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시 일차적으로 과반수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고 소수노조와의 교섭 여부는 회사가 정하게 하는 제도다.
제도가 이와 같다면, 회사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소수노조와 교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의사 표시로 해당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 속 가정이 아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돌아보면, 삼성, 유성기업 등에서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해왔다. 소수·미조직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해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회사 입맛에 따라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9월부터는 헌법재판소 앞 1인 시위도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민주노조'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민주노총의 법률적 검토 및 주장,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싣는다.
복수노조 체제에서 과반수노조가 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창구단일화절차에서 여러 노동조합이 기한 내에 어떤 노동조합을 교섭대표노조로 할지 합의하지 못하고 사용자가 개별교섭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과반수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된다. 교섭대표노조는 사실상 회사와 독점적·배타적으로 교섭하고 합의할 수 있다. '공정대표의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허울뿐이다. 대법원은 교섭대표노조가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시 소수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하더라도 이를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 교섭대표노조는 교섭시작부터 합의에 이르기까지 소수노조의 의견을 적당히 '듣는 척'만 하면 된다. 교섭대표노조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쟁의행위도 마음대로 못한다. 창구단일화는 한마디로 승자독식 제도다.
대표적인 승자독식제도로는 선거가 있다. 대선, 총선과 같은 공직선거나 노동조합 대표자 선거 등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선거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당선되면 임기 내 그 직책에 부여된 독점적 권한을 누리게 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선거제도의 공정성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여러 형태로 후보자들의 불공정한 경쟁을 금지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직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 수시로 경고하고, 중한 경우 고발조치를 한다. 수사기관은 짧은 공소시효(6개월) 내에 압수수색 등 강제력을 동원하여 신속하게 위법행위를 수사한다. 만약 정부가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무원, 납품업체 등 관계자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그를 위하여 선거운동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복잡한 선거법 조항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될 것이다.
'민주노조' 결성하자 급격히 늘어난 기존 노조 조합원
반면, 창구단일화의 현장은 노골적으로 편파적이다. 창구단일화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는 과반수노조 결정일이다. 그 날까지 과반 조합원을 확보하면 과반수노조가 된다. 과반수노조 결정일은 노조법 시행령에 따라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일이다.노동조합이 2021년 1월 8일 사용자에게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하였다고 가정해보자. 사용자는 교섭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7일간(2021년 1월 8일 ~ 1월 15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일은 공고기간이 끝난 다음 날인 2021년 1월 16일이 된다. 과반수노조가 되기 위한, 혹은 특정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기 위한 온갖 행위들이 이 기간에 집중된다. 어떠한 불법과 부정행위가 있더라도 노조법은 개입하지 않거나 먼 훗날에야 비로소 개입한다.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할 사용자는 보란 듯이 특정 노조의 편을 들고 각종 편의를 봐준다. 시작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는 아래 사례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업을 영위하는 H회사에는 금속노조 지회와 기업노조가 있다. 2012년 이전에는 금속노조 지회만 존재하다가 2012년 기업노조가 설립되어 복수노조가 되었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기업노조가 교섭대표노조였으며, 생산직만 조합원이었다. 그러다가 2019년 사무직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지회가 새로 설립되었고, 2020년 창구단일화절차에서는 금속노조가 과반수노조가 되는 것이 매우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과반수노조 결정일(2020년 1월 16일)로부터 3일 전인 2020년 1월 13일부터 사무직들이 기업노조에 대거 가입을 시작하여 결정일까지 총 121명이 기업노조에 추가 가입했다. 이들은 주로 경영지원팀, 홍보팀, 기획관리팀, 예산팀, 회계팀 등 주요 관리부서들 소속이었고, 임원 비서까지도 기업노조에 가입했다. 그리하여 결정일 현재 금속노조 조합원 316명, 기업노조 조합원 323명의 단 7명 차이로 기업노조가 과반수노조가 되었다.
더 심한 사례도 있다. 철강업을 영위하는 P회사에는 역시 금속노조 지회와 기업노조가 있다. 기업노조는 1988년 설립되었는데 조합원은 한때 1만 8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1년 안기부 개입 공작사건과 회사의 압박으로 인한 대규모의 조합원 탈퇴 이후 거의 서류상으로만 유지되어 왔다. 2018년 8월 말경의 조합원 수는 단 9명에 불과했고, 일상적인 노조활동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2018년 9월 초까지 비공개로 활동해오던 금속노조 지회(준비위원회)가 공개적으로 조합원 모집을 시작하고 기자회견 등 노조의 존재를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자, 기업노조의 조합원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금속노조는 2018년 10월 19일 사용자에게 교섭요구 공문을 발송하여 과반수노조 결정일은 2018년 10월 27일이었는데,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려 6000명이 넘는 인원이 기업노조에 새롭게 가입했다. 그 중 1000명 이상은 부공장장, 리더, 부리더, 파트장 등의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금속노조 약 3300명, 기업노조 약 6400명으로 기업노조가 과반수노조가 되었다.
실질적 요건 따지지 못하고 숫자로 과반수노조 결정하는 노동위원회
과반수노조 결정에 대한 이의가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이를 담당한다. 노동위원회는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모든 노조와 사용자에게 이의신청을 받았음을 통지하고, 조합원 명부 등 서류를 제출하게 하거나 출석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 수에 대하여 조사·확인하여야 한다(노조법 시행령 제14조의7 제4항 참조). 노동위원회는 조사·확인한 결과 과반수노조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 이의 신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그 과반수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결정하여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모든 노조와 사용자에게 통지하여야 하는데, 그 기간 이내에 조합원 수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한 차례에 한정하여 10일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노조법 시행령 제14조의7 제7항 참조). 즉 최대 20일 내에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수사기관과 달리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있는 자료만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 H회사 사건에서도, P회사 사건에서도 금속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양 사건 모두 기각되었다. H회사 사건에서 금속노조는 회사의 개입으로 과반수노조 결정일 직전에 사무직 근로자 다수가 기업노조에 가입하였고, 위 인원들은 대부분 노조법상 노조 가입이 제한되는 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회사의 지배개입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는 별도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 다른 방법을 통하여 다투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금속노조가 기업노조에 추가 가입한 인원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구체적인 입증자료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이익대표자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P회사 사건에서 금속노조는 기업노조 조합원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은 P회사의 조직적인 지배·개입의 결과이므로, 기업노조는 주체성과 자주성을 상실하여 노조법상 적법한 노조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과반수노조 이의신청 사건은 노동조합 및 사용자가 제출하는 서류에 근거하여 각 노조 조합원 수를 확정하도록 하는 등 신속·간소한 처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금속노조의 주장은 부당노동행위 구제절차나 소송절차를 통해서 다툴 내용이므로, 기업노조가 노조법상 노조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주성과 독립성이 결여된 것이 명백하다고 보지 않았다. 더구나 금속노조가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주장하는 기업노조 조합원 수를 빼더라도 기업노조 조합원이 더 많기 때문에 기업노조를 과반수노조로 확정하였다.
사용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데 노동위가 관리도 못하는 교섭창구단일화, 폐기해야
법률상 처리기한(최대 20일)을 감안하면 과반수노조 이의신청 사건에서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노동조합의 실질적 요건까지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형사고소,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 등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린다. 특정 인원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도 실질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 기간 동안 소수노조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조합원들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조직은 와해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과반수노조가 되기 위해, 또는 특정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승자독식 제도에서 중립을 지켜야할 자(사용자)가 노골적으로 개입한다면, 심판을 봐야 할 자(노동위원회)가 판 자체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그리하여 당사자들이 승복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제도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