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예 60년 외길, 한곬 현병찬 서예가 도록 ‘먹내음 붓길따라’ 출판기념회가 지난 19일부터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미술협회(회장 유창훈)와 제주문화예술재단 원로 예술인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출판기념회는 한글서예가 좋아서 한글 먹통 속에서 살아온 한곬 현병찬 서예가의 60년 인생이 오롯이 담겼다.
한곬은 이번 출판기념회에 즈음해 호된 꾸중을 들으면서도 한문 서예를 가르치던 소암 현중화 선생을 졸라 한글 서예를 지도 받았던 기억, 1980년 해정 박태준 선생이 낙관을 직접 마련해 전국 미술 대전에 한문서예 작품를 출품해 보라는 권유에도 한글서예작품을 들고 가서 해정을 당황케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직 한글서예만을 고집하며 8순에 이른 자신을 회고했다.
한곬은 "팔순, 망구라는 나이에 미력한 예술 활동이나마 출판기념회를 열게돼 부끄러운 마음이라면서도 한글서예가 좋아 제주노동요 민요쓰기 등 제주말씨를 서예작품으로 쓰다보니 시인으로 등단까지 해 기쁜 마음이라면서 모두의 겪려 덕분에 숫붕이가 되어 살아온 세월이 나름의 수확이 아닌가 한다"라고 소외를 밝혔다.
한곬은 한자로 서예에 입문했지만 한글을 택한 서예가다. 그는 사범학교 시절 소암 현중화 선생과 제2의 서예활동가로 두각을 나타내던 시절 해정 박태준 선생을 만나면서 서예의 고전 기법과 행 초서를 사사했다.
한곬의 서예는 오래도록 처마 아래서 낙숫물이 질 때까지의 수련을 통한 결과라는 총평이다. 그는 15세기 중세어가 고스란히 현실에 반영되고 있던 반치음 아래아 쌍아래아 등 당시 제주어의 문화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한글서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한곬은 "붓을 잡고 10년은 넘게 수련해야 비로소 붓끝이 보인다"라며 "수련 없이 이뤄지는 서예는 없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후 1997년 유네스코 세례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해례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한글 궁서체 또한 그 가치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글 궁서체는 고도의 기능적 기량에 예술성이 더해져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 오랜 기간 수련이 필요하다"라며 "한글 궁서체 또한 유네스코 등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우리글"이라고 자랑했다.
한곬은 예술인 학교 건립에도 남다른 의욕을 보였다. 그는 "예술을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잘라 말하며 "제주는 수련한 자연 경관에 더해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술인 마을이 가지고 있는 인적 잠재력을 살린다면 국내 최고의 예술 문화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출판 기념회장을 지키던 제자 결곬 김수애 서예가는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시절부터 스승님은 항상 사람이 되고 난 후에 학문이며 인품을 갖추고 나서야 서예는 완성된다"라고 했다며 "60년 외길 한글 서예 인생을 걸어온 한곬 스승의 남다른 열정이 담긴 '먹내음 붓길따라' 출판 기념회를 축하 드린다"고 말했다.
유창훈 한국미술협회 제주지부장은 도록 발간에 즈음해 "세월은 가도 예술은 남고 그 예술은 향기를 머금어 후세에 전해질 것"이라며 "제주어와 한글 서예 하면, 전국에서 입을 모아 현병찬 선생을 떠올릴 정도로 이제 제주어와 한글서예는 한 몸이 되었다"라고 축하했다.
한곬 현병찬 서예가는 1942년 제주시 화북에서 태어나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60년부터 2003년까지 44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1989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처음 입선 후 1992년 고영하 선생의 한라산 시를 한글서예로 출품해 서예부문 대한민국서예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1년 '현병찬체' 폰트를 제작해 한글 서체 보급과 소장품, 도서 등 기증사업도 펼치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 마을 먹글이 있는 집에서 열리고 있는 ‘먹내음 붓길따라’ 출판 기념회는 내년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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