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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소설 <분지> 등 소설가 남정현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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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소설 <분지> 등 소설가 남정현 선생 별세

소설 <분지> 등 풍자소설을 통해 민족자주성 등을 대중적으로 고취시킨 해학문화가 남정현 선생이 21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33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대전사범고를 졸업한 뒤 1958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등단 단편인 <경고구역(警告區域)>을 시작으로, <굴뚝 밑의 유산>(1959)·<모의시체(模擬屍體)>(1959)·<누락인종(漏落人種)>(1960)·<너는 뭐냐>(1961) 등을 <자유문학>에 발표했으며, 현실의 부조리와 병폐를 풍자적으로 다루는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1961년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혁명이후>(<한양> 1963)·<분지(糞地)>(<현대문학>, 1965)·<허허(許虛) 선생>(<문학사상> 1973)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 가운데 <분지>는 강대한 외세에 의해 식민지적 삶을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을 풍자한 고인의 대표작으로, 작품 발표 당시 문단 내에서 문체와 현실풍자가 화제가 되었을 뿐 이로 인해 옥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이 작품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 5월 8일 자에 실리면서 중앙정보부의 수사가 시작됐고, 결국 고인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7월 9일 긴급체포돼 검찰로 송치됐다 보름 만에 법원의 구속적부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1년 뒤인 1966년 7월 23일 서울 지방검찰청 김태현 부장검사에 의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이에 한승헌·이항녕·김두현 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에 나섰고, 특히 안수길의 특별변호와 함께 이어령 등 동료 문인들이 피고를 위한 증인으로 나와 변호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이 기소 내용과 작품이 갖고 있는 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공방을 벌이다가 7년을 구형받아 1심에서 유죄로 인정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면했다. 항소심에서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는 1965년 한일협정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분지>의 문학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1960년대 문단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 되었다.

▲故 남정현 선생. ⓒ남정현 가족 제공

1974년에도 고인은 민청학련 사건 및 문인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되어 남산 중앙정보부에 강제로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서대문교도소에서 약 4개월 정도 구속되었다가 그해 긴급조치 4호가 해제됨에 따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에도 고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반미 성향 활동을 지속했다.

소설집으로 <너는 뭐냐>(1965)·<굴뚝 밑의 유산>(1967)·<서울을 사는 고독과 희열>(1969)·<사랑하는 소리>(1978)·<분지>(1987)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남돈희(60세,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부장), 딸 남진희(51세, 주부), 며느리 나명주(53세, 참교육학부모회 전국회장), 사위 우승훈(54세, 마취과 의사) 등이 있다.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오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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