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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기본소득, 보편적 기본소득(UBI)으로 나아가는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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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농민기본소득, 보편적 기본소득(UBI)으로 나아가는 마중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기고]

1. 보편적 기본소득과 범주형 기본소득

보편적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어떤 정책적 설계를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인가로 논의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충분한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의 도입은 기존의 세금을 올리건, 새로운 세목을 만들건, 공유지분권 개념을 도입하건 큰 규모의 재원을 모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구성원 다수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충분한 기본소득은 단지 재원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규모를 키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시스템의 원리와 사람 사이에 맺고 있는 관계의 변동을 포함하여 심대한 전환(transformation)의 과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

기본소득의 실현이 장기적인 전환의 과정이라면 그로 이행하는 중장기적인 설계가 필수적이다.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대화하는 과정도 물론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세상만큼 좋은 학습의 장은 없다. 실제 속에서 변화되는 세상을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함께 변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생각을 모아가는 그런 과정이야말로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전환기의 모습일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제의 도입 경로’를 짠다는 것은 단순히 정책 시간표를 짜는 것 이상의 의미를 띤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도입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작은 규모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시작해서 액수를 키워가는 방향 (‘충분성’ 유보) ② 연령계층별 기본소득에서 시작해서 연령대를 넓혀 나가는 방향 (‘보편성’ 유보) ③ 생애선택 기본소득에서 시작해서 수령 햇수를 늘려가는 방향. 다양한 기본소득 실현 방향에 대한 고민에 크게 공감한다.

여기서 세 번째 방향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 수령 시기를 개인이 선택하는 안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려와 기본소득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다수의 사람들은 ‘당장’ 수령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 경우 전 국민의 지급 요구가 정책 시행 초기에 몰리게 되어 실현 가능하지 않은 정책이 되어 버린다.

이 주장의 가장 극단적인 안은 ‘자율선택 기본소득’인데, △월 150만원씩 3년 △월 50만원씩 9년 △월 10만원씩 45년 등 3가지 중 자신에게 맞는 유형을 선택하는 안을 제시한다.(<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하승수, 2019). 이처럼 시기와 금액을 모두 탄력적으로 제시하게 될 경우, 45년을 기다려서 10만원을 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전 국민이 월 150만원 안을 선택한다면 그 해에만 재원이 900조가 필요하다. 즉 실행불가능한 안이다.

따라서 ‘충분한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 완전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으로는 ①과 ②만 유효하다. ‘부분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이라 불리는 ①의 방법으로는 일반 국민들의 공감대가 가장 넓은 토지보유세나 탄소세 등의 재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많이 얘기되고 있다. ②는 흔히 ‘범주형’ 기본소득(categorical basic income) 전략으로 지칭되고 있다. 하지만 과도기적으로 ‘보편성’을 유보한 범주형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올바른 전략인지, 범주형 기본소득 중에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발전 가능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기본소득 진영 내에 합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기본소득의 정의를 활용하여 ②번 전략은 ‘보편성’을 결여해서 틀렸다고 하고 ①번 전략은 “푼돈”이라서, 즉 ‘충분성’을 결여해서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정책은 유아 단계부터 성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내재적 논리를 어설프게 인용하기보다 그냥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두 개의 기본소득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소병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본소득법안의 제33조(기본소득의 우선실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본소득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때까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령별, 지역별 대상을 한정하여 우선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조정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본소득법안의 제17조(기본소득 예비시행)는 “위원회는 2023년 이전까지 재정 부족 등의 사유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제2조제1호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이하 “예비시행”이라 한다)할 수 있다. 1. 연령 2. 성별 3. 주거 4. 그 밖에 명확하고 단순하며 집행이 용이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두 법안이 제시하는 기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 조항에서 범주형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일치한다.

한국에서 범주형 기본소득의 시작은 2016년 성남시 청년배당이다. 이를 이어 경기도는 만 24세에게 1년간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을 2019년부터 시행 중이다. 그런데 역시 경기도가 2020년부터 시행하려고 했던 농민기본소득은 도의회의 반대에 직면하여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지원조례’가 상정되지 못하였다. 그후 경기도의회 해당 상임위인 농정해양위원회는 2021년 도내 4개 시군 농민 5만5천명(경기도 농업경영체 등록 농민 29만명의 19%)에게 농민기본소득 연 60만원을 지급할 176억 원(시군과 도가 50%씩 분담하는 계획에 따른 도비 부담액임)의 예산안을 의결하였다. 즉 조례가 통과되지 못한 상태에서 예산안이 편성된 것이다.

