문제가 아니다. '아동을 바꾼다'라는 말까지 했으면 대통령이 국민들께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 전 의원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의를 살펴야 할 일이 아니다. 입양된 어린이들이 대통령의 저 발언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그 아이들도 대통령님의 진의를 살펴야 하나?"라며 "인권 문제가 아니고 입양 제도의 디테일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무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런 반인권적인 발언이 나왔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말씀 취지는 입양 활성화를 위해 입양제도를 보완하자는 것"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이날 오후 "현재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 하에 관례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전위탁보호 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의 말씀이다. 프랑스·영국·스웨덴에서는 법으로 사전위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린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위탁보호제는 바로 입양을 허가하는 게 아니라 입양 전 5~6개월간 사전위탁을 통해 아이와 예비 부모 간 친밀감, 양육 준비 정도를 수시로 지원·점검하는 것"이라며 "이 제도는 아이 입장에서 새 가정을 모니터링하는 것이고,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언급을 파양으로 오해한 보도가 있는데 아이를 파양시키는 게 전혀 아니다"라며 "제도적으로, 조만간 이와 관련한 입양특례법 발표도 있을 것이다. 그때 더 상세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고 재삼 해명했다. 그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취지가 와전됐다"며 "오해 소지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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