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계의 반대로 인해 절충안으로 만들어진 차별금지법상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 오히려 종교차별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3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주최로 열린 '종교기관 예외조항 무엇이 문제인가' 온라인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조혜인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이 이같이 밝혔다.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특정 종교' 눈치 본 조항인가
차제연이 문제 삼는 부분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준비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일환인 '평등법안'에 포함되는 '종교기관 예외'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법안 제4조 차별에 관한 정의 중 제4항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회,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신조, 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종교계와의 면담을 통해 이 같은 조항을 삽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인권위가 권고한 평등법 시안에도 없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는 불교계도 우려를 전한 바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지난 16일 대변인 삼혜스님(총무원 기획실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이상민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 법률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으로 차별행위에 대한 벌칙조항을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차별 예외조항에 '종교'를 추가함으로써 종교 간 갈등과 증오 범죄를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조계종은 해당 법안을 "특정 종교계와의 타협에 의한 결과물이며, 보편성과 타당성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차제연 또한 해당 법안에 대해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을 심화시키고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입법 취지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종교기관 예외조항' 굳이 필요 없다
조혜인 위원장은 정의당의 차별금지법이나 인권위의 평등법안 등 기존 법안에도 종교기관 예외조항은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별금지법·평등법상 차별은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사법절차 및 서비스의 제공·이용 등 4가지 분야의 차별에 적용된다"며 "이미 발의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보면 '종교적 행사 및 집회, 종교적 행위(예배, 설교, 전도 등)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외 조항을 따로 두지 않더라도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명시된 일반적인 '차별의 예외' 조항으로 종교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진정 직업 자격' 항목을 둬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종교기관 예외조항', 종교차별 더 심화시킬 수도
조 위원장은 "해당 조항이 종교 관련 차별을 심화시키고 실질적인 구제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조항의 '종교단체에 소속된 기관'은 종교단체에서 설립·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종립 의료원 및 요양원, 종립학교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종교단체들에 의해 설립·운영된다 할지라도 의료, 교육, 사회복지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공공성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다.
조 위원장은 "그러한 기관에서 고용과 서비스 이용에서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짚었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의 직원 및 이용대상자들이 해당 종교의 신자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설 내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실태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지난 11월 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 사회복지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사회복지사 230명 중 61.1%가 "종교행위와 후원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1140명 중 19.6%가 "원하지 않는 종교 행위 강요로 인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매일 아침 예배 시간을 운영하면서 순서를 정해 2개 팀 씩 예배를 인도하게 하고, 매월 예배 출석 확인을 게시판에 공지하며 예배 참석 횟수를 근무 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행위를 해 서울시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그밖에 인권위가 발표한 고용상 종교차별의 사례로 △대표가 운영하는 교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할 것을 요구받거나 △채용 시 종교와 무관한 직무에 채용조건으로 신앙인임을 명시한 것 △종립학교에서 신임교사를 채용하면서 세례교인일 것을 요구하거나 △종립대학의 교수가 다른 종파의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승진대상에서 제외된 사례 등이 인권위에 의해 차별로 판단되어 시정 권고를 받았다.
조 위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단체에 소속된 법인, 종립학교, 종립 요양·의료기관, 사회복지법인의 규모가 상당해 이용대상자들의 선택지 자체가 제한되는 특성이 있다"며 "현재 많은 종교기관 및 법인에서 국가인권위가 불합리한 차별로 판단한 행위까지도 차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종교적인 목적의 활동을 주로 하는 민간기업에서도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과 종교 강요 등 괴롭힘이 적절하게 규제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종교단체 관련 기관에서 발생하는 차별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기관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경우 이미 발생하고 있는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고 정당한 차별의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입법 취지 자체를 훼손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종교기관 예외조항' 둔 다른 나라들은
인권침해와 차별 사안에서 종교기관을 법 적용 대상에서 면제한 입법안은 이상민 의원 안이 처음이다. "향후 다른 법제에서도 종교기관 예외가 인정되는 선례를 남길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국에도 종교 관련 예외 조항을 둔 차별금지법·평등법 법제들이 존재하지만, "한국과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게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조 위원장은 "종교 예외 조항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역사적으로 특정 종교를 '국교'로 인정해온 전통이 있고, 종교개혁 이후 종교전쟁 등을 거치며 '종교의 자유'가 해당 국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조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루터교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바이마르 시대에 만들어진 헌법(독일기본법)에 따라 매우 특권적인 지위를 가진다. 종교단체는 사법 단체가 아닌 공법 단체로서 국가 산하가 아닌 정부와 대등한 법적 지위를 갖고 세금도 징수하는 등 매우 특수한 권한과 지위를 헌법상 보장받는다.
영국 또한 성공회가 국교로서 절대적 가치를 지녀왔다. 영국 성공회는 법적으로 오랜 기간 특권을 인정받아왔으며 현재도 잉글랜드 성공회 주교는 국왕에 의해 임명되며 모두 상의의원을 겸직하게 되는 등 다양한 법적, 사회적 특권을 인정받고 있다.
조 위원장은 "외국의 종교에 관한 예외 조항들은 종교기관들이 이미 법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종교가 특권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세속 법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며 "반면 캐나다와 같이 종교의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국가에서는 인권법에 종교 예외 조항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미 다원민주주의 국가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같이 무종교인이 절반을 넘고 지배적인 종교가 없는 다종교 사회에서는 종교와 종교, 종교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종교기관을 다른 일반 기관 및 시민과 다르게 특별 취급하면서 별도의 면책 조항을 두는 것은 법적·사회적으로 정당한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또한 헌법의 정교분리의 원칙도 언급했다. 헌법 제20조에는 "어떠한 의미의 국교도 거부하며, 특정 종교에 대한 국가의 편파성도 금지하며 정치와 종교 간의 제도적 분리를 내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이에 따라 어떤 하나의 종교가 자신들의 교리를 들어 다른 종교 신도나 또는 종교가 없는 사람을 차별하는 '종교차별'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다"며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이러한 차별을 실제적으로 규율하면서 모두를 위한 평등의 정신을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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