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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노조와 교섭 여부를 왜 사장이 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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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노조와 교섭 여부를 왜 사장이 정하나

[복수노조 제도 10년 ⑧] 김두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2011년 7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시 일차적으로 과반수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고 소수노조와의 교섭 여부는 회사가 정하게 하는 제도다.

제도가 이와 같다면, 회사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소수노조와 교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의사 표시로 해당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 속 가정이 아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돌아보면, 삼성, 유성기업 등에서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해왔다. 소수·미조직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해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회사 입맛에 따라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9월부터는 헌법재판소 앞 1인 시위도 매일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민주노조'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민주노총의 법률적 검토 및 주장,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싣는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개정 노조법이 2010년 1월 1일 당시 이명박정부와 여당의 강행처리로 통과된 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는 교섭창구단일화를 통한 교섭대표노동조합만이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 있게 되었다(노조법 제29조의2 제1항 본문). 하지만 예외적으로 단서를 통해 사용자가 개별교섭에 동의한 경우에는 소수노동조합도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복수노조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규정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소수노조도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니 좋은 취지로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서 개별교섭은 특정한 경우에 일률적으로 실시하게 되어 있지 않고, 노동조합끼리 자율적으로 정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개별교섭을 할지 말지는 사실상 사용자가 정한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교섭대표노조와만 교섭을 할 것인지, 다른 소수노조와도 개별교섭을 할 것인지 여부를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고를 수 있다. 어용노조가 다수이면 개별교섭을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어용노조가 소수이면 개별교섭에 동의하여 어쨌든 어용노조에는 교섭권을 보장해 주고, 다른 노조에는 단독 교섭권을 내주지 않을 수 있다.

개별교섭 동의권은 사장의 꽃놀이패

어용노조가 있더라도 어쨌든 다수노조가 되면 개별교섭이든 단독교섭이든 교섭권을 가지고 싸우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이야기도 있다. 순진한 생각이다. 말했듯이 사용자는 어용노조가 다수이면 개별교섭을 거부함으로써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한다. 그러면 소수노조는 사용자 교섭위원을 만날 수도 없고 쟁의행위를 할 수도 없다. 심지어 교섭대표노조가 알아서 잠정합의안을 내고, 자기들끼리만 총회를 붙여서 가결시킨 뒤 단체협약을 마음대로 체결해버려도 아무런 위법이 없다는게 노동부 입장이다. 교섭대표노조가 멋대로 체결한 단체협약은 소수노조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까지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는 것인데도 그렇다. 이렇게 되니 교섭권도 없고 요구안도 낼 수 없는 소수노조에는 조합원들이 굳이 남아서 조합비를 낼 이유가 없다. 조합원들이 빠져나간다.

어찌어찌 다수노조를 만드니 이번에는 사장이 어용노조와도 개별교섭을 한다. 어용노조는 교섭 몇 번만에 손쉽게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임금이 오른다. 이렇게 되면 옆 자리 어용노조 조합원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은 더 받아가게 된다.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일단은 더 나은 단체협약 체결을 기대하며 무임금까지 각오해가며 노조 지시대로 파업에도 동참한다. 그러다 몇 달이 흘러가도 소식이 없으면 집행부 책임론이 대두된다. 어용노조에 들어가면 즉시 임금을 소급인상해 지급한다는 회유에 조용히 조합원들이 빠져나간다. 이렇게 어용노조는 다시 다수노조가 되고 사용자는 개별교섭을 하지 않는다. 다시 교섭권이 박탈되고 단체협약은 마음대로 개악된다.

두산모트롤이 그랬다. 금속노조가 있던 사업장에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조법이 개정되자마자 이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현장기술직협의회'라는 조직이 생겨났다. 곧바로 회사는 이들에 대하여만 기본급 7만 6000원 인상, 성과급 250%(2008년), 340%(2009년)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단체협약 체결이 지지부진한 금속노조는 탈퇴가 이어졌다. 그렇게 기업노조가 다수노조가 됐다. 그러자 회사는 금속노조의 개별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노조간 차별문제가 발생하면 조직문화에 도움이 안된다."는게 이유였다. 기업노조는 금속노조의 교섭요구안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음은 물론, 아예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총회절차에서마저 배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해버렸다. 금속노조는 그렇게 몇 년을 교섭권도 없는 식물노조로 전락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에 이르러 드디어 금속노조가 다수노조가 됐다. 그러자 회사는 기어이 기업노조와 개별교섭에 동의했다. 왜 기업노조와만 개별교섭을 하는지에 대하여는 "건전한 조합활동을 통해 복지증진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금속노조와의 교섭은 건전하지 못한 조합활동이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 의사다.

유성기업은 더하다. 복수노조 설립 초기에 기업노조가 다수노조가 되지 못하자 바로 개별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교섭만에 임금협약을 타결하고는 기업노조 조합원들만 임금을 인상해줬다. 역시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기업노조로 빠져나갔고 그 다음 교섭창구단일화 때는 기업노조가 다수노조가 됐다. 그러자 회사는 금속노조와는 당연히 개별교섭을 하지 않았다. 이후 교섭대표노조인 기업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조합활동 보장에 관한 내용을 대폭 삭제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쟁의기간에 대한 생산기여금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쟁의기간이 길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임금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도록 했다. 이렇게 이상한 단체협약을 체결하자 다시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로 이동하면서 금속노조가 다수노조가 됐다. 그러자 역시나 회사는 또다시 개별교섭을 시작했다. 기업노조는 조합원 수와 관계없이 언제나 교섭권이 있었다. 금속노조는 소수노조가 되면 교섭권이 없고 다수노조가 되면 단체협약 체결이 안됐다.

사장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게 없다. 마음에 안 드는 노조와만 선택적으로 교섭을 안 해도 되고, 개별교섭 선택권으로 대놓고 차별해도 법률에 따른 것이니 문제되지도 않는다. 꽃놀이패다. 하지만 설마 노조법이 이런식으로 쓰라고 개별교섭 절차를 둔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이런게 소수노조 교섭권 제한을 완화하는 장치라니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특별한 절차없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인정하는 과반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 사이에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면서도 조합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선거절차를 별도로 두지 않은 점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제도다. 단체교섭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에서 교섭창구를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단일화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교섭창구단일화 조항은 단체교섭에서 배제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은 물론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까지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논란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2012년 4월 24일 '2011헌마338' 결정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노조법 제29조의2 제1항에 대하여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위 결정 중 최소침해성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자율교섭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노동조합 사이에 현격한 근로조건 등의 차이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지 못한 소수 노동조합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와 교섭대표노동조합에게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여 교섭창구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설시하였다. 즉, 교섭창구단일화의 예외인, 사용자 동의에 따른 개별교섭 부분이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줄이는 장치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별교섭은 교섭창구단일화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는 부분을 보완하려는 취지의 제도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차별하려는 의도로 개별교섭권을 선택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당연히 법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법률에 따른 권리행사라 할지라도 명백한 부당노동행위 의사로 선택적, 차별적으로 개별교섭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용자의 개별교섭 동의권이 법률상 권리라는 이유로, 자기 입맛대로 개별교섭 여부를 차별적으로 선택해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해 준 사례가 없다. 10년동안 그래왔다면 개별교섭 동의권은 더 이상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위헌성을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교섭창구단일화 강제를 없애버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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