청년기본소득이 무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경기도에서 농민기본소득을 둘러싼 이견이 발생한 것은,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점에 대해서 주목하게 만든다. 경기도는 농민기본소득 외에도 ‘예술인 기본소득’, ‘플랫폼노동자 기본소득’ 등 여러 트랙의 기본소득을 논의 중인데, 과연 청년기본소득과 이 ‘기본소득’들과의 차이가 무엇일까? 청년기본소득은 연령별 기준에 따른 것이며 다른 것들은 직업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기도의 상황은 ‘연령 범주형’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가는 전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꽤 넓은 합의가 존재하지만, ‘직업 범주형’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지하기 때문에 범주형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집단부터 먼저 지급하고자 할 때는 왜 그들에게 먼저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 때 불가피하게 그 집단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리’의 관점보다 ‘열악함’을 강조하는 이런 현금 지급은 기본소득의 핵심을 흐려지게 해서 보편적 기본소득 실현의 날을 멀어지게 할 것이다.(“이럴 경우 권리로서의 복지,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의 원리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며, 기본소득 진영에서 그렇게 비판해 온 낙인 효과가 뒷문으로 들어오게 된다” 안효상, 2019, “불성실한 오용과 창조적 오독,” <기본소득> 3호).

둘째, 먼저 현금 지급의 수혜를 입은 집단이 그 다음 단계에서 이것을 다른 집단이나 전 사회구성원에게 확대하는 것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집단의 지급액을 키우려고 할 것인가? 즉 범주형 기본소득이 연대의 정신을 키우기보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키울까봐 우려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직업 범주형 기본소득에 특히 해당되는 얘기인데, 누가 그 직업에 속하는가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선별의 어려움과 수급자와 비수급자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인데, 이런 것은 모두 기본소득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넷째, 왜 우리 집단에 먼저 주지 않는가 하는 이전투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주형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그 실현을 저해한다.

이러한 우려는 진실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우려에 대해 진실된 답변을 해야 한다. 과연 범주형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농민기본소득은 그 마중물로서 적절한 범주형 기본소득인가? 농민기본소득은 오히려 보편적 기본소득을 저해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을까? 결국 농민기본소득은 직업별 ‘사회수당’의 하나일 뿐인가?

2. 보편적 기본소득의 마중물로서의 농민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도 위와 비슷한 언급이 눈에 띈다. 농민기본소득을 시행하면 “각종 직업군에서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요구해 올 것이며 모든 직업군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재정이 파탄 날 것이고 재정 부족을 이유로 거절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조례안’을 반대하는 경기도의회 원용희 의원의 주장. 2020.5.27.)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범주형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4번째 논리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이 주장은 ‘연령별’ 기본소득도 실제로는 그 연령이 아닌 사람들이 반발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시행 당시에 만 24세를 초과하여 그것을 받지 못한 ‘청년들’은 이 제도가 ‘형평성’이 없다고 느꼈다. 연 100만원은 월 8만원 남짓의 액수인데, 아마 액수가 더 컸다면 그 결핍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가령 18-30세 청년기본소득을 시행한다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31세, 32세는 이 제도가 못마땅할 것이다.

인구 집단 일부에게 지급하는 범주형 기본소득은 직업별이건, 연령별이건, 지역별이건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불만을 만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농민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액수로 지급하게 되면 다른 계층, 직업군에서도 유사한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하지만 이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범주형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이행기’의 모습인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의 시행에 자극받은 국민 각계각층의 기본소득 요구가 모아진다면 보편적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날이 앞당겨질 뿐이다.

