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흡입시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유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 전 대표와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천식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옥시·홈플러스·롯데마트 관계자에겐 유죄가 확정됐다.
반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제조·판매한 제품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다"면서도 "2년여간 심리한 결과 앞서 유죄가 선고된 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와는 유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각 실험을 실행한 교수와 전문가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CMIT·MIT 사용과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지 못했다"며 "일부 전문가는 '사람에게 이미 폐질환 등이 발생했다는 전제를 하고 CMIT·MIT 성분의 영향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동물 실험을 했지만, 뒷받침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모든 시험과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있는 환경부의 종합보고서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연구에 대해 추정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일종의 의견서에 그친다"며 "이 같은 추정에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향후 추가 연구 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 전 SK케미칼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2019년 5월 구속 기소됐다. 안 전 애경산업 대표는 같은 혐의로 같은 해 6월 불구속 기소됐다.
SK케미칼은 흡입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인 CMIT와 MIT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했고 애경산업은 이를 판매했다. 가습기메이트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사망자 12명과 부상자 87명을 초래해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난해 10월 기준 가습기메이트 제품에 대한 피해 신고자만 833명이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은 2016년 1차 가습기 살균제 수사 당시 CMIT·MIT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하지만 2018년 11월 피해자들의 고발로 시작된 2차 수사에서 8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홍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 전 애경산업 대표를 비롯한 기업 관계자와 환경부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 34명이 기소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무죄 판결 이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납득할 수 없는 사법부의 기만이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느냐"며 "해당 제품을 쓰고 죽은 피해자들, 지금까지 투병 중인 우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다는 것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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