결국 비수혜자의 반발을 범주형 기본소득 반대 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범주형 기본소득이란 결국 ‘누가 먼저’의 문제인데, 이때 관건은 그 집단이 먼저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있다. 그 타당성이 그 범주형 기본소득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며 보편적 기본소득을 향한 ‘관문’(gateway)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전 국민적, 보편적 설득력이라고 본다. 나를 제외하고 지급되는 그 범주형 기본소득에 불만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지만, 최소한 그들이 나보다 ‘먼저’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 그럴만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구석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범주형 기본소득의 첫 번째 반대논리처럼, 그들이 나보다 더 빈곤하다는 증명이어서는 곤란하다. 어떤 범주형 기본소득이 그런 방식으로 설득된다면 그것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또 다른 저소득층 선별 복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농민기본소득의 보편적 설득력은 농업, 농촌이 가지는 보편적 지위에서 나온다. 첫째, 농업은 식량의 기지이자 생명창고다. 농업이 소멸하면 공동체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이 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둘째, 농업, 농촌은 식량의 안정적 공급 외에도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의 보전, 수자원의 형성과 함양, 토양유실 및 홍수의 방지, 생태계의 보전, 농촌사회의 전통과 문화의 보존 등 많은 다원적,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3조 9항.) 셋째, 농민기본소득이 실현되면 과밀 집중된 도시로부터 농촌으로의 자연스러운 인구흐름이 만들어져 도시의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이 귀농•귀촌을 유도할 수 있다면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넷째,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은 그 자체로 탄소배출과 싸우는 ‘탈(脫)탄소 전사’이다.

이런 이유에서 농민기본소득을 단순히 하나의 ‘직업군’에 대한 소득지원책으로만 보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농민기본소득은 플랫폼노동자기본소득 등과 구별된다. 범주형 기본소득이 ‘권리의 관점보다 열악함을 강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최소한 농민기본소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운동의 주체 스스로 ‘권리’의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농민기본소득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또한 범주형 기본소득이 ‘연대의 정신을 키우기보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키우지 않을까’의 우려도 적절치 않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농민만 주자는 것이 아니라 농민부터 주기 시작하자는 것”이며 전국운동본부는 “장차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농민기본소득 운동은 보편적 기본소득 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이론적으로 받고 있는 마지막 도전은 이것이 ‘조건적’인 현금 지급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5대 원칙에서 무조건성이란 ‘소득조건’ ‘지출조건’ ‘행위조건’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데.(<기본소득> pp.22-23 가이 스탠딩, 창비). 농민기본소득은 농업활동에 종사해야 한다는 ‘행위조건’ 달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업‘참여’소득이라고 해야 옳다는 논리이다.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은 앳킨슨(Atkinson, Anthony Barnes)이 1996년에 처음 주장(<A Defence of Participation Income> Political Quarterly 67)한 것으로 유급노동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기여활동을 ‘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이다.

농민기본소득은 참여소득인가? 무조건성을 일정 정도 양보하고 있으니 이론적으로 참여소득이 맞다.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기본소득이라 해도 맞다. 왜냐? 지금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실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모든 기본소득 운동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로마’로 이어지는 수많은 길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의 원칙을 구현하고 있다면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집중하여 보편적 기본소득의 큰 강으로 모여들게 해야 한다. 이것은 1차 ‘재난지원금’이 비록 1회성에 그치고 있어 정기성의 원칙은 구현하고 있지 못하지만, 보편성과 무조건성, 개별성의 원칙을 지키고 있음을 강조하여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불렀던 정신과 일치한다. 이것을 나는 ‘기본소득 운동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서 농민기본소득 운동이 기본소득 운동에서 가지는 특별한 지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실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운동으로서의 기본소득’이라는 점이다. 2009년 창립 이래 꾸준히 학술운동과 시민운동을 전개하면서 기본소득의 지평을 확대해 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에 이어,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전국적으로 지지자를 규합하면서 기본소득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자랑스러운 ‘기본소득 운동’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위로부터 시행하는 기본소득 ‘정책’도 의미가 크지만 대중적인 기본소득 ‘운동’은 더욱 소중하다. 농민기본소득운동은 농민기본소득의 기관차요 보편적 기본소득의 견인차이다.

마지막으로 농민기본소득의 참여소득적 성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동수당이나 청년기본소득, 기초연금과 같은 ‘연령별’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그 속에 편입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실현된 이후에도 농업참여소득(명칭은 ‘농업유지금’ ‘농민정주금’ ‘농민월급’ 등 다양한 작명이 가능하다)의 형태로 존속할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시행 이후에도 농업, 농촌이 가지는 공익적, 전국적, 지구적 가치와 도시와 농촌의 격차 등으로 농업참여소득은 충분히 정당성을 갖는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농민기본소득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p.11 “장차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농민에게는 ‘보편적 기본소득 + α’를 지급하는 것이 옳다”) 이때 농업참여소득은 더욱 친환경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론] 농민기본소득과 농민수당, 공익형직불제의 관계

농민에 대한 현금 지급(cash transfer)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중앙 차원의 ‘공익형직불금’과 지자체 차원의 ‘농민수당’이 시행되고 있다. 보론으로 왜 농민수당이나 공익형직불금이 아니라 농민기본소득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어 보자. 일단 농민기본소득과 농민수당, 그리고 공익형직불제 중 하나인 소농직불금을 비교해 보자.

1) 관점: 한마디로 농민수당과 농민기본소득의 기본적인 관점은 다르지 않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곧 농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이고, 현금 지급은 결과적으로 농민, 특히 소농의 소득안정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므로 둘은 소농직불금과도 연결된다. (소농직불금은 공익형직불제의 한 귀퉁이에 ‘인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의 취지를 수용한 것이므로 당연히 유사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농민수당과 농민기본소득의 관점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농민수당을 이끌어 온 전농의 홈페이지에 있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 강광석 전 전농 정책위원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농민수당 쟁취로 농민기본권 보장받자!”

4. 농민수당이란?

- 농업 가치 인정과 국가 보상 의무화

- 중•소농 육성과 마을 공동체 복원

- FTA, WTO로 희생된 농민에 대한 보상

- 도농간 농민 간의 소득격차 완화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농민기본권을 보장받고 소득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2) 수령자: 농민수당은 지자체의 예산 현실을 감안하여 ‘가구’당 지급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지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을 중심으로 농민 개인별 지급 요구가 분명하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도 같은 입장이다. ‘농민기본소득’을 준비하고 있는 경기도는 농민 개인별 지급을 계획하고 있고, 2022년 1월에 시행 예정인 제주도 농민수당은 농민 1인당 월 10만원 지급으로 확정되었다. 기본소득의 ‘개별성’ 원칙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3) 재원과 예산: 소농직불금은 중앙정부 예산, 농민수당은 지자체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도 중앙정부 예산을 주장하고 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을 5%로 끌어 올리면, 모든 농민 개인에게 월 30만원 기본소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본부는 “농업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로 본다면 기획재정부 예산이나 별도의 특별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오히려 옳을 수”(<농민기본소득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p.14.) 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재원의 문제는 예산의 교통정리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4) 세 가지 제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농민기본소득이 농민수당이나 소농직불금과 가장 의미 있게 다른 점을 들라면, 그것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발전하려는 목표와 동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다. 왜 ‘농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데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인가? 1998년 Korpi & Palme의 ‘재분배의 역설’에 의해서 입증되었듯이 특정 인구집단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인구집단에만 집중되는 현금지급 정책은 전체 재분배의 규모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두의 ‘소득바닥’을 높여주기 때문에 농민에게도 큰 보탬이 된다.

5) 세 가지 제도를 어떻게 교통정리할 것인가? 일단 현장으로부터 ‘농민수당 조례제정 운동’으로 축적되어 온 농민, 농촌의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 그 동력을 모아 단결된 농민기본소득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최근에 강원도 의회를 통과한 농민수당 조례가 예산 부족 등의 사유로 지급이 2021년으로 넘어간 일이 있다.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농민수당을 키울 수없고, 농민기본소득 운동으로 발전시키면서 중앙정부의 재원을 요구해야 한다. 농민수당을 지자체 차원에서 횡적으로 확대하는 것보다는 중앙정부 차원의 ‘농민기본소득 입법’으로 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시점에 현재의 공익형직불제도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소농직불금’은 농민기본소득 속에 흡수통합하고 애초에 ‘하후상박’(下厚上薄) 설계에서 크게 후퇴한 ‘면적직불금’은 재검토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임을 자각하며 친환경 등의 ‘선택형 공익직불’의 규모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

6) 앞서 언급했듯이 농민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발전한다면 농민기본소득은 농업참여소득으로 계승발전하게 된다. 농업참여소득이 만약에 지자체 재원으로 진행된다면 농민기본소득 운동의 동력으로 기능했던 농민수당이 다시 분립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도시하면 [표